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현경(太玄經), 소남보다 앞서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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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현경(太玄經), 소남보다 앞서는 사람은 없다.
  • 송성섭
  • 승인 2021.06.15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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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르는 소남 윤동규]
(12) 소남과 태현경

인천의 잊혀진 실학자, 소남(邵南) 윤동규(1695~1773) 탄생 325주년를 맞아 [인천in]은 소남의 삶과 업적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특집기사를 기획해 격주로 연재합니다. 송성섭 박사(동양철학),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원재연 박사, 허경진 연세대 명예교수, 3분이 집필합니다.

 

이번에 소남 선생과 관련하여 언급할 이야기는 '또 하나의 주역'이라고 일컫는 태현경에 관한 내용이다. 혹자는 미국 NASA에서 제작한 로버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 탐사선 이름)가 화성의 고대 삼각주로 추정되는 '예제로 크레이터'(Jezero Crater)에서 보내온 사진을 인터넷을 통해 감상할 수 있는 시대에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왜 주역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혹자는 현대 물리학을 통해 중성자, 양성자, 전자와 같은 여러 가지 입자들의 운동을 이해하게 된 첨단 과학의 시대에 왜 점치는 책 주역 얘기냐고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시대가 아니라, 양자 역학의 시대이기 때문에 주역과 태현경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물론 태현경은 소남 윤동규 선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두기로 하자.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마시는 공기도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의 몸도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먹는 밥도, 김치도, 물도, 고기도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뇌도 컴퓨터도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모든 물질을 이루는 원자 세계를 연구하는 학문을 양자 역학이라고 하는데, 양자 역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양자 역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닐스 보어이다.

보어는 철학자의 풍모를 지닌 물리학자로 전해진다. 수소의 선 스펙트럼을 설명하면서 원자의 구조에 대한 가설을 내놓아 1922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보어는 서양의 근현대 과학자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주역 등의 동양철학에 심취하였는데, 양자역학의 원리와 주역의 음양이론이 서로 연관성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역의 태극을 아예 가문의 문장으로서 채택하였으며, 노벨상을 타러 갈 때도 팔괘도가 그려진 옷을 입고 갈 정도로 주역 철학에 빠져든 이가 바로 보어였다.

 

보어의 가문의 문장(紋章)(좌) 주돈이의 태극도설
보어의 가문의 문장(紋章)(좌) 주돈이의 태극도설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인 것이다(Contraria sunt Complementa)”. 보어가 가문의 문장에 새긴 글귀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없을 때, 보어는 그것을 상보성이라 불렀다. 원자의 입자와 파동이 그 좋은 예다. 전자는 입자이면서 또한 파동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입자성과 파동성은 상보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동시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전자는 작은 알갱이의 입자이다. 전자라는 입자를 바람개비에 쏘아 주면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전자가 야구공처럼 질량을 가진 입자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또한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파동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실험이 필요하다, 벽에 2개의 구멍을 뚫고, 벽을 향해 전자를 쏘아 보자. 물론 벽 뒤에는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다. 만약에 전자가 야구공 같은 입자라면, 두 개의 구멍을 통과한 전자는 스크린에 도달하여 두 개의 줄무늬를 형성할 것이다.

전자의 입자성
전자의 입자성

그런데 실험의 결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스크린에 두 개의 줄무늬가 아니라 여러 개의 줄무늬가 형성된 것이다.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전자의 파동성에 의해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통과했기 때문에 여러 개의 줄무늬, 즉 간섭무늬가 스크린에 생긴 것이다.

전자의 파동성
전자의 파동성

전자의 입자성과 파동성이 상보적 관계에 있듯이, 음양(陰陽)도 상보적 관계에 있다. 전자는 입자이면서 파동인데, 측정을 하게 되면 입자 또는 파동만이 관측된다. 측정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입자와 파동이라는 두 가지 중첩상태 중에서 한 가지 상태만이 관찰된다는 것이다. 태극(太極)도 마찬가지이다.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을 보면, 태극은 음(陰)이면서 양(陽)이고, 양(陽)이면서 음(陰)인 중첩상태이다. 또한 양(陽) 속에 음(陰)이 잠재되어 있고, 음(陰) 속에도 양(陽)이 잠재되어 있다. 그런데 측정이라는 단계를 거치게 되면, 즉 우리가 관찰을 하게 되면,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음기(陰氣) 또는 양기(陽氣)일 뿐이다. 달리 말하면, 태극은 측정되지 않는다. 음양(陰陽)이 중첩되어 있는 태극은 측정이라는 방법을 통해서는 파악되지 않는다. 측정하는 순간에 태극은 음(陰)이나 양(陽)으로 정해진다. 측정이라는 행위가 대상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 양자 역학의 설명이다.

 

음양도
음양도

 

양자 역학의 또 다른 비밀은 양자 도약이다. 원자는 양(陽, +)전하를 띤 원자핵과 음(陰, ―)전하를 띤 전자로 되어 있으며,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다. 그리고 전자의 원운동 궤도는 공간적으로 띄엄띄엄하게 존재한다. 마치 태양을 중심으로 수성과 금성, 지구, 화성, 목성 등이 띄엄띄엄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띄엄띄엄한 궤도들 사이를 전자가 이동하는 방법이다. 전자는 이웃한 두 궤도를 이동할 때, 그 사이의 공간에 존재하지 않으면서 불연속적으로 지나간다. 마치 지구 궤도에 있던 전자가 갑자기 사라져서 화성 궤도에 나타나는 방식으로 전자는 도약한다는 것이 양자 도약이다.

 

보어의 원자 모형
보어의 원자 모형

 

주역(周易)도 마찬가지이다. 주역에는 여섯 개의 효(爻)가 있는데, 여섯 개의 궤도가 있다고 생각하면 무난하다. 그런데 주역에서도 양자 도약이 일어난다. 첫 번째 효(爻)에 있던 음양(陰陽)이 갑자기 점프하여 두 번째 궤도로 이동하거나, 그밖의 다른 궤도로 도약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양자 역학의 아버지 닐스 보어가 태극도설을 가문의 문장으로 삼았을 것이다.

태현경은 또 하나의 주역으로 불린다. 비록 주역이 2수(數) 체계를 위주로 하고, 태현경이 3수(數) 체계를 위주로 한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주역의 논리와 태현경의 논리가 같다는 것이다. 태현경은 중국 전한 말기의 사상가이며 문장가인 양웅(楊雄: B.C 53 ~ A.D 18)의 저작인데, 그는 경(經)으로는 『역(易)』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고 여겨 『태현(太玄)』을 지었고, 전(傳)으로는 『논어』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고 여겨 『법언(法言)』을 지었다.

 

81首
81首

 

그런데 소남 윤동규 선생께서는 태현경에 독보적인 존재셨다. 순암(順庵) 안정복이 지은 소남 행장(行狀)에 의하면, 소남의 스승이었던 성호 이익은 “양웅(楊雄)의 태현경(太玄經)에 대해서 명나라 선비 몇몇 사람은 태현경(太玄經)의 원본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였는데, 윤아무개는 한 번 보고서 환히 알고 그 취지를 설명하였으니, 지금 시대에 이치를 연구하는 학자 가운데 그보다 앞서는 사람이 없다.”고 평하였다. 소남 문집의 「잡저(雜著)」편에는 태현경에 관한 두 편의 글이 전하고 있는데, 지면상 이에 대한 소개는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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