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과 전통연희 장르 세우기 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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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과 전통연희 장르 세우기 19년
  • 김경수
  • 승인 2011.06.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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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인천문화재단 공동기획]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을 찾아
취재 : 김경수기자

인천in-인천문화재단 공동 기획 연재
'2011 인천문화·예술을 일구는 사람들'

'살기 좋은 도시 인천' '살고 싶은 도시 인천'으로 나가기 위해선 문화·예술적 창조도시를 지향점으로, 창조적인 문화·예술 행위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고 있다. 인천에서는 그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예술성, 혹은 대중성을 내건 활동들이 펼쳐져왔다. 예술의 가치를 확산시킴으로써 살고 있는 도시의 가치를 높인다는 진정성으로 살아온 이들이다.

이에 인천in과 인천문화재단은 지역 문화·예술인들에게 다가가 집중 인터뷰를 통해 열정이 담긴 창작물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를 걸고 기획 연재 '2011 인천문화·예술을 일구는 사람들'을 시작한다. 매주 화요일마다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하는 이 코너에서는 인천문화재단의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된 6개 단체를 비롯해 2011년 하반기에 활동하는 문화·예술가(또는 단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은 올해로 창단 19년을 맞았다. 예술적인 장르로 전혀 생소했던 시절 '풍물'을 생활 속에 확산시키겠다는 의지를 내걸고 출발해 그 세월동안 한 길을 달려왔다.

부평풍물대축제를 만든 주역들이다. 인천시 전문예술단체로 지정됐는가 하면, 지난해 문화·예술단체로는 인천 최초로 노동부 인증 사회적 기업에 오르기도 했다.

올해도 목표로 한 선 굵은 사업이 여럿 있다. '인천 전통연희 축제'를 하나 시작하겠다는 계획에, 전통설화에 바탕을 둔 창작 공연 작품을 완결하려고 한다. '잔치마당'의 변신을 위한 노력은 계속 진행중인 것이다.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은 인천지역 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 가무악 공연에 집중하고 있다. 작품은 지난해 올린 '인천 아리랑'.

▲공연장 상주단체로 제 구실 찾기 2년

인천문화재단이 지역 내 공연장과 공연예술단체 결합을 통해 협력 프로그램을 확산시킨다는 취지로 지난해 시행한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 사업에서 모두 6개 단체가 선정됐다.

각각의 예술단은 특정 공연장 내 상주단체, 혹은 속속 예술단 개념으로 활동하되, 그 기간은 2010년 5월부터 2012년 2월까지다.

'잔치마당'도 6개팀의 대열에 합류해 공연장은 중구에 있는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으로 낙점됐다.

상주단체로 활동을 펼친 후 1년. 6개 단체 중 가장 이상적인 결합으로 성과물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잔치마당'으로선 제대로 역할을 해낸 시간이었다.

그러나 1년 전 당시로 되돌아보았을 때 상황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의욕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잔치마당의 출발점은 부평입니다. 부평풍물축제를 기획해 확산시켜왔다고 자부할 수 있지요. 앞으로도 계속 부평을 근거로 가고자 했습니다. 부평풍물축제 결과 탄생한 장소가 부평아트센터라는 판단을 했어요. 그 안에 들어가 풍물전문단체로 역할을 하고자 원했습니다. 그런데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소속단체가 된 것이지요." 서광일 잔치마당 대표가 당시 상황을 전한다.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측도 전통연희단보다 극단을 윈했다. 어긋난 출발이었다.

"상호 지향점이 다르므로 어려울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공연이 재산이므로 관객에 맞춘 공연을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속단체로 들어가느냐, 작품으로 결합하느냐 중 후자를 택했습니다."

선택이 옳았다. 작품에 대한 기획은 철처히 예술단의 몫으로 돌아갔다. 회관측에서는 간섭은 가능한 적게 하되, 적극인 지원자로 나서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공연한 파트너십을 만들어간 것이다.

"학생 관객을 겨냥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고3 수험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을 한다거나, 회관측에서 운영하고 있는 예술영재를 염두에 두고 교육사업을 펼치기도 했지요."

한편으로는 잔치마당 본연의 창작공연과 전통 장르에 대한 확산 교육도 병행했다. 인천 섬지역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창작 가무악극 '인천아리랑' 무대, 전남 우도 농악 설장구 예능보유자 김동언 선생 초청 교육 등이 그 성과물이다.

"상주단체라는 개념을 창출하기 위해 서로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호 끊임없이 지역과 문화·예술에 대해 고민을 했지요. 올해도 그 기준을 그대로 갖고 갑니다."
'잔치마당'을 만들고 지금까지 이끌어온 서광일 대표.

 ▲풍물의 장을 열다

'잔치마당' 중심에는 서광일 대표가 있다. 잔치마당과 그의 풍물 인생은 하나로 통한다. 풍물을 대중화시키겠다는 의욕으로 출발해 어느새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풍물과 처음 접했을 당시는 몰랐다. 풍물이 자신의 인생에서 '키 워드'가 될지 상상조차 못했다. 노동운동 수단으로 시작한 풍물은 운동이 지나가고 난 뒤 그에게 놀이로 다가왔다.

"풍물을 배우는 것 자체가 소위 운동권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시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풍물을 접했지만 전통문화운동을 해보고 싶다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생활 속에서 풍물을 즐기자는 것이지요. 부평 백마장 인근에 공간을 마련하고 시민을 대상으로 풍물 강습을 시작했지요."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다. 회원 정기 강습이 쌓이면서 정기공연을 기획했다. '풍물패 잔치마당'이 창단되는 순간이다. 사람들 사이 입소문이 퍼져나가면서 회원이 꾸준히 늘어났다. 그만큼 공연 회수도 늘어갔다.

"어느날 노인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삼산동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이었어요. 재개발로 마을이 이전할 상황인데, 마지막으로 마을 대동 고사를 지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단오날마다 행해져 온 풍물을 재현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그후 6개월에 걸친 강습 끝에 단오날을 맞아 '마지막' 대동축제를 펼친다. 가치 있는 옛것을 찾아내서 다시 재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점에서 서 대표는 의미 깊은 사건이었다고 짚었다.

끝이 아니었다. 대동축제에 초대됐던 당시 부평구청장이 그에게 지역축제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이보다 더 신이 날 수는 없었죠. 저를 포함한 풍물잽이들과 행사기획자를 중심으로 풍물축제 기획단을 구성했습니다."

1997년 10월1일 부평 구민의 날 '제1회 부평풍물 대축제'가 탄생한다. 21개 동 풍물단이 한 자리에서 연합 공연을 선보였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풍물단을 초대했다. 그야말로 멋진 출발이었다.

"풍물축제를 하려면 풍물을 하는 사람이 바글바글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마다 풍물단을 꾸리는 것이 답이었어요. 21개 동마다 풍물단을 꾸리고 강습해 600여명에 달하는 연합팀을 만들었지요."

이후 축제는 양적·질적인 확장을 거듭해간다. 일반인과 학생들이 참여하는 경연대회를 만들고 전국 창작풍물놀이 경연을 더했다. 경쟁력 있는 축제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다양한 결합을 시도한다. 그 결과 2007년과 2008년에는 전국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는 개가를 올린다. 그 안에는 서 대표와 '잔치마당'의 땀이 배어 있다.

"올해로 15주년 행사를 치렀습니다. 이번 행사를 냉정히 평가하자면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최근 2~3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조직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목표는 출발 당시 그랬듯이 지역민이 참여하는 축제입니다. 할 수 있습니다."
'잔치마당'은 풍물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와의 결합을 시도, 전통연희의 새로운 장을 열어왔다.

▲풍물패에서 전통연희단으로

"창단 10여년을 지난 시점 우리 단체에 대한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풍물패라는 이름이 오히려 굴레가 됐지요. 풍물의 대중화는 어느 정도 끌어올렸지만 예술단으로서 차별성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풍물을 중심에 두고 다른 장르와 협연을 시도했다. 대상은 록밴드이기도 하고, 전자바이올린이기도 했다. 장르 간 '크로스 오버' 무대는 단위 공연으로 성과를 거둔다. 한 발 더 나아가 '잔치마당' 고유의 작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가(歌)·무(舞)·악(樂)을 모두 수용하는 것, 바로 '전통연희'라는 답을 찾았습니다. 풍물에서 탈피해 팀 이름도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으로 바꾸게 됩니다."

동시에 전용공간의 필요성을 느꼈다. 서울 난타 전용소극장처럼 연중 상설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었다.

곧바로 실행으로 옮긴다. '잔치마당 아트홀'이라는 간판을 달고 풍물전용소극장에서 시작해 점차 국악전용극장으로 옮겨갔다. 그 세월이 어언 7년째다.

"올 들어서는 시민들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맞춰 금요상설을 목요상설로 바꾸었습니다. 공연 형식도 한 단체가 한 달동안 네 무대를 이어가는 방식이지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합니다. 평균 객석 점유율이 70%에 달하거든요." 말 끝에 환한 웃음을 다는 서 대표다.

▲전통연희 장르 확산을 위해

지난해부터 집중하고 있는 일이 있다. 잔치마당을 대표하는 창작 연희 작품을 만드는 일이다. 지난해 말 무대에 올린 '인천아리랑' 이야기를 꺼낸다.

"인천 지역 고유의 설화를 소재로 가·무·악을 녹여 스토리텔링하는 겁니다. 장봉도에 가면 인어에 얽힌 설화가 있어요. 무의도는 춤과 관련된 설화가 있지요. 연평도는 임경업 장군, 백령도는 심청을 중심으로 전설이 있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우선 장봉도를 골라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화 수집에 나섰습니다. 그리해서 탄생한 작품이 '인천아리랑'입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향토문화를 끄집어내서 예술로 완성하는 것이야말로 '잔치마당'의 존재이유라고 말한다.

"지난해 선보인 작품은 쇼 케이스 형식입니다. 올해는 다듬고 더해서 완성된 작품을 선보일 겁니다."

수행해야 할 계획이 또 있다 가칭 '인천 전통연희 축제'를 열려고 한다.

"향토 민요를 주제로 세미나를 해보니 소재가 무궁무진했습니다. 이들을 엮어서 향토민요경연대회를 열려고 합니다. 단순한 발표의 장을 넘어 인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자는 의도입니다. 인천지역 곳곳에 소리가 상당합니다. 그나마 발굴돼도 계승이 안 되는 것이 더 큰 문제이지요. 소중한 유산들을 일반인이 향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인터뷰 마무리는 전통연희 축제 확산 이야기다.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꺼낸다.

"인천에서 열리는 만큼 우리가 해야지요. 인천의 예술단체가 충분히 치를 수 있습니다. 예컨대 폐막식 정도는 우리 손으로 준비하자는 겁니다. 가장 인천적인 것을 보여주는 일, 그것이 가장 세계적인 일이니까요. 전통연희 축제를 하는 이유는 그래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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