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계속되는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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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계속되는 비극
  • 노영민
  • 승인 2021.05.13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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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칼럼] 노영민 / 노무사, 민주노총인천본부 노동법률상담소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에 대해 원청기업에게 공동사용자책임 부과

▲ 청소, 경비, 급식 등 용역업체 변경 시 원청에 의한 고용 및 임금 등 근로조건 승계 의무화

- 대통령 선거 공약(2017.5.1.)

 

영업 양도 등 사업이전시 고용 등 근로관계승계 제도화

● 영업 양도 등에 따른 사업 이전(사업주 변경) 시 고용 등 근로관계 승계

● 원청에 의한 하청업체 변경에도 불구하고 기존 하청업체가 수행하던 업무가 동일하게 계속되는 경우 고용 등 근로관계 승계

● 고용승계 시 신규 하청업체는 하청근로자의 경력 합산 및 종전 근로조건을 유지하도록 제도화

- 더불어민주당 제21대 총선 공약(2020.3.19)

 

10년 전이었다. 2011년 1월 2일 새벽에 출근한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은 학교 측으로부터 ‘집에 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170여 명의 청소·경비·시설 용역 노동자 중 130여 명이 노조에 가입한 지 한 달만의 일이었다. 홍익대는 청소노동자 대량 해고에 대해 용역업체의 계약 포기가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학교 측이 업체에 무리한 요구를 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홍익대가 용역업체에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용역비 단가로 3개월 연장계약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에 용역회사들은 입찰을 포기했다. 노동자들은 전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49일간 농성투쟁을 벌인 끝에 합의안을 도출했다.

10년이 지난 올해 1월 1일자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82명은 소속 회사인 지수아이앤씨에서 해고됐다. LG트윈타워를 관리하는 LG그룹 계열사 에스엔아이코퍼레이션은 지난해 말 지수아이앤씨와 LG트윈타워 청소용역계약을 종료하고 다른 업체와 계약했다. 관행대로라면 용역업체가 변경돼도 노동자들은 그대로 새로운 업체에 고용이 승계될 터였다. 하지만 새롭게 LG트윈타워의 청소용역을 맡은 백상기업은 고용승계를 거부했다. 8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130일이 넘는 농성투쟁 끝에 원래 일하던 LG트윈타워가 아니라 LG마포빌딩으로 옮겨서 일하기로 합의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10년 전 우리가 겪었던 상황과 똑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10년 전을 떠올린 홍익대 청소노동자의 한탄이다.

10년 전 홍익대와 10년 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상황은 판박이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계약 갱신 거부로 집단해고를 했다. 노동자들이 그에 맞서 투쟁하자 무더기 고소·고발을 남발한 것도 같다. 진정한 사용자는 홍익대와 LG그룹 계열사 에스엔아이코퍼레이션같은 원청인데 자기들은 노동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며 모든 책임을 하청 용역업체에 떠넘기는 것도 똑같다.

5월 1일은 노동자의 날인 노동절이다. 노동자의 날에 서울 노원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에서 근무하던 경비노동자 16명이 집단으로 해고됐다. 최근 입주자대표회의와 새로 계약을 체결한 경비용역업체가 근로계약 갱신일 이틀 전에 이들에게 문자메시지로 해고를 통보했다. 입주민들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지난해 1월 자동출입문 교체를 이유로 경비노동자 11명을 해고한 뒤 3개월 뒤 또다시 15명을 해고했다고 한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해고 반대 서명을 하고 기자회견을 여는 등 경비노동자들의 복직을 위한 활동에 나섰다.

이처럼 하청 용역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집단해고는 셀 수 없이 계속되고 있다. 비용절감을 위한 외주화와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부정하는 간접고용 구조에서 비롯한다. 간접고용으로 원청은 각종 규제에서 벗어나고 사용자로서 책임도 회피할 수 있다. 노동조합을 상대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피하게 해주고 손쉽게 노동자를 자를 수 있는 만능열쇠가 간접고용이다. 하청노동자를 새 용역업체가 고용승계하는 관행은 듣보잡이 돼 버린다. 특히 하청업체에 노조가 생기면 용역계약 해지로 노조를 와해하고 한 업체에 위탁하던 업무를 여러 회사로 쪼개서 위탁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사태가 심각함에도 이 나라에는 하청 용역업체 변경 때 고용승계를 강제할 제도가 없다. 영업양도 시 근로관계가 원칙적으로 승계된다는 법원 판례가 있을 뿐인데 하청 용역업체 변경은 영업양도로 인정받는 사례도 극히 드물다. 2017년에 대법원이 종전 용역업체와 새 용역업체 사이에 ‘묵시적 영업양도계약’이 성립돼 고용과 단체협약을 승계할 의무가 있다고 이례적으로 인정한 판결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길고 힘겨운 싸움이 될 소송을 하기도 매우 어려운 노릇이다.

결국 용역업체 변경이 노동자들의 해고로 이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제도적 해결책이 있어야만 한다. 이미 유럽에서는 용역업체를 변경할 때 고용승계와 노동조건 유지를 폭넓게 보장하고 있다. 영국은 특정 업체가 맡고 있던 사업의 전체 혹은 일부가 다른 업체로 이전될 때, 사업을 이전받은 업체는 종전 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고용을 계속 보장해야 한다. 같은 수준의 임금과 노동조건도 보장해야 한다. 노동조건뿐만 이전되는 노동자들이 노조 조합원이라면 새로운 업체는 의무적으로 이들 조합원의 단체교섭 당사자가 되도록 하고 있다. 개별적인 노동조건을 넘어 집단적 노사관계에서의 권리까지 승계되는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공약에서 보듯 이 나라 정부와 여당도 용역업체 변경 시 고용 승계 의무화를 약속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고 더불어민주당의 21대 총선 공약이었다.

하지만 정부든 국회든 제도화를 위한 어떤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 20대 국회에서 간접고용 노동자의 고용승계를 제도화한 법안이 몇몇 의원들에 의해 발의됐지만 논의 테이블에도 오르지도 못한 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1대 총선에서 거대 여당이 탄생한 지 1년이 넘어가지만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제도화를 위한 입법 논의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사이에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곳곳에서 잘려나가고 있다.

약속이라는 것은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약속을 지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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