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가들의 말이 모두 맞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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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가들의 말이 모두 맞는 이유
  • 최원영
  • 승인 2021.08.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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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11화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 합리화가 매우 심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스스로가 믿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행동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 믿게 하는 자기 합리화는 특히 이기적인 사람에게 많이 나타납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마치 소설을 쓰듯이 상황을 논리적으로 그럴듯하게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당하다고 믿어버립니다.

《현자들의 철학 우화》(한상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 아내에게 전하는 유언이 나옵니다.

 

“부인, 당신과 함께한 세월은 참으로 행복했소. 내가 떠나고 없어도 잘 살기를 바라오.”

“여보, 그래서 말인데, 혹시 누구에게 돈 꿔준 일은 없나요?”

“있지. 토미에게 10만 루피, 라마르틴에겐 20만 루피, 그리고 ….”

남편이 어렵게 말을 이어나가는 동안 마을 사람들이 들어오자 아내가 말했다.

“어쩜 마지막 순간까지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세요?”

그때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참, 알프레드에게는 50만 루피를 꾸었소.”

아내는 당황하며 말했다.

“어휴, 이제는 이 양반이 의식이 없어서 헛소리를 다 하네.”

 

재미있는 우화죠? 그러나 웃어넘기기에는 내용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이렇게 나의 이익을 위해서는 ‘사실’까지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나는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라고 자문하게 됩니다.

이제는 경계해야 합니다. 나의 행위를 나 스스로 포장한 것은 아닌지를요.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건강한 자기 합리화는 희망과 용기를 주기도 하지만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자기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태도만큼은

경계해야 합니다.

자기 합리화가 때로는 왜곡된 믿음을 갖게 하는 이유를 《스마트한 생각들》(롤프 도벨리)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난처한 상황에 빠진 CEO가 있다. 매출은 바닥이고 판매원들은 의욕을 잃었다.

마케팅 활동은 헛수고였다. 그래서 일당 5백만 원이나 하는 컨설턴트를 고용했다.

그는 회사를 분석하더니 보고서를 제출했다.

‘회사의 판매부서는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 회사상표는 시장에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지 못했다. 나는 제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필요하다. 매출은 향상되기 전에 한 번 더 하락할 거다.’

그래서 그를 고용했다.

1년 후 매출은 실제로 하락했다. 2년째도 그랬다.

매번 그는 회사의 모든 상황이 자신의 예언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3년이 지나도 여전했다. 회사는 마침내 그를 해고했다.

‘매출은 향상되기 전에 한 번 더 하락할 거다’라는 컨설턴트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시죠?

그것을 저자는 ‘더 좋아지기 전에 더 나빠지는 함정’이라고 부릅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언가들은 힘든 고비를 넘기면 좋아질 거라 말한다.

지금보다 나빠지면 아직 고비를 넘기지 못한 것이고,

더 좋아지면 자신의 능력이 입증된 것이니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그는 항상 옳다.

그러니까 어떤 상태가 되어도 예언가들의 말은 항상 참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저자의 충고를 조금 더 들어보겠습니다.

누군가가 더 좋아지기 전에 더 나빠진다고 말하면 의심하라.

침체기에 들어섰을 때 우리가 할 일은 전문가의 예측을 믿고 지켜보는 게 아니라

직접 실험하는 거다. 어떤 조치를 내리고, 그에 따른 효과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은

침체기에 오히려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다. 반등할 수 있는 지점에 이정표를 세워라.

오늘은 두 가지 사례를 통해서

우리가 우리의 행위를 어떻게 사실과 달리 해석하고 판단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첫 사례에서는 임종을 앞둔 남편의 말을 자신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한다는 점을,

두 번째 경영 컨설턴트의 사례에서는 전문가 집단의 예측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경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조금은 알 듯합니다.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태도가 상황을 더욱 왜곡시키고 변질시킨다는 사실 말입니다.

예언가나 전문가의 말은 참고로 하되, 결정만큼은 ‘내’가 해야 한다는 지혜를

이 사례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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