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전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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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전 생애
  • 김선
  • 승인 2021.05.18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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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 이방인 - ㊷(끝) 슬픈 표정의 사제, 행복한 뫼르소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명상활동가)’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Tout au long de sa vie, un vent sombre qui soufflait de la base de son avenir, remonte à lui-même depuis des années qui n'arriveraient pas encore.

뫼르소가 살아온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자신의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을 세월을 거슬러 자신에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다.

 

 

뫼르소는 좀 흥분했다. 뫼르소는 여러 달 전부터 그 벽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벽을 보며 자신을 봤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그 누구에게 대해서도 뫼르소는 그보다 더 잘 알지는 못할 정도였다. 오래전에 뫼르소는 거기에서 하나의 얼굴을 찾아보려 했던 것 같다. 진짜 찾고 싶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얼굴은 태양의 빛과 욕정의 불꽃을 담은 것이었다. 그것은 마리의 얼굴이었다. 뫼르소는 그것을 찾아내려고 했으나 헛일이었다. 이제는 그것도 지나간 일이었다. 어쨌든 뫼르소는 그 땀 어린 돌로부터 솟아나는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제의 기대와는 다른 결론이다.

사제는 슬픈 듯한 표정으로 뫼르소를 쳐다보았다. 뫼르소는 오히려 슬프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사제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뫼르소는 벽에 등을 완전히 기대고 있어서 빛이 자신의 이마 위로 흘러내렸다. 사제는 무어라고 몇 마디 말했으나 뫼르소는 듣지 못했다. 사제는 매우 빠른 어조로 뫼르소를 껴안아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뫼르소는 대답했다. 사제는 돌아서서 벽으로 걸어가더니 천천히 그 벽을 손으로 쓸었다. 그렇게도 이 땅을 사랑하느냐고 사제는 중얼거렸다. 늘 자신에게 하는 얘기는 아닐까? 뫼르소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제는 상당히 오랫동안 돌아서 있었다. 방 안에 그가 있는 것이 마음에 짐이 되고 성가셨다. 사제에게 혼자 있고 싶으니 가 달라고 말하려는 참인데 눈치도 없는 사제는 다시 뫼르소에게로 돌아서면서 갑자기 요란스럽게 뫼르소의 말을 자신은 믿을 수가 없고 뫼르소도 다른 생애를 바란 적이 있었으리라고 자신은 확신한다고 외쳤다. 사제는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니 서로 말이 섞이지 않는다. 물론이며 그것은 부자가 된다든지, 헤엄을 빨리 칠 수 있게 된다든지, 더 잘생긴 입을 가지게 되는 것을 바라는 것보다 더 중요할 게 없다고 뫼르소는 대답했다. 사제의 말을 가로막고 그 다른 생애라는 것을 어떻게 상상하느냐고 묻기에 지금의 이 생애를 회상할 수 있는 그런 생애라고 사제가 외치자 그만 하라고 뫼르소는 말했다. 다른 생애가 무엇인지 서로 다르게 살아와서 다른 것 같다.

사제는 또 하느님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뫼르소는 사제에게로 다가서며 자신에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설명하려 했다. 뫼르소는 하느님 이야기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말해야 알아듣는 사제는 화제를 바꾸려고 왜 자신을 몽 페르라고 부르지 않고 므시외라고 부르냐고 물었다. 그 말에 뫼르소는 화가 나서 사제에게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며 다른 사람들과 한편이라고 대답했다. 사제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대하였으나 뫼르소는 남의 마음으로 느꼈기에 그렇게 답했던 것 같다. 아니라고 뫼르소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고 사제는 말했다. 자신은 뫼르소 편이나 뫼르소가 마음의 눈이 멀어서 그것을 모르는 것이라고 하며 그를 위해 기도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마음의 눈이 먼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그때 왜 그랬는지 몰라도 뫼르소의 속에서 그 무엇인가가 툭 터져 버리고 말았다. 뫼르소는 목이 터지도록 고함치기 시작했고 사제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기도를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동안 인내한 속마음이 나온 것이다. 뫼르소는 그의 사제복 깃을 움켜잡았다. 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채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마음속을 송두리째 쏟아 버렸다. 이러한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사제는 자신만만한 태도다. 사제의 신념이란 건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 한 가치도 없고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그에게는 없으나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자신에게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자기 신념과 자기 확신이 강한 뫼르소다.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는데 자신의 인생과 닥쳐올 죽음에 대한 확신밖에 없다고 말했다. 죽음에 대한 확신은 확신하면 할수록 하나의 자기 신념으로 자신을 지켜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뫼르소는 이 진리를 그것이 자신을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서로 의지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자신의 인생을 규정해 보는 것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듯 하다. 자신은 그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뫼르소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을 했다. 그러나 어떻다는 것인가? 뫼르소는 마치 이 순간을 자신이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신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자신을 자신이 증명해야 하는 난제 속에서 시간은 흐르고 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뫼르소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사제 역시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뫼르소가 살아온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자신의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을 세월을 거슬러 자신에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어두운 바람이 지나가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자신에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사제의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 그런 것이 자신에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무엇이 중요한지 스스로 판단하고 의미를 취사 선택하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자신을 택하도록 되어 있고 자신과 더불어 그처럼 자신의 형제라고 자처하는 특권 가진 수많은 사람들도 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 가진 존재다. 스스로에게 특권을 부여하니 그렇다. 세상엔 특권 가진 사람들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또한 장차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그 역시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모두 종국에는 사형수다. 뫼르소가 살인범으로 고발되었으면서 자기 어머니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게 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인가? 인과성이 없는 사형선고다. 살라마노의 개나 그의 마누라나 그 가치를 따지면 매한가지다. 자동인형 같은 그 작은 여자도, 마송과 결혼한 그 파리 여자나 마찬가지로, 또 자신이 결혼해 주기를 바라던 마리나 마찬가지로 죄인인 것이다.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는 사실들의 나열에 불과한 것이다. 셀레스트는 레몽보다 낫지만 셀레스트나 마찬가지로 레몽도 자신의 친구라고 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마리가 오늘 또 다른 사람의 뫼르소에게 입술을 내바치고 있은들 그것이 어떻다는 말인가?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이런 모든 것을 외쳐 대며 뫼르소는 숨이 막혔다. 의미와 중요성이 사라지는 순간 죽음은 이미 가까워진 것이다. 벌써 사람들이 사제를 뫼르소의 손아귀에서 떼어 내고 간수들이 뫼르소를 위협했다. 그러나 사제는 그들을 진정시키고 한동안 묵묵히 뫼르소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히 괴어 있었다. 사제는 마침내 돌아서서 사라졌다. 이제는 다른 모든 것들이 사라질 것이다.

사제가 나가 버린 뒤에 뫼르소는 평정을 되찾았다. 속에 있는 것을 쏟아내어 기운이 없을 것이다. 뫼르소는 기진맥진해서 침상에 몸을 던졌다. 그러고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눈을 뜨자 얼굴 위에 별이 보였으니 말이다. 쏟아낸 것에 대한 긴 여운이 몸으로 퍼진 것이다. 들판의 소리들이 뫼르소에게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밤 냄새, 흙냄새, 소금 냄새가 관자놀이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잠든 그 여름의 그 희한한 평화가 밀물처럼 자신의 속으로 흘러들었다. 얼마남지 않은 작은 평안의 시간이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자신과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생의 마지막 소리일지도 모른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뫼르소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의 죽음으로 시작한 이 모든 일들이 엄마에 대한 생각으로 끝을 맺으려 한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뫼르소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도 똑같은 마음인 것이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 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을 것이고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마음이 내켰을 것임이 틀림없다. 지금 뫼르소가 그렇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뫼르소 자신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은 항상 이런 마음으로 가득하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자신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갖게 해 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뫼르소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정다운 무관심을 느끼는 이 순간에 분명 뫼르소는 관심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다. 세계가 그렇게도 자신과 닮아서 마침내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뫼르소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자신이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자신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자신이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자신을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세상의 다정하지 못한 관심 속에 생을 마감하고 싶어하는 뫼르소. 그는 세상의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그를 이야기한 이의 티파사 문학비 글귀로 끝맺음을 한다.

 

1961년에 알제리의 티파사에 건립된 까뮈의 문학비
1961년에 알제리의 티파사에 건립된 까뮈의 문학비

 

여기서 나는 사람들이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것은 거침없이 사랑할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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