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숲, 2050 탄소중립 - 그린벨트 풀어 집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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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숲, 2050 탄소중립 - 그린벨트 풀어 집 짓고?
  • 지영일
  • 승인 2021.09.1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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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지영일 / 가톨릭환경연대 대외협력위원장

 

오래전에 소름끼치도록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이 하나 있었다.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반향이 컸었다. 코맥 매카시가 쓴 ‘더 로드(The Road)’다. 마치 세기말 지구와 인류의 운명을 예견한 상황을 처절하게 그리고 있다. 작자가 그 이유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해버린 세계, 인류가 이룩한 ‘찬란한 문명’이 붕괴된 채 소수만이 살아남은 참혹은 현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아버지와 아들은 굶주림과 혹한,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인간사냥을 피해 무작정 남쪽으로 길을 떠난다. 이야기의 끝, 갖은 위험 속에서도 아들을 지켜온 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아들에게 당부한다. “우리는 가슴 속에 불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우리는 불을 운반하는 사람이야…” 소설은 ‘희망의 불씨’를 그렇게 남겨놓은 채 암울하지만 ‘따뜻한 남쪽’을 향해 끝을 맺는다.

마치 ‘더 로드’의 배경처럼 세계 곳곳이 검붉게 타들어가고 있다. 국가적 재앙을 넘어 세계적 재앙을 암시하는 듯한 대규모 산불 이야기다. 그 넓이가 엄청난 것에 놀라지만 몇 달씩 이어지는 파괴력 앞에 그야말로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보도를 통해 볼 수 있는 위성사진만으로도 가늠키 어려운 그 참상을 목격한다. ‘더 로드’를 떠올린 이유다.

전문가들은 유래 없는 고온의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역시 기약 없는 가뭄이 불씨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기후변화를 뜻한다. 불이 꺼진 후에도 그 사이 발생한 엄청난 연기와 사라져버린 숲, 그리고 그곳의 파괴된 생태계가 불러올 또 다른 재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가 무슨 짓을 했던 거지?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 미증유의 재난을 겪으며 사라진 것과 남은 것, 그리고 꼭 지켜내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예상보다 빠르게 경험하는 지금, 겪어보지 못한 여러 고통과 피해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잘 지키고 더욱 풍성하게 가꿔야 하는 것이 숲이다. 나무 한 그루, 한 뼘의 숲마저 얼마나 소중한지!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나무와 숲(녹지)을 대하고 있는가? 사라지는 숲과 초토화한 생태계를 여전히 나와는 상관없는 ‘강 건너 불구경’처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소설 ‘더 로드’가 보여준 참담한 현실이, 세계적인 자연재난이 그저 허구이고 우연만이겠는가!

보통은 나와 무관하고 우리의 생활방식과도 무관하다고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이제까지처럼 풍요롭고 안전하게 계속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가득 찬 듯도 보인다. 그러하기에 더 없이 소중한, 억척스럽게 지켜왔던 숲과 녹지가 야금야금 사라지는 현상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도시의 과도한 개발과 확장을 막겠다는 취지로 지정했던 그린벨트를 풀어 대규모 주택단지를 짓겠다거나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들이 그 예이다.

최근 정부는 인천 남동구 구월동, 남촌동, 수산동과 연수구 선학동, 미추홀구 관교동, 문학동 일원 220만㎡에 1만8천호의 공공택지를 조성한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또 앞서서는 계양구의 약 333만㎡를 풀어 계양테크노밸리로 개발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인천시도 매한가지다. 인천에서 S자 형태의 녹지축을 형성하고 있는 한남정맥을 관통해서 놓겠다는 ‘봉오대로~경명로 도로 개설 사업’이 있다. 더욱 심각한 경우다.

이 사업은 계양구 봉오대로와 서구 경명로를 잇는 도로개설계획으로 4차로 3km를 건설하는 내용이다. 대도시권 교통 혼잡 개선이 그 명분이다. 반면 그 여파로 대규모 녹지 훼손이 불가피할 것이다. 한남정맥은 인천에 매우 중요한 허파이자 자연녹지다. 가현산~계양산~천마산~원적산~호봉산~만월산~소래산으로 이어진다. 결국 도로를 놓겠다, 산업단지를 짓는다, 아파트를 세운다 등등의 이유로 생태계 파괴행위가 자행되는 셈이다. 역시나 종말적 인류세를 그린 소설과 전대미문의 산불 이후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그런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쪽에서는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며 ‘탄소 중립의 숲’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나무가 흡수·저장함으로써 온실가스를 정화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하게 된다.”, “도시바람길 확보, 미세먼지 차단 등으로 녹음을 더해 지역 주민과 미래 세대를 위한 도시숲을 지속 확충하겠다.”고 홍보한다.

더욱이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환경특별시를 선언한 인천시다. 그러려면 말 그대로 인간의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량 자체를 줄이려는 피나는 노력과 더불어 동일한 양의 온실가스를 제거해야 한다. 인위적으로 만드는 도시숲도 중요하지만 자연녹지(숲) 등을 귀중한 탄소 흡수원으로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당장에 자연녹지와 그린벨트조차를 지켜낼 의지도 없거니와 앞장서서 파괴한다면 ‘2050 탄소중립 실현’은 거대한 거짓이거나 심각한 착각일 것이다.

지난 2018년 10월 인천 송도에서 제48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가 열렸었다. 이 때에 각국 참여자들은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핵심 내용은 산업화 이전 대비 2℃ 지구 평균기온 제한 목표를 1.5℃로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국제사회는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사활을 걸고 변화와 행동에 나서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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