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와 함께 사랑을 들어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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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와 함께 사랑을 들어 주셔요
  • 최종규
  • 승인 2011.06.24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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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장화영, 《엄마의 카메라》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를 사진으로 찍을 때에 무엇보다도 아이를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사진 느낌이 확 갈립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앞서 옆지기와 둘이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기를 쥔 내가 옆지기를 어느 만큼 깊으면서 넓은 사랑으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사진 느낌이 크게 달라져요.

 모델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다큐멘터리를 빚으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모델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모델을 얼마만큼 생각하면서 아끼는가에 따라서 사진 느낌이 새록새록 거듭납니다. 다큐멘터리를 빚으며 이야기를 갈무리하려는 사진쟁이는 이녁이 마주하는 사람하고 얼마나 따스하면서 너그러운 넋과 얼로 손을 맞잡느냐에 따라 사진 이야기가 이모저모 샘솟거나 수그러듭니다.

 사진찍기로 밥벌이를 하지만, 아이를 둘 낳아서 키우는 어머니인 장화영 님이 글을 쓰고 사진을 담은 책 《엄마의 카메라》(다빈치,2007)를 읽습니다. 첫째를 2008년에 낳고 둘째를 2011년에 낳을 살림집에서 집안일과 집밖일을 도맡는 아버지로서 《엄마의 카메라》라는 책은 ‘집안일과 집밖일에 함께 마음을 쓰는 사람’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까 생각하면서 몹시 두근두근했습니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나오는 사진책을 돌아보면, 어떠한 책이건 ‘집안일은 아예 아랑곳하지 않고 집밖일로 사진기만 쥐는 사람’들 삶과 넋과 말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머리말에서 “카메라를 들고 아이와 마주했을 때 아이의 눈빛에서 ‘화’를 보기도 하고 ‘슬픔’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조용히 카메라를 내려놓고 아이와 대화를 하기 위해 엄마가 아닌 친구가 되려고 노력합니다(9쪽).” 같은 대목을 읽으면서 몹시 반갑고 기쁩니다.

 그렇지만 친구 아닌 엄마가 되어야지요. 엄마로서 아이하고 사랑스러운 살붙이로 지내야지요. 어머니는 어머니이지 동무가 아닙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이지 벗이 아니에요. 내 아이는 내 아이입니다. 내 아이를 아이 그대로 맞아들이면서 함께 살아갈 뿐입니다. 내 어머니와 내 아버지는 내 어머니와 내 아버지예요. 모두 이분들 자리를 옳게 돌아보면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제 어머니한테 바라는 무언가 있다면 ‘어머니가 어머니로 나하고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일 테지, ‘어머니가 동무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으리라 느낍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국땅에서 사진찍기를 일거리로 삼아서 살아가자면, 남자이든 여자이든 집안일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집안일에 얽매여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집안일은 다른 누군가 도맡아 주어야 합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은 사진기만 헤아려야 합니다. 사진기만 헤아리더라도 겨룸에서 밀리거나 다툼에서 쓰러질 테니까, 사진기 아닌 다른 사람이나 자리나 삶을 생각한다면, 한국땅에서는 벌써 ‘두 손 든’ 셈이라 할 만해요.

 사진책 《엄마의 카메라》를 쓴 장화영 님은 “카메라 컬렉터가 아니라 사진이 목적이라면, 너무 기계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진은 기계 외적 요인(심리적 상태, 의욕, 테마 등)의 역할이 크게 작용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33쪽).”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몇 대목 없습니다. 더군다나 기계에 얽매여서 안 되는 만큼 ‘사진쟁이 일을 하는 어버이 삶’에도 얽매여서는 안 되는 줄을 자꾸 잊습니다.

 270쪽에 이르는 책에서 “엄마 사진기”라는 책이름에 걸맞게 ‘엄마가 손에 쥔 사진기’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이 몹시 드뭅니다. ‘그냥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 이야기입니다. ‘계급’은 엄마일는지 모르나, 막상 이야기를 펼칠 때에는 ‘엄마 아닌 남자 사진쟁이’라 할 만합니다. 엄마 자리에 서서 이 땅 수많은 엄마들한테 들려주는 사진 이야기라든지, 이 땅 숱한 아이들한테 속삭이는 사진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카메라는 사람의 눈과 유사하지만 결코 같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신이 선물한 우리의 눈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을 골라 보는 탁월한 기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좀더 확대하거나 축소하여 해석하는 재미나고도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눈에 ‘콩깍지’라는 것이 붙기도 하고 ‘미운 털’이 박히기도 합니다(44∼45쪽).” 같은 이야기는 좋습니다. 참으로 좋은 이야기입니다.

 아쉽다면, 이렇게 좋은 이야기는 ‘엄마 사진쟁이’가 아닌 ‘여느 사진쟁이’ 누구나 느끼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펼치려고 《엄마의 카메라》를 썼다고 한다면 좀 슬픕니다. 《엄마의 카메라》가 어울릴 뿐 아니라 아름답자면, 어머니로서 아이와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얼마나 아름다우며 착하고 참다이 사진길을 걷는가 하는 이야기가 불거져야 합니다. 더 빼어난 솜씨가 없어도 됩니다. 더 훌륭한 재주가 없어도 됩니다. 사진찍기는 솜씨나 재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솜씨는 있으나 사랑이 없다면, 재주는 빼어나다지만 마음이 가난하다면, 사진장비는 값지지만 삶은 값진 길을 걷지 못한다면, 이러한 흐름에서 ‘사진을 찍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이 마음은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사진은 사진기로 찍지 않습니다. 아니,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기를 써야겠지요. 그런데 사진기가 있대서 사진을 찍지는 않아요. 사진기는 있으나 사랑이 없으면 사진을 찍을 수 없어요. 사진기는 없어도 사랑이 있으면 사진을 찍습니다. 다만, 사진기 없이 사랑이 있는 사람은 종이에 뽑을 만한 사진을 얻지는 못해요. 언제나 가슴속으로 아로새기는 사진을 빚고 나누며 즐깁니다.

 사진을 찍겠다고 다짐하거나 생각하는 분이라면 생각해야 합니다. 내 아이라 하든 이웃집 아이라 하든 ‘사진기’라는 장비를 몰라요. 더 나은 사진장비가 되든 무척 값진 사진장비가 되면 아이는 몰라요. 내 자가용이 값싸고 작든 내 자가용이 크며 비싸든 아이는 모릅니다. 아니, 아이는 제 어버이한테 자가용이 있거나 없거나 아랑곳하지 않아요. 아이는 제 어버이가 반지하에 사는지 아파트에 사는지 시골에 사는지 대수롭지 않아요.

 아이한테는 사랑이 없으면 젬병입니다. 아이한테 사랑을 나눌 수 없다면 부질없습니다.

 아이가 아닌 어른끼리도 이야기합니다. 사랑에는 국경도 겨레도 뭐도 없다고 합니다. 돈있는 사람끼리 사랑하거나 돈없는 사람끼리 사랑하는 일이란 없어요. 마음이 맞거나 마음을 기울여 서로를 아끼는 사람이 사랑을 합니다. 한국사람이 일본사람하고 짝을 짓든, 한국사람이 네팔사람이나 덴마크사람하고 짝을 맺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아요. 참으로 사랑하는 넋이면 돼요.

 아마, 어른 가운데 사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어른이라면 사랑이 왜 사랑인가를 잘 안다고 할 만하겠지요. 그러면 아이하고도 똑같이 사랑을 해야 합니다. 아이하고 사진을 찍을 때에는 기계가 아닌 가슴으로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아이하고 사진으로 이야기를 일굴 때에는 기계 아닌 따순 손길로 이야기를 일구어야 합니다. 조리개며 빛이며 기계이며 색온도이며 하나도 마음쓸 일이 없습니다. 어머니이거나 아버지인 내가 마음쓸 대목이란 어머니로서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버지로서 아이를 어떻게 믿느냐입니다.

 아무쪼록 사진기라는 기계와 함께 어머니 손길이 듬뿍 밴 사랑을 함께 들어 주셔요. 놀라운 사진이나 돋보이는 사진은 없어도 되니까, 아이하고 오붓한 사랑과 즐거운 믿음을 어깨동무해 주셔요.

 “여러 빛을 만나는 것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110쪽).” 같은 말마따나, 날마다 언제나 새로운 아이하고 새 하루를 맞이하는 나날이란 날마다 새로운 사랑을 하는 기쁨이자 놀라움입니다. ‘엄마가 나누려는 사랑’보다 ‘사진쟁이인 엄마가 아닌 사진 지식’ 이야기에 너무 치우치고 말아 아쉽습니다만, 앞으로는 ‘엄마 사진쟁이’가 참말로 《엄마의 카메라》라는 이름에 걸맞게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이야기책 하나 빚어서 나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엄마의 카메라 (장화영 사진·글,다빈치 펴냄,2007.12.20./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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