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의 혁신을 바라며
상태바
여성운동의 혁신을 바라며
  • 박교연
  • 승인 2021.10.20 06: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 터너' 활동가
미러링-상대방의 행동을 뒤집어 보여주는 방식. 익숙한 말이라 그 전에는 말 속의 폭력성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미러링을 통해 뒤집어 보여줌으로 인지하게 만든다.

 

여성커뮤니티에서 아직도 코르셋과 관련된 글은 논쟁거리다. 누구도 사회생활을 위해서 화장을 하는 사람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70세가 넘으신 할머니가 곱게 단장하시고 단풍구경 나가는 게 잘못됐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미시의 영역으로 들어갈수록 모든 사안을 단일한 잣대로 판단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무엇이 앞선 개념인지는 분명하다.

할머니 세대는 모르나 다음 세대는 아는 것. 세대를 거치며 사회적 여성성의 정의는 좀 더 분명해지고 명확해졌다. 이제는 무엇을 지양하고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 명백히 알 수 있다. 할머니세대에서 MZ세대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전 세대의 여성들은 사회에서 부과한 여성의 굴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왔다. 다음 세대의 여성들이 자신들보다 자유롭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거기다 대고 “코르셋은 허상”이라든가, “화장은 온전히 개인의 자유”라고 말하는 건 이전 세대 여성들의 업적을 부정하는 거다. 실행할 수 없다고 해서 진보가 아닌 건 아니다.

진보는 때론 불편하고 어렵다. 동물의 공장식 사육과 도축 대신 채식을 실천하자는 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자 외출할 때마다 텀블러를 상비하자는 건 불편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진보적 실천은 현 상황을 타계할 완벽한 대안이 아니다. 인간이 문명을 구축한 이래로 결점 없는 제도와 규범이 만들어진 적은 없다. 따라서 여성운동의 진보적 실천에는 항상 허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계속 노력하다 보면 미진한 부분은 줄어들고, 전반적인 향상을 이룩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혁신을 말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거기에 지속해서 배제를 논하는 행동은 운동성을 저해시킨다. 현 운동의 단점을 지적하고 보완을 하는 것은 좋으나, 예외사항만을 나열하다 보면 결국 운동이 무너지고 만다. 그렇기에 운동을 할 때는 거시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흠이 없는 운동에만 집착하다보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계속 서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체 여성인권을 위한 피나는 고민만이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최근 ‘인천여성의전화’가 이러한 고민 끝에 독립을 선언했다. 지난 9월 17일에 ‘인천여성의전화(이하 인여전)’는 ‘한국여성의전화’와의 연대관계를 해소한다고 밝혔다. 인여전 성명문에 의하면, 2015년 이후 새롭게 등장한 급진적 여성주의자들과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 지가 들어있다. “기성 여성운동계 및 여성학계는 미러링과 같은 운동방식을 문제 삼아 이들을 거부하고 배제하였으나, 본회는 이들과의 연대가 시대적 과업이라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인여전은 “새로이 부상한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은 활동 방식이 기존의 여성운동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놀라움, 불안, 공포의 대상이 되고 나아가 비도덕적이고 남성혐오적 집단이라는 오명을 쓰고 거부되어야 할 존재가 되었다.”며, 과연 이들을 혐오주의자로 매도하는 것이 정당한 지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특히 약자가 강자를 혐오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우리는 이질적 대상에 의해 기존의 익숙한 질서가 흔들릴 때 거부감과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이질적 대상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판단이 들 때, 공포감은 분노로 바뀌고 혐오가 형성된다.”란 이야기를 보면, “혐오는 감시와 처벌을 통해 지배집단이 피지배집단을 통제하는 방식”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즉, 여성에 의한 남성 혐오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안타깝게도 신생 페미니스트들이 사용하는 전략 중 하나인 ‘미러링’은, 자자한 악명과 달리 강자를 불쾌하게 만드는 전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미러링을 통해 취업에 불이익을 받은 남자도, 목숨의 위협을 느낀 남자도, 정신적 고통으로 병원에 가야할 남자도 생기지 않았다. 반면에 GS25 손가락 검열과 같이 여자는 취업시장에서 실질적인 피해를 입었다.

 

 

최근 9월 15일 한 중소기업 채용면접에서 한 지원자는 페미니즘과 여성차별에 관련된 질문을 수차례 받았을 뿐더러, 마스크를 벗으라는 요구 또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제약의 성차별 면접이 논란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지난 4월에는 편의점 알바 공고에 대놓고 ‘페미니스트 지원금지’라는 문구가 들어갔고, 작년 게임업계는 페미니스트 직원의 개인 SNS를 추적하여 최소 14명 이상을 대량으로 해고했다.

만연한 여성혐오를 방치하지만, 남성 멸시적 표현만을 집요하게 검열하는 우리사회에서 신생 페미니스트들이 사용하는 과격한 표현이 과연 혐오라고 불릴 수가 있는지에 대해 기존 여성단체는 깊이 재고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여성 커뮤니티에 ‘메갈리아’를 검색해보면 2015년 이후 남녀갈등을 불러왔던 사건사고가 잘 정리되어있는데, 거기에 달린 댓글을 보면 메갈리아가 자신의 삶을 구해줬다는 감사가 대부분이다.

과격한 표현이 불쾌감을 불러일으킬지라도 소라넷과 불법촬영을 공론화하고, 임신중단을 실현시키고, 김치녀가 욕이 아니게 된 세상을 만든 데에는 분명 신생 페미니스트들의 많은 기여가 있었다. 그러기에 결점 없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운동만을 페미니즘으로 인정하는 것보다는 다소 논쟁적이라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기존 여성단체에게도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어렵지만 혁신이며 불편하지만 진보라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