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죠? 책방 전체가 따뜻해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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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죠? 책방 전체가 따뜻해지는 느낌
  • 신안나
  • 승인 2021.06.18 0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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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60) 책방지기의 스트레스 해소법 - 신안나 / '바람숲' 책방지기

 

- 책방은 책방지기의 치유의 공간

얼마 전 손님으로부터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 “외딴 곳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책방을 관리하면서 의외로 스트레스도 많을 것 같은데,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며 지내세요?” 일단,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 많은 것은 사실인데.. ‘내가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는지’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딱히 ‘스트레스’라고 할 만한 것을 받지 않는 건지, 아니면 나 자신을 너무 돌보고 있지 않은 건지 아리송했다.

차근차근 되짚어가며 생각해보면 도시에 살며 직장에 다닐 때는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며 주말이면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거나, 여기저기 참 많이 쏘다녔던 것 같은데... 지금은? 지금은 한바탕 시끌벅적 하던 책방과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간 후 먼지를 쓸어 내고 사람들의 흔적을 정리하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평화로워진다. 그리고 휴일 아무도 오지 않는 책방에서 혼자 책을 살펴보고 배치를 바꿔보면서 할 일 없는 듯 뒹굴뒹굴, 빈둥거리는 시간이 참 좋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책방을 운영하면서는 더 이상 밖을 헤매고 다니지 않게 되었고, 안식처를 갖게 된 느낌이랄까? 책방은 다른 사람을 반갑게 만나고 소통하는 장소이기 이전에 책방지기를 치유하는 공간이 되었다.

 

 

- 서로를 보듬기

바람숲에는 특별한 손님이 몇 있는데, 그 중 단연 1위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다녀가는 ‘그분’이다. ‘그분’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름도 모르고 눈에 보이는 것 외에는 서로의 삶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조용히 책방에서 책을 고르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구입한 책을 보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약속 시간에 늦었다’며 서둘러 떠나곤 한다. 그런데, 정말 왠지 그녀가 책방 안에 함께 있으면 책방 전체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은근히 기다리게 되는데.. 기다리다 잊을만하면 갑자기 찾아와 무심한 듯 현관에 사과 한 상자를 툭 내려놓고 책을 고른다. 다음에 오면 긴 이야기를 나누어봐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분’이 오면 아무렇지 않게 차를 준비하고 아무 말 없이 그렇게 함께 있게 된다. 마음씨 좋은 신(神)이 잠시 함께 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푸근한 산타할머니의 선물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주 애틋하고 특별한 애정이 아니라도 잠시 스쳐 지나가면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와 온기를 전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피로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사람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기도 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 서툴지만 흙을 만지는 일

강화도에 온 첫 해에는 큰 꿈을 갖고 책방 바로 앞 500평의 밭을 빌려 고구마 농사를 지었었다. 기계를 빌려 땅을 갈고, 고구마 순을 심고, 고구마 고랑 사이에 난 잡초를 뽑고 또 뽑다 지쳐 결국 두 손 두발 모두 들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잡초에 고구마 순은 힘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햇빛도 보지 못해 절반 이상이 사라졌고, 그 나머지 중 절반은 두더지가 다 파먹고.... 몇 상자 수확하지 못했었다. 그 뒤에도 비슷한 일을 몇 해 반복하다가 “농사는 아무나 하나?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고, 나에게 맞지 않아” 라고 말하며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이제야 나에게 딱 맞는 적당한 즐거움을 찾게 되었다. 상추 몇 개, 고추 몇 개, 방울토마토, 허브를 심어 한두 평 정도의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방심한 사이 풀이 더 크게 자라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지지대를 세우고, 순을 따주며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주며 이 작은 생명들을 돌보는 기쁨은 생각보다 크다. 머리가 복잡한 날은 작은 텃밭으로 나가 잡초를 뽑고, 밭에서 갓 딴 상추로 점심 식사를 하고, 허브 잎을 따다가 손님들의 찻잔에 올리기도 한다.

여전히 서툴지만 흙을 만지며 텃밭을 가꾸는 일상이 참 좋다. 무리하게 감당하지 못할 크기의 땅에 농사를 지으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일인지 판단해서 스트레스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시골에서 책방을 운영하면서 사는 게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생각을 은근히 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그 이전의 삶에 비하면 느리고 답답해 보이지만 훨씬 더 평화롭고 스트레스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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