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회가 주민자치를 이루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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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회가 주민자치를 이루려면
  • 임승관
  • 승인 2021.06.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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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상] 임승관 /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대표

 

그동안 일어나는 사회 문제들은 시민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부나 시장이 정해서 알려주면 시민들은 이를 지키고 따르면서 해결했다. 하지만 근래 발생하는 사회 문제들은 점점 다양해지고 복잡하며 역동적인 특성으로 점점 고약해지고 있다. 그동안 정부나 시장이 주도해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을 제시하는 방식으로는 해결이 점점 불가능해 지고 있다.

10년 전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 지면서 이를 근거로 지금 동마다 ‘주민자치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주민자치 정책은 지방분권 활성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두 가지 영향을 기대했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와 지자체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 원리는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한 결정권을 주민에게 주어 참여 동기를 높이고, 이 과정에서 자치단체는 주민들이 제공하는 세밀하고 구체적인 지역 현안과 정보를 토대로 만족도와 실행 효과가 높은 정책을 만들어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주민자치’ 운영은 그 역사와 추진 목적에 비해 효과가 크지 않으며 심지어 과거 운영 방법으로 돌아가는 지역도 많다. 그래서 주민 대부분은 ‘주민자치회’ 기능과 역할에 대해 잘 모르거나 대략 알고 있어도 특별한 관심이 없다. ‘주민자치회’에 대한 주민이 갖는 관심과 호기심은 바뀐 자치회 활동으로 인해 전과 다른 색다른 경험을 했거나 함께 이룬 작은 성공으로 변화에 대한 희망을 느낄 때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결정권이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두게 하는 것은 맞지만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적고 한정돼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주민자치회’ 위원들 외 주민들이 마을 의제 선정이나 결정에 개입한 경험이 없거나 수동적인 선호 표현에 그치며, 예산 활용과 적절한 분배에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의견을 제시한 경험이 대부분 없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주민자치회 위원들이 주민들과 정서적으로 느끼는 차이와 간격이다. 즉, 주민자치회 위원들의 관료주의.

이전 주민자치위원회 시기부터 활동을 이어가는 주민자치회 위원들은 활동 기간에 따라 다양한 정책에 대한 정보나 행정 절차에 대한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 의도나 목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동의하는 수준도 높아진다. 자연스럽게 주민자치회 위원의 ‘역량’은 행정 절차에 대한 이해나 처리 능력과 동일한 의미가 된다. 이 역량에 대한 의미는 어떤 사업의 성과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위원을 축하하는 자리 축사를 통해 강화되고 공인된다.

이러한 주민자치회 위원의 관료화는 주민에 대한 인식과 역할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를 준다. 주민자치회 위원들은 시나 군·구’에서 진행하는 정책에 동참하는 사업을 추진하거나 다양한 지원 사업을 일정에 맞춰 바쁘게 진행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 이 과정에서 위원들의 참여와 결속력을 기대하며 사업 결과나 성과를 다른 동과 경쟁하는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목표 의식과 분위기는 주민을 정책에 협조해야 하는 수동적 수혜자로 보게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일과 행정 절차에 익숙한 자치회 위원은 간사나 간부 역할이 맡겨지며 역할과 권한이 많아진다. 반면 신규 위원들은 정기 회의나 온라인으로 결과 보고를 받고 실천 사업에 동원되는 역할에 점점 재미를 잃고 참여에 부담을 느끼며 뜸해진다.

마을 공동체 사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한 일본 활동가가 있다. 커뮤니티 디자이너 ‘야마자키 료’다. 그는 주민 공동체가 서로 협동하며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활성화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즐거운 마음 즉, ‘재미’라고 한다. 그러면서 ‘재미’를 이루는 세 가지 조건과 그 조건들은 균형을 강조한다. 세 조건은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의 조화와 균형이다. 이 조건으로 보면 우리 주민자치회는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균형을 잃은 활동을 한다. 재미가 없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하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중요한 전제다. 기존 위원들과 신규 위원들 간 자유롭고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하며 다음은 정책 이해 당사자인 주민들과 의사소통이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30명이 넘는 대부분 주민자치회 위원은 강하게 먼저 주장하거나 논리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소수 위원에게 쉽게 동의를 표현하고 엄숙한 침묵을 지킨다. 매월 주민자치회 회의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하고 싶은 것’의 발견을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찾아서라도 구성원 누구나 자유롭고 수평적인 표현을 어렵게 하는 벽을 깨야 한다.

2017년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에서 이에 관한 재미있고 구체적인 방법을 친절한 매뉴얼로 만들었다. 논의 참여자가 주제에 대해 쉽게 이야기한다. 진행자는 서로 주고받은 논의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해서 도움을 주거나 새로운 의견이나 내용을 제시해 활기를 북돋는다. 이 회의는 간단한 게임과 같은 규칙을 미리 합의하고 시작한다. 그래서 참여자들은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논의 내용은 한층 깊어진다. 빙고 게임, 카드 게임, XY 게임, 신호등 토론 등 익숙한 게임 원리를 활용하여 진행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참여하고 몰입할 수 있다.

이 방법은 2차 세계대전 후 독일 민주주의 발전과 정착에 기여하고 동서독 통일 후에 민주주의 성숙과 사회통합에 기여한 ‘보이텔스바흐 합의’ 3원칙을 바탕에 두고 있다고 한다. 그 3원칙은 첫째, 참여자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게 강제성을 금지하고, 서로 대립적인 관점이 있더라도 모두 드러날 수 있게 충분한 논쟁을 도우며,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평판과 체면은 공동체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사회적 위계질서가 작동하는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주민자치회 회의에서 (눈치 없어 보일 수 있는) 허심탄회하고 솔직한 표현과 토론은 기대하기 어렵다. 자유로운 토론과 수평적인 합의 과정 없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없으며 주민자치제도의 성장도 불가능하다.

온라인에는 주민자치회의 의미를 설명하고 성공을 위한 방안을 알려주는 많은 영상이 있다. 대부분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나 관심을 호소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의 주인의식이나 시민의식, 열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듣고 있으면 부끄러움이나 열등감 미안한 마음을 느껴 각성을 바라는 것 같다. 하지만 쉽고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우선 해보자. 회의 방법과 절차에 변화를 주고 변화나 효과를 보며 우리에 맞는 매뉴얼을 만들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변화는 기존 문화와 절차에 익숙한 기득권을 가진 위원들도 쉽게 동의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세련된 방법이어야 한다. 모든 지역은 차별화된 경제 환경과 지리적 특성, 나름의 다양한 전통이 있다. 신입 위원들에게 전수되어 성장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러기 위해 불필요한 배타적 위기의식은 시작도 하기 전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을 지닌 능숙한 회의 운영자(Facilitator) 교육과 양성, 배치로 실행하여 관료주의 양성을 멈춰야 한다. 새로운 돌파구 마련은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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