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하구 - 한반도 역사의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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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하구 - 한반도 역사의 중심지
  • 장정구
  • 승인 2021.07.22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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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하천이야기]
(42) 한강하구와 관미성, 화개산성과 오두산성
한강하구는 물이 빠지면 모래톱과 펄이 드러난다

 

“단순히 백제를 정복하기 위함이 아니다”
“앞으로 고구려가 나갈 방향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10년 전 방송되었던 KBS 대하드라마 ‘광개토태왕’에서 관미성 전투를 앞둔 담덕의 대사이다.  만주와 연해주를 정벌하기에 앞서 백제를 단속할 필요가 있었던 광개토태왕 담덕은 관미성을 공략했다. 관미성 전투는 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로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관미성의 존재와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광개토태왕이) 10월에 백제 관미성(關彌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그 성은 사면이 가파른 절벽으로 바닷물이 둘러싸고 있어 왕이 군사를 일곱 길로 나누어 20일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던 국내성, 압록강변에 우뚝 솟은 광개토대왕비에는 ‘영락 6년 병신년에 왕이 몸소 수군을 이끌고 잔국(백제)을 토벌하였다. 군은 영팔성, 구모로성, 각모로성, 간저리성, 각미성(閣彌城),,,,,,등을 공취(攻取)하고, 그 도성(위례성)에 다다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강하구의 화개산, 봉천산, 오두산 위치

 

조강, 한강하구 또는 임진강하구의 교동도 화개산에 오르면 드넓은 교동평야가 눈에 들어오른다. 남쪽은 송가도라 불렸던 석모도이고 동쪽은 강화의 별립산이다. 서쪽으로는 서검도, 볼음도와 말도, 북쪽으로는 연백이 한눈에 들어온다. 석모수로, 예성강, 조강을 오가는 배들은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조 때 교동에 삼도수군통어영을 설치한 이유를 금방 알겠다. 화개산 남쪽 읍내리에는 교동읍성과 남산포가 있다. 그 앞바다가 바로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의 수군이 훈련하던 응암량이다. 화개산에는 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화개산성은 길이가 2킬로미터가 넘는다. 산기슭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계곡을 감싸고 있는 포곡식(包谷式)으로 내성, 외성을 갖춘 산성이란다. 화개산성의 남쪽은 가파른 절벽이다.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고, 1555년 최세윤이 증축하고 1591년 이어양이 외성을 철거하여 읍성을 축조하는데 사용하였고 1737년에 개축하여 군창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단다.

화개산성 안에는 효자묘가 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가 시대적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병환 중인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효성이 지극한 젊은이가 있었고, 아버지의 공양식 제공을 댓가로 부잣집 아들을 대신하여 교동 화개산성에서 근무했고, 그 아버지는 아들의 안부를 걱정하며 산성 아래(현재 고구리)로 이사했고, 아들은 전투에서 살아남아 있다면 산성의 누대에 적삼을 걸어 생존을 알리기로 했는데 당시에는 봉화나 수기 신호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던 때라 수장은 적삼을 걸지 못하게 했고 아들이 죽은 줄 오해한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실을 알려져 수장은 아버지의 시신을 산성 내에 안장하고 삼년시묘를 허락했고, 수장과 병졸의 묘소 참배로 참배자국이 지워질 날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전투가 치열했던 과거 화개산성의 상황을 알수 있는 이야기이다.

 

오두산통일전망대 옆 오두산성 성벽
오두산통일전망대 옆 오두산성 성벽

 

한강과 임진강은 오두산 앞에서 만난다. 오두산은 자유로 옆이고 통일전망대가 있어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그러나 오두산에 산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전망대 주차장 약 50미터쯤 못 미쳐 왼쪽으로 작은 푯말이 있다. 오두산성이란다. 작은 흔적만이 남아있다. 오두산성은 오두산의 정상을 둘러싼 약 620m 길이의 백제성이다. 경사가 가파르고 서쪽은 임진강, 남쪽은 한강, 동쪽은 농경지, 북쪽은 산으로 이어진다. 남서쪽으로는 김포, 서북쪽으로는 북한의 개풍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오두산은 삼면이 가파르고 한강과 임진강 물이 휘돌아 흐른다. 조선시대부터 관미성이라 추정하고 있는 곳이다. 학계에 따르면 오두산성은 대략 삼국시대 ~ 통일신라 시기에 처음 쌓아졌으며 고려 ~ 조선 시대까지 여러 차례 새로 쌓아지며 사용되었다고 한다. 오두산성도 화개산성처럼 관련 유물이 확인되지 않아 관미성이라 확증하기는 어렵다.

‘강화 하음봉씨 자손,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4개부문 수상을 축하합니다.’
2020년 봄, 48번국도 강화 하점교차로에 현수막이 내걸렸다. 강화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아카데이 작품상과 감독상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을 제법 많이 본 듯하다. 강화 하점면의 옛이름이 하음이다. 봉준호 감독의 본관(本貫)이 바로 강화 하점이다.

옛날이야기에 의하면 고려 때 한 할머니가 빨래하던 중 하늘에 오색구름이 떠오르면서 돌상자 하나가 떠올랐고 그 안에는 옥동자가 있었고 왕에게 바쳤고 나라를 잘 받들고 크게 도우라며 봉우라는 이름을 내렸고 과거에 급제해서 많은 공을 세워 하음백에 봉해졌단다. 봉우가 태어났다는 봉가지(奉哥池)라는 연못은 봉천산 아래 있다. 강화고인돌박물관 뒤로 보이는 산이 봉천산이다. 봉천산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봉천대가 있다. 봉천산 기슭에는 보물 제10호 지정된 장정리 오층석탑(봉은사지 오층석탑)이 있다.

관미성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와 광개토대왕릉비에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관미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통일전망대가 있는 파주의 오두산성(김정호, 윤일녕 등), 교동도의 화개산성(이병도), 강화의 봉천산 하음산성 그 외 개성 인근이라는 주장도 있다. 사면이 깎아지른 듯 가파르고 바다로 둘러싸인 요새라는 설명에서 세 곳 모두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어쨌든 인천경기만, 한강과 임진강의 하구 어디쯤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백제의 수도가 위례(서울)였고 고구려와 백제 모두에게 요충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강하구, 임진강하구, 인천경기만은 1천6백년 전 삼국시대에도, 고려와 조선, 지금도 한반도 역사의 중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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