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정말 정의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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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정말 정의로운가?”
  • 최원영
  • 승인 2021.07.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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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10화

 

 

오늘은 다소 무거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목은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정말 정의로운가입니다.

서툰 인생을 위한 철학수업(안광복)에 라인홀드 니부어 교수가 지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의 내용이 나오는 데요.

우리가 정의롭다고 여기던 것들이 얼마나 정의롭지 않은지, 그리고 우리들 각자가 그것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책에 나온 몇 문장을 먼저 전해드리겠습니다.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지만, 사회는 비도덕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보자. 담장을 어디 쌓을지 놓고 이웃과 언쟁할 때 나는 옆집과 나눈 정 때문에 탐탁하지 않아도 몇 평 정도는 손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국가 사이에는 불가능하다. 영토분쟁이 일어났을 때 통 큰 리더가 섬 하나 정도 그냥 주자.’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이처럼 집단이 커질수록 도덕심과는 무관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한 사회를 사람으로 본다면, 그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교만한 사람이라고 그는 말한다.

의협심이 넘치는 개인은 집단의 이기적 목표를 위해 쉽게 희생당하곤 한다. 자기를 위해서라면 파리 하나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이 나라를 위해선 불굴의 전사로 바뀌니까. 국가는 도덕적이고 숭고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작은 집단에서도 그렇다. 상대를 때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 학교끼리 시비가 붙으면 이런 사실을 망각한다.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라는 명분 탓에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처럼 말이다.

 

일리가 있는 분석이죠? ‘명분이라는 포장지에 갇혀 그 내용물이 정의로운지 아닌지조차도 모른 채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르곤 합니다.

그래서 이게 정의로운 사회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르곤 합니다. 이런 궁금증이 들 때 라인홀드 니부어 교수는 이렇게 조언을 합니다.

 

따라서 정의를 외치기 전에 차분히 자문하라.

과연 내가 앞장서 대표하려는 집단은 정의롭고 올바른가?’

나는 과연 집단의 올바른 목적 때문에 흥분하고 있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하라.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 특히 국가 차원에서는 자기 합리화가 훨씬 더 심하기 때문에 정의롭지 않은 것도 단숨에 정의로운 것으로 탈바꿈되곤 합니다. 책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보겠습니다.

 

집단은 항상 이익을 도덕과 정의로 포장한다. 니부어 교수는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은 미국의 매킨리 대통령의 고백을 예로 든다.

나는 밤새 뒤척이면서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필리핀을 점령해서 교육으로 그들의 눈을 뜨게 하고 기독교 정신을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하느님의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말이다. 그 후에야 편히 잠들었다.’

 

그의 고민은 필리핀 점령의 명분을 찾는 데 있었다.

교육으로 문명을 심어준다.’라는 뜻은 그럴듯한 사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훗날 필리핀의 값싼 사탕수수가 미국으로 밀려 들어와 자국의 농민들을 곤혹스럽게 하자, 필리핀을 독립시켜 사탕수수에 매길 관세를 궁리했다.

 

필리핀 점령의 명분은 교육을 통해 필리핀을 행복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지만, 상황이 바뀌니까, 필리핀을 독립시켜 필리핀에서 수입되는 사탕수수에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을 여러분은 쉽게 납득하실 수 있나요?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이 말하는 정의로움에 우리는 당연히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겁니다.

 

아픈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은 집단이나 국가의 비도덕적인 행위가 있어서입니다. 이런 비도덕적인 행위가 가능한 것은 비도덕적인 행위조차 정당하다고 믿게 하는 자기 합리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니부어 교수의 주장을 소개한 후 저자는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집단은 개인의 허영심을 이용하기까지 한다. 누구에게나 일상은 재미없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전체를 위해 뭔가 한다는 느낌은 내가 남보다 더 나은, 더 숭고한 일을 한다는 환상을 준다. 훈장이나 상장의 위력이 그것이다. 표창이란 것이 얼마나 우쭐대게 하는가? 훈장을 주렁주렁 단 리더도 같다. 범접 못 할 대단한 사람이고, 나를 위해 희생할 만하다는 확신을 준다. 이렇듯 집단이 주는 환상에 빠져 자신을 내던진다.

이제 나를 점검할 차례다. 집단이 내세우는 명분이 과연 정의로운가? 단지 멋진 장식이나 문구, 또는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진 않나? 허영심은 언제나 위험하다. 총대를 짊어지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물어보라.

 

힘 있는 사람들의 주장과 온갖 미디어가 우리의 생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

보통사람들은 미디어라는 창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어떤 성향의 미디어를 주로 접하느냐가 우리의 생각이나 판단을 결정하곤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옳다고 믿는 판단이 사실은 미디어의 판단이었을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가 주로 접촉하고 있는 미디어와 내가 따르는 리더의 주장을 절대 선이라고 믿게 되어 내 생각이나 판단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비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 스스로가 미디어나 리더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정의롭지 않은 것을 정의롭다고 굳게 믿어버리고,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쉽게 으로 규정해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불특정 다수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나와 다른 진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원수로 여기고 다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야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저자인 니부어 교수님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저자의 충고처럼 첨예한 갈등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저도 이렇게 질문해보려 합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이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

단지 그럴듯한 명분만을 보이는 것은 아닌가?’

그들이 만들어놓은 분위기에 내가 혹시 휩쓸린 것은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그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시각이 전혀 다른 미디어의 내용에도 관심을 가져야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겉으로 보이는 말이나 글에 현혹되지 않고, 그들의 숨겨진 욕망을 읽어낼 수 있는 현명한 시민이 많을수록 사회는 더욱 건강해질 것이라는 믿음도 가져봅니다.

 

끝으로 니부어 교수의 이 말을 전해드리면서 오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특권계급은 자신의 특권을 평등과 정의로 포장한다. 자신들의 특권이 보편적 이익에 봉사한다는 교묘한 증거를 창안해 내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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