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과 새책방
상태바
헌책방과 새책방
  • 최종규
  • 승인 2011.06.24 1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과 삶] 책에 깃든 값과 땀과 꿈


 ㄱ. 헌책방

 서울 혜화동에서 1978∼79년부터 자리잡으며 사람들하고 책을 나누던 헌책방 한 곳이 2011년 4월 1일로 문을 닫았습니다. 헌책방 일꾼 전인순 님은 당신이 샛장수(중간상인 또는 나까마)로 처음 일하던 때가 1960년대 첫무렵이라고 떠올립니다. 샛장수로 열 몇 해, 또는 스무 해쯤 일한 끝에 아주 작은 가게를 얻은 때가 1978년이나 1979년이었다고 합니다. 당신이 샛장수를 처음 한 해도 또렷이 몇 해인지 떠올리지 못하고, 가게를 처음 차린 해도 제대로 돌이키지 못하지만, 헌책방 문을 닫아야 하는 때는 날짜까지 똑똑히 아로새겨집니다.

 헌책방 한 곳이 문을 닫는 자리에 함께합니다. 헌책방 한 곳에 깃들던 책을 다른 헌책방으로 옮기는 일을 거들며 사진을 찍습니다. 아침 일곱 시부터 책을 빼서 열한 시 무렵에 책꽂이까지 모두 들어냅니다. 고작 너덧 시간 만에 모든 책과 책꽂이가 텅텅 빠집니다. 부스러기를 치우고 남은 짐조각을 건사하는 헌책방은 간판만 덩그러니 남습니다. 이 간판도 며칠 지나지 않아 이 터에 새로 들어올 떡볶이집이 얼른 떼어내어 새 간판을 올리겠지요. 어디에선가 헌책방 박물관을 짓는다고도 하지만, 조용히 문을 닫는 헌책방 간판 하나 살뜰히 돌보려 하는 움직임은 없습니다.

 헌책방 한 곳이 문을 닫느라 책을 빼는 동안, 동네사람이 지나가며 발걸음을 멈춥니다. 아침 일곱 시 반 즈음부터 가게 문을 여는, 건너편 보성문구사 할아버지가 “이 봐, 혜성(책방 이름)! 어디 가? 이사 가? 그러면 나는 어떡해?” 하고 외칩니다. 가게 문을 열고는 헌책방 앞으로 찾아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젊은 아주머니가 지나가다가 “문 닫아요? 미리 말 좀 해 주시지요?” 하고 이야기하지만, 진작 찾아와서 책을 보고 샀으면 될 일입니다. 늙수그레하고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여기를 떠나요? 아이고, 그동안 고생이 많았네. 서운해서 어쩌나.” 하고 인사를 하며 손을 잡습니다. 일흔넷 헌책방 일꾼은 그냥 일꾼이 아닌 ‘할아버지 일꾼’이고, 할아버지 일꾼이 떠나는 길을 안쓰럽게 여기며 마지막말을 남기는 이들은 하나같이 할머니나 할아버지인 ‘동네사람’입니다.

 서울 혜화동 작은 헌책방에 있던 책은 인천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으로 옮깁니다. 서울 혜화동이며 삼선동이며 명륜동에는 이제 헌책방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지난날 이 둘레에는 헌책방이 꽤 많았으나, 이제 이 둘레에서 헌책방이라는 씨는 깡그리 말라비틀어집니다. 강북구청 둘레에 헌책방 한 곳 튼튼히 살아숨쉽니다만.

 그러나, 문을 닫는 헌책방만큼 튼튼하며 굳세게 문을 여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강북구청 둘레에는 〈신광헌책〉이 있고, 혜화동 마지막 헌책방 〈혜성서점〉 책은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이 넘겨받습니다. 일흔네 해 책을 만지며 늙은 할아버지 한 사람은 쉰 해 즈음 한길을 걸었고, 앞으로 숱한 헌책방 일꾼은 쉰 해나 예순 해 안팎을 헌책을 만지는 삶을 일구다가 조용히 마무리짓겠지요.

 여태껏 한 번도 도드라지거나 돋보이거나 빛난 적이 없는 헌책방 책터입니다. 앞으로도 도드라지거나 돋보이거나 빛날 일은 좀처럼 없겠지요. 그런데, 헌책방이란 늘 그랬어요. 낮은 자리에서 예쁘며 해맑게 책을 어루만지며 이어왔어요. 

 ㄴ. 새책방

 1961년에 한국말로 처음 옮겨진 《인간의 벽》(이시카와 다쓰조 씀)이 2011년에 자그마치 쉰 해 만에 다시 옮겨집니다. 1980년대에도 옮겨졌지만, 이때에는 간추린 판이 나왔습니다. 2011년에 새옷을 입은 《인간의 벽》(양철북) 세 권은 ‘그동안 쉰 해가 흘렀다지만, 쉰 해에 걸쳐 그다지 달라지거나 나아지거나 거듭나지 못했다’고 할 만한 교육 터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점수를 매기는 것 따위는 교육이 아니다. 58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구별하는 것은 교육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187쪽).” 같은 글월에 밑줄을 죽 긋고는 한참 되읽습니다.

 1961년에 처음 옮겨진 책은 오만 원이고 십만 원이고 삼십만 원이고를 준다 하더라도 장만할 길이 없습니다. 1980년대에 간추린 판으로 나온 책 또한 헌책방을 샅샅이 누비더라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오직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던 책을,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에 안은 책을, 이제는 언제라도 새책방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둘레에 널리 알리며 읽으라고 외치거나 선물할 수 있습니다.

 헌책방에서는 묻힌 책을 찾아 읽습니다. 오래도록 예쁜 빛줄기를 베풀지만 팔림새는 안 좋아 안타까이 스러진 책을 살핍니다. 같은 책을 조금 더 값싸게 장만할 수 있고, 때로는 나라밖 책을 고맙게 마주하는 헌책방이에요.

 새책방에서는 언제라도 널리 나누고픈 책을 만납니다. 새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사람들이 새롭게 읽을 책을 찾으려고 할 때에 걱정없이 손에 쥘 만한 책을 갖추는 새책방입니다. 처음으로 선보이는 어여쁜 이야기책이 새책방 책꽂이에 꽂힙니다. 예전에 나왔다가 스러지고 만 책을 되살릴 때에 새책방 책꽂이에 꽂힙니다. 새책방이 있기 때문에 출판사들은 꾸준하게 새책을 빚습니다.

 그렇지만, 새책방 가운데 자그마한 동네책방을 마주하기는 힘듭니다. 저마다 다른 크고작은 도시나 시골에 걸맞게 고이 꾸리던 작은책방은 더 뿌리내리지 못해요. 새로 나오는 아름다운 책을 갖출 새책방은 책팔이로는 살림을 꾸리기 벅찹니다.

 작은 동네책방은 거의 모조리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작은 동네책방이 사라졌더라도 사람들이 책을 안 읽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작은 동네책방이 아닌 큰도시 큰책방에서 책을 사고, 인터넷을 뒤져 누리책방에서 책을 장만합니다.

 요즈음 누리책방은 ‘미리보기’가 잘 짜였습니다. 셈틀을 켜고 들여다보면, 머리말과 차례와 열 몇 쪽 남짓 얼마든지 읽을 수 있습니다. 여느 새책방에서는 눈치를 보며 ‘미리읽기’를 했지만, 누리책방에서는 ‘책 다칠 일이나 책에 손때 묻힐 걱정’ 없이 미리읽기를 합니다. 다만, 여느 새책방에서는 사이사이 아무 데나 뒤적일 수 있습니다. 책내음과 책결을 손으로 느낍니다. 누리책방은 책을 만지거나 골고루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고기집이 늘고 술집이 늘며 옷집이 늡니다. 여느 사람들 눈길과 마음길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퍽 옅으니까 작은책방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곧, 작은책방뿐 아니라 작은 삶을 다룬 작은 책 또한 살아남기 빠듯합니다. 누구나 작은 사람인데, 작은책방 작은 새책은 어디로 가야 좋을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