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를 반대하는 세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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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를 반대하는 세 가지 이유
  • 배성수
  • 승인 2021.07.13 06: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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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수가 바라보는 인천 문화유산]
(4) 조사결과 전 철거 결정한 시민위 - 배성수 / 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

 

 

지난 6월 17일 캠프마켓 시민참여위원회는 일제강점기 지어진 일본 육군 인천조병창의 병원 건물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건물 인근 토양에서 다이옥신 등 맹독성 물질이 발견돼 정화작업을 위해 철거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향후 시민 사회에 개방해야할 공간이기에 정화작업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건물을 보존하면서 토양을 정화해가는 방식은 생각할 수 없었을까? 신속한 정화를 위해 철거하기엔 이 건물이 갖는 의미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 하나. 조병창, 일본이 지우고 싶은 가해의 기억

조병창(造兵廠)은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에서 직접 운영했던 무기 공장이다.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 일제는 일본육군병기창 산하에 모두 8개의 조병창을 두고 무기와 군수품을 직접 생산했다. 그 중 여섯 개는 도쿄와 오사카 등 일본 본토에 두었고, 식민지였던 조선의 인천과 만주국 봉천(지금 심양) 등 해외에 두 개를 설치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할 때까지 8개 조병창에서는 소총에서 화포와 잠수정까지 다양한 무기를 생산하며 전쟁을 지원했다. 전쟁이 끝난 뒤 패전국 일본은 평화헌법을 제정하여 더 이상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 본토에 설치했던 여섯 개의 조병창 중 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사가미조병창을 제외하고 대부분 철거하여 현재 공원이나 학교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 심양의 남만조병창도 거의 모든 시설이 철거되었고, 인천조병창은 광복 직후부터 미군이 사용해 왔기에 아직 많은 건물이 보존되고 있다. 일제가 설치한 8개의 조병창 중 사가미조병창과 인천조병창 정도만 원래의 흔적을 보존한 채 남아 있는 셈인데 사가미조병창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반면, 인천조병창은 조만간 반환이 완료되어 시민에게 개방될 예정이다.

 

도서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도쿄제1조병창 시설
도서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도쿄제1조병창 시설

 

패전 후 일본은 피해자로서의 기억만을 부각시키려 애써왔다. 히로시마의 원폭 돔을 그대로 보존하고, 핵폭탄이 투하된 지역에 평화공원과 자료관 등을 조성하여 전쟁으로 희생된 자국민을 추념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은 가해자로서의 기억은 철저히 지우고 싶어 했다. 자국 내에 있는 조병창 시설을 보존하지 않고 철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이해된다. 그들의 입장에서 전쟁 무기를 생산했던 조병창 또한 지우고 싶은 가해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광복 후 캠프마켓 등 미군 기지로 사용되다가 반환되는 부평의 인천조병창은 일제가 설치했던 조병창 전체의 구조와 규모를 살필 수 있는 유일한 시설이다. 아울러 일본이 그토록 지우고 싶어 했던 가해의 기억을 담고 있는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몇 개의 중요한 건물만 남기는 것 보다 가급적 많은 시설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인천조병창이 갖는 역사성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일본이 지우고 싶어 하는 가해의 기억들을 우리가 나서서 철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유 둘. 철거를 논하기에 앞서 충분한 조사가 필요하다

철거가 결정된 조병창 병원 건물은 지난해 미군이 반환했던 캠프마켓 ‘B구역’에 위치한다. 보도에 따르면 인천시는 시민참여위원회의 철거 결정에 따라 조병창 병원 건물 등을 철거하되 기록화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국방부에 보냈다. 국방부의 위탁을 받은 한국환경공단은 추가조사를 거쳐 건물을 철거한 뒤 토양을 정화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 한다.

기사만 보면 어째 모양새가 좀 이상하다. 철거를 결정한 뒤 조사를 진행한다니 마치 진찰을 통해 병명을 확인하기도 전에 환자를 수술대에 올리는 느낌이다. 조병창 건물에 대한 조사를 선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활용 계획을 수립한 후에야 철거 여부를 결정하는 것 아닌가? 철거가 결정된 병원 건물도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병창 본부로 알고 있던 건물이다.

 

02. 인천조병창 병원 건물(Norb Faye 1948년 촬영
인천조병창 병원 건물(Norb Faye 1948년 촬영)

 

그동안 인천조병창에 대한 조사는 지난 2017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실시했던 조병창 노무자들에 대한 구술채록 조사가 유일하다. 그 외 지난해부터 시립박물관이 반환이 완료된 캠프마켓 ‘B구역’에 남아있는 조병창 시설에 대한 현황조사를 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철거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다.

현재 조사 중인 ‘B구역’과 올해 반환될 ‘D구역’을 포함하여 조병창 전 구역을 제대로 조사하자면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를 일이다. 오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더라도 제대로 된 조사를 통해 남아있는 건물의 당초 용도와 구조, 규모를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그간 베일에 싸여 있던 인천조병창의 윤곽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철거할 건물과 남길 건물을 선정한 뒤,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계획이 수립되어야 하지 않을까?

 

03. 인천조병창 병원 현관에서 찍은 단체사진(부평역사박물관 제공)
인천조병창 병원 현관에서 찍은 단체사진(부평역사박물관 제공)

 

갑자기 큰 돈이 수중에 들어왔을 때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 갈팡질팡 할 때가 있다. 그런 것처럼 캠프마켓의 반환이 결정되기 수년 전부터 그 활용에 대한 장밋빛 계획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반환이 시작된 지금까지도 지자체와 시민단체, 주민들은 이곳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병창과 캠프마켓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이 공간이 그들이 말하는 평화박물관, 공연장, 호수공원 등 어떤 시설로 활용되어도 좋다. 다만, 활용을 논하기에 앞서 인천조병창이라는 공간과 각각의 건물에 어떤 의미와 역사성이 담겨있는지 정도는 밝혀내야 되는 것 아닌가.

 

이유 셋. 토양정화가 필요한 건물이 병원 건물뿐일까?

철거가 결정된 조병창 병원 건물은 원래 이층 벽돌조 건물로 길쭉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중앙 부분을 앞뒤로 돌출시켜 현관과 회랑으로 사용하였고, 건물의 양쪽 끝으로는 단층 건물을 직각으로 이어 붙였다. 조병창 시설 중 공장을 비교적 규모가 큰 건물이었기에 한동안 본부로 알려졌던 건물이다.

6.25전쟁 때 건물 중앙부가 훼손되자 미군은 이를 철거하고 양쪽의 날개 건물을 분리시켰다. 철거된 건물 중앙부 자리에는 현관에 사용했던 포치 기둥석과 계단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그 후 동쪽 건물은 막사 건물로 다시 지었고, 서쪽 건물은 이층을 철거한 채 1층만을 장교 클럽으로 사용해왔다. 이번에 철거가 결정된 병원 건물은 서쪽 단층 건물이다.

 

철거가 결정된 인천조병창 병원 건물과 중앙 현관의 흔적
철거가 결정된 인천조병창 병원 건물과 중앙 현관의 흔적

 

캠프마켓 시민참여위원회는 건물 주변 토양이 다이옥신 등 맹독성 물질로 오염되어 있어 부득이 조병창 병원 건물 등을 철거하고 정화해야 한다고 철거 이유를 밝혔다. 건물을 보존한 채 정화작업을 추진할 경우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란다. 뒤집어 생각하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감내한다면 건물을 보존하면서 토양정화를 추진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결국 토양정화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 절약을 위해 철거를 결정했다는 것인데 그런 논리라면 곧 반환될 ‘D구역’의 시설 중에서도 토양정화가 필요한 건물은 모두 철거해야 할 것이다. 용산 등 다른 지역도 그러하듯이 미군이 사용한 시설은 막사 주변을 제외하곤 대부분 토양정화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조병창 본부와 주물공장 등 핵심 시설이 위치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D구역’에도 토양정화가 필요한 건물이 허다할 것이다. 그때도 비용과 시간의 절약을 위해 철거를 결정할 것인지 시민참여위원회에 묻고 싶다. 이번 철거 결정이 하나의 기준이 되어 ‘D구역’에 남아있는 조병창 건물 철거를 결정짓는 도화선이 될까 걱정스럽다.

 

병원 건물 페인트 안으로 드러난 벽돌 구조
병원 건물 페인트 안으로 드러난 벽돌 구조

 

캠프마켓 시민참여위원회가 어떤 이들로 구성되었는지 그 면면을 알 수는 없지만, 시민 사회를 대표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되었음은 분명할 것이다. 전문가 그룹에서 내린 결정이기에 존중해야 함이 당연하겠지만, 아쉬움이 크게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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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2021-07-13 16:02:37
캠프마켓 시민참여위원회는 무얼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토양정화에 모든걸 다 부수면 되는 것인가?
건물을 살려두고 정화가 불가능한것도 아닌데
역사적인 건물들을 함부로 부수다니 적어도 이사람들은
다 부수고 그럴듯한 건물을 새로 지으면 다된다고 생각하는지 참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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