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작은 방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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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작은 방과 책읽기
  • 최종규
  • 승인 2011.06.07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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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새로운 목숨을 받아들이는 병원이라는 곳은

 집에서 둘째 아이를 맞이하려고 했으나, 아이를 낳는 옆지기 몸이 몹시 힘들어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서 둘째 아이를 맞이했습니다. 이틀 밤을 병원에서 보내며 느낀 두 가지 이야기를 헤아리면서, 책삶과 사람삶을 돌아봅니다.

ㄱ.  병원 작은 방

 병원 작은 방에는 텅 빈 냉장고하고 큼지막한 텔레비전이 있다. 휴지 한 장 이불 하나 따로 없을 뿐 아니라, 빨래비누나 대야조차 없다. 둘째를 낳은 대학병원에서 입원수속을 하는데, 간호사들은 우리한테 아무런 이야기 없이 무턱대고 4인실 자리를 잡았다고 알려준다. 병실이 어떻게 있다고 밝힌 다음 어디를 쓰겠는지 물어야 하지 않나? 이 사람들은 네 살 아이가 있는 집안 사람들이 4인실 방에서 지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다른 애 어머니와 견줄 수 없이 몸이 대단히 나쁠 뿐더러 여린 옆지기를 여느 4인실에 둘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알쏭달쏭하다. 간호사 말을 끊고 불쑥 말한다. 여기 1인실은 없나요? 1인실이요? 있어요. 4인실은 얼마쯤 하나요? 4인실은 4만 원이요. 1인실은요? 1인실은 10만 원이요. 그러면 1인실로 해 주셔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네, 저희는 아이도 있고 애 어머니하고 함께 자야 하는데 1인실로 해야 해요.

 첫째를 낳던 병원을 떠올린다. 첫째를 낳던 인천 병원에도 이곳 충주 병원과 마찬가지로 텅 빈 냉장고하고 큼지막한 텔레비전이 있었다. 다만, 휴지는 있었는데, 인천 병원에서도 대야와 빨래비누와 이불은 없어서 집에서 모조리 들고 왔다. 인천에서는 집과 병원이 가까웠지만, 시골집에서는 자가용으로 40분은 달려야 하는 먼길이다. 자가용 없는 우리 식구는 여러 사람한테 도와주십사 이야기해서 겨우 이것저것 챙겼다.

 병원 작은 방에서 아이가 뛰어놀라 하기란 몹시 힘들다. 그래도 아이는 잘 뛰어놀아 주었다. 잘 견디어 주었다. 새벽 두 시 사십오 분부터 깨어서 낮에 두 시간 살짝 잠들었을 뿐, 졸리면서 잠을 안 자는 아이는 이 작은 병원 방에서 온힘을 짜내어 제 어머니 아버지하고 살아내 준다. 아이가 얼마나 심심해 할까 걱정스럽지만, 몸이 힘든 아버지는 제대로 돌봐 주지 못한다. 옆지기 몸이 썩 좋지는 않지만, 개인 병실로 옮긴 다음 몇 시간 지나서 아이 손을 붙잡고 바깥으로 나온다. 병원 앞 문방구에 들러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산다. 아이는 제 손바닥에 꼭 쥘 만한 작은 수첩 둘을 쥔다. 하나만 하면 안 되겠니? 응, 안 돼. 둘 다 할래? 응, 둘 다 할래. 하나에 400원짜리 작은 수첩을 둘 나란히 사 준다. 병원으로 돌아온 아이하고 한 시간 남짓 그림을 그리면서 논다. 그러나 한 시간 뒤에는 무슨 놀이를 해 줄까. 옆지기가 텔레비전 켜 주라 이야기한다. 드디어 텔레비전을 켜서 만화영화 나오는 곳을 찾는다. 만화영화이든 다른 뭐뭐이든 그닥 재미나지 않을 뿐더러 아이하고 신나게 볼 만하다고 느끼기 힘들다. 광고는 너무 시끄러우면서 쓰잘데없다. 한 시간 남짓 텔레비전을 보았나 싶은데 눈과 귀가 몹시 아프다.

 인천 병원에서도 그랬지만, 충주 병원에서도 책 있는 자리란 없다. 적어도 병의학을 다룬 책이라든지, 아이를 낳을 어머니나 아버지나 식구나 살붙이나 이웃이 읽으면서 헤아릴 만한 책 하나조차 없다. 아니, 어린이 그림책이나 동화책마저 없다. 아이들이 갖고 놀 만한 놀잇감 또한 없다. 요사이에는 사람들이 아이를 잘 안 낳는다지만, 두셋 낳는 집안이 아예 없지 않을 뿐더러, 제법 있다. 둘째나 셋째를 낳으려고 병원에 오는 어머니들이 많다. 그렇지만, 첫째나 둘째가 병원에서 놀거나 읽을 거리는 아무것도 없다시피 할 뿐더러, 병원에서 함께 지내는 아버지 될 사람들이 ‘아이낳기’와 ‘살림하기’와 ‘집일하기’를 깨우치도록 돕는 책이란 한 가지도 없다. 애 아버지가 애 어머니한테 해 줄 국과 밥 몇 가지라도 하도록 도와주는 요리책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를 사랑하면서 돌보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병원 의사나 간호사는 무슨 책을 읽을까. 그저 셈틀 앞에 앉아서 인터넷 바다를 누빌 뿐인가.

 병원 작은 방이든 긴 골마루이든 분만대기실이든 어디이든, 책이 놓이는 병원을 한국땅에서 꿈꾸고 싶다. 아름답거나 훌륭한 책이 놓이자면 아주아주 오래오래 걸릴 테지만, 적어도 후줄그레한 잡지 하나라도 놓일 책꽂이가 있는 병원 작은 방을 꿈꾼다.


ㄴ.  병원에서 책읽기

 병원에서는 항생제를 놓고 진통제를 놓으며 지혈제를 놓으면서 ‘자연분만’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씁니다. 자연분만이란, 이름 그대로 자연스레 아이를 낳는 일이에요. 항생제나 약물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가 애 어머니 배를 꾹꾹 누르는 한편, 힘껏 잡아당겨 아기를 쑤욱 뽑아내는 일이 아닙니다. 애 어머니 샅을 가위로 싹둑 자르면서 자연분만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쓸 수 없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애 어머니와 함께 찾아와서 가까스로 아기를 낳고 나서 살며시 숨을 돌린 다음, 병원에서 내는 책자를 펼치니, 병원 의사가 하는 말, ‘뱃속에 쌓이는 똥(숙변)’이란 없다고 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한테는 예방주사를 맞히지 않겠다 하고, 가루젖을 먹이지 않겠다 했으나, 이 말을 열 번 가까이 되풀이한 끝에 겨우 예방주사를 안 맞히도록 하고 가루젖을 안 먹이도록 했습니다. 그렇지만, 피를 멎게 한다는 항생제 주사는 우리한테 말하지 않고 그냥 놓습니다. 종이기저귀를 대어도 자주 갈아 준다면서, 천기저귀를 쓰지는 않겠답니다. 천기저귀를 그때그때 빨아서 주겠다 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피멎이 항생제는 어떤 화학물질로 만든 약물일까 궁금하지만, 병원 의사나 간호사들은 이러한 항생제 성분을 헤아리거나 살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방주사를 안 맞히겠다는 말을 열 차례나 되풀이하도록 한 병원인 만큼, 이곳 병원에서는 예방주사는 아주 마땅히 놓아야 하는 줄 여깁니다. 미국 의사가 쓴 《예방주사 어떻게 믿습니까》 같은 책을 읽었거나 살피거나 아는 의사나 간호사는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만, 이러한 책을 읽거나 살피거나 안다 하더라도 살갗으로 와닿도록 느끼는 이는 있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자연스레 아기를 낳으려고 이모저모 살피며 갖추었지만,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 스스로 더욱 자연스레 내 살림을 꾸리지 못했기 때문에, 아기낳는 막날에 끝내 집에서 자연스레 못 낳았다고 느낍니다. 다만,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자연스레 아이를 낳지 못했으나, 이렇게 해서 태어난 우리 아이라 하더라도 참으로 어여쁘며 고맙고 사랑스럽습니다. 나와 옆지기는 우리 아이한테 이런저런 ‘장애 검사’를 하는 일을 하나도 반기지 않으며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장애가 있건 없건 대수롭지 않을 뿐 아니라, 장애 검사를 미리 한대서 장애를 막을 수 있지 않는데다가, 아기를 낳을 때 맞히는 갖가지 주사와 약물 때문에 장애가 생기니까요. 너무 밝은 갓난아기방이라든지, 갓난아기한테 가루젖을 먹이고 포도당을 먹이려 하는 일부터 아기 삶과 목숨을 너무 안 살피는 노릇입니다.

 의사나 간호사 노릇을 하자면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요. 의사나 간호사 자리에 선 다음, 이들 의사와 간호사는 어떠한 책을 더 꾸준히 살피거나 찾아서 읽을까요. 이틀 뒤 병원 문을 나선 뒤로는 다시금 병원을 찾지 않도록, 옆지기와 나는 더 바지런히 내 삶을 사랑하면서 살아야겠고, 네 식구 삶과 살림을 가꾸거나 지킬 책을 한결 알뜰히 살피며 읽어 받아들여야겠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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