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염원하는 한강하구, 그리고 섬.섬.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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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염원하는 한강하구, 그리고 섬.섬.섬
  • 장정구
  • 승인 2021.10.0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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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하천이야기]
(44) 한강하구와 바다 그리고 은행나무
영뜰해변에서 바라본 우도, 소연평도, 연평도 그리고 함박도
볼음도 영뜰해변에서 바라본 우도, 소연평도, 연평도 그리고 함박도

 

‘이곳은 북한과 인접한 지역입니다. 장마철 호우로 인해 북한군의 목함지뢰나 DMZ에 설치되어 있는 북한군 또는 아군의 대인지뢰가 유실되어 해안가로 떠내려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9월 마지막 일요일, 강화 선수항 하늘은 쾌청하다. 내린 눈을 싸리비로 쓸어놓은 것 같은 흰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맑고 높다. 말끔하게 정비된 노란 차선들 가운데로 대여섯 대의 차량이 줄지어 선다. 부두 한 켠에는 군용트럭이 서 있다. 개찰구에는 해병 둘이 나와 있다. 여객선 직원이 바닷가를 좀 더 다가가 보려는 여행객들을 말린다. 대합실에는 배 시간과 버스 시간표 그리고 지뢰 경고 포스터가 붙어 있다.

얼마 전 새롭게 단장한 후포항에서 어선 두 척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쏜살같이 바다로 나간다. 배들이 향하는 방향으로 따라 왼쪽으로 머리를 돌리자 수평선이 이어지는, 석모수로와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어선들이 그물을 펼칠 준비 중이다. 볼음도, 주문도, 아차도, 말도는 강화군 서도면에 속한 유인도이다. 강화 선수항에서 여객선을 타면 1시간 남짓 걸려 볼음도에 도착한다. 외포항에서 출발할 때보다 30분 정도 단축되었다.

 

요즘은 기러기떼가 남으로 향하고 있다.
요즘은 기러기떼가 남으로 향하고 있다.

 

볼음도는 섬이지만 농촌이다. 야트막한 산과 방풍림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볼음도는 지금 황금 들판이다. 강화도나 교동도와 달리 바닷가를 따라 철조망은 없지만 넓은 북쪽과 서쪽의 갯벌엔 저어새, 알락꼬리마도요, 갈매기 등 새들뿐이다. 논두렁을 따라 걷자 끼룩~끼룩~ 소리가 들린다. 머리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남쪽으로 향하는 기러기 V자 편대이다. 영뜰해변 정자에 오르자 남서쪽으로 점.점.점. 섬 서넛이 눈이 들어온다. 얼른 망원경을 들어 하나하나 자세하게 보니 가운데 뽀족한 섬은 송신시설들이 솟은 소연평도다. 그 왼쪽은 우도, 오른쪽으로는 나즈막하고 길죽한 것이 구지도와 당섬으로 이어지는 대연평도다. 볼음도 섬뿌리와 살짝 걸쳐 있는 섬은 아마도 함박도다.

영뜰해변에서 임도를 따라 고개를 넘자 볼음2리 들녘이 펼쳐진다. 볼음저수지 제방 너머 황해도 연안군의 해안선이다. 제방 왼쪽은 작지만 선명한 산이다. 그 산에는 풍채좋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볼음도 은행나무다. 800년 전에 홍수에 떠내려온 나무를 심었고 1960년대까지만 해도 볼음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행사가 열었다고 한다. 볼음도에 적지 않게 다녔지만 노랗게 물든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언젠가는 남북이 자유롭게 오가며 연안의 할머니 은행나무와 볼음도의 할아버지 은행나무가 함께 다시 생일상을 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때는 거센 바닷바람도 볼음도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까 싶다. 은행나무 뒤의 동산을 평화숲을 조성한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은행나무는 여전히 외로워 보인다. 태풍 링링에 가지 하나를 잃었지만 북녘을 향하는 열망, 평화를 염원하는 풍채와 푸르름은 여전하다.

 

볼음도 은행나무

 

조개골과 영뜰, 볼음도의 남쪽 해안가는 해송군락의 방풍림이고, 북쪽 해안가는 볼음 저수지를 시작으로 콘크리트 제방이다. 해송인 곰솔숲 앞 사초군락과 순비기나무, 제방 앞 갈대 숲 사이를 자세히 보면 흰색 스티로폼이다. 멀리서 보면 볼음도는 흰색 띠를 두르고 있다. 숲풀 더미 아래에서는 스티로폼이 부서져 가루가 되고 있다. 저수지 갑문 앞 족제비싸리숲은 온갖 해양쓰레기더미로 쓰레기를 치우려면 싸리나무를 베어야 한다. 북쪽 해안 갈대숲은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에서 떠내려온 페트병과 온갖 쓰레기, 그리고 초목들로 띠를 이룬다.

수거하지 않은 해양 쓰레기, 한강 쓰레기들 사이로 숲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수거하지 않은 해양 쓰레기, 한강 쓰레기들 사이로 숲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뻥~” 황금 들녁 사이로 난 농로를 따라 걷다 굉음에 놀란다. 단 한번이지만 접경지역이라 무슨 일이 난나, 대포 소리인가 총소리인가 화들짝 놀라 우왕좌왕한다. 답사단 중 한 명이 논두렁 위 논을 향해 있는 짧고 자그마한 플라스틱 파이프를 가리킨다. 김포공항, 인천공항 등 공항 주변에서나 볼 수 있는, 가을 들녁 새들을 쫓기 위해 설치해놓은 공포탄 장치를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강화도 창후리항 선착장 최끝단, 교동도 읍내리 남산포항 선착장 최끝단, 미법도 최동단, 서검도 최동단, 볼음도 최남단, 주문도 최서단, 주문도 최남단, 북위 37도 34분 40.04초, 동경 126도 09분 31.70초 그리고 서쪽으로 11개 지점 좌표. 이 지점들을 차례로 연결한 선이 어선안전조업법에 따라 생겨난 서해 조업한계선(옛 어로한계선)이다. 조업한계선과 별도로 국방부와 협의한 해역에서 어선들이 조업하고 있다.

빨간색 실선이 조업한계선이다.
빨간색 실선이 조업 한계선이다.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북쪽과 서쪽에 있는 섬중에서 백령도(북위 37도  58분, 동경 124 도 40분), 대청도(북위 37도 50분, 동경 124도 42분), 소청도(북위 37도 46분, 동경 124도 46분), 연평도(북위 37도 38분, 동경 125도 40분) 및 우도(북위 37도 36분, 동경 125도 58분)의 도서군들을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의 군사 통제하에 남겨두는 것을 제외한 기타 모든 도서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사령관의 군사통제 하에 둔다. 한국 서해안에 있어서 상기 경계선 이남에 있는 모든 도서는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의 군사통제 하에 남겨둔다.'

 

볼음도에서 황해도 연안은 코앞이고 우도와 함박도가 지척이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 제1조 13항. 이때부터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등 서해5도라는 표현이 생겼다. 볼음도의 바다는 이때부터 서서히 닫혔다.

10월 12일, 석모도 어류정항에서 '2021 한강하구 평화의배'가 출항한다. 비록 볼음도 옆 말도까지도 항행할 수 없지만 2005년부터 시민사회와 종교계는 평화의 배를 띄웠다. 코로나로 당초 계획이던 7월27일에서 10월4일로 연기되고 또 국방부로 인해 일주일 연기되었지만 그래도 평화의 배는 출항한다. 한강하구에 민간선박을 항행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제1조 5항에 명시되어 있다. 서해의 섬도 섬(도서) 즉 육지부에 대한 군사통제권만을 명시했다. 한반도의 평화정착, 공동의 공간인 한강하구 수역과 인천경기만의 바다에서부터 남과 북이 함께 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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