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솜씨가 밥을 먹여 준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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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솜씨가 밥을 먹여 준다지만
  • 최종규
  • 승인 2011.06.28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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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김철호,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문장편》

 사람들은 나날이 학교를 더 오래 다닙니다. 가방끈 길어지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납니다. 나날이 새로운 책이 쏟아집니다. 이 나라 도서관은 퍽 어설프거나 모자라다 하지만, 이곳저곳에 새 도서관이 들어서며, 사람들이 손에 쥐어들 책이 꾸준히 늡니다. 신문은 무척 많이 나오고, 방송은 온갖 이야기가 하루 내내 끊이지 않으며, 셈틀을 켜고 인터넷을 열면 갖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말이며 글이며 어마어마하다 싶도록 넘칩니다. 잘난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못난 사람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름난 사람만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라, 이름 안 난 사람도 쓸 수 있는 글입니다.

 ‘문장작법’에서 ‘작문’을 거쳐 ‘글짓기’를 지나 ‘글쓰기’로 오면서, 여느 사람들 여느 말씨로 여느 사람하고 나누는 이야기를 글로 담아 나눌 수 있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계급과 지식과 학력과 정보를 뽐내려고 잔뜩 힘을 주거나 멋을 부리는 말씨로 엮는 책이 새삼스레 쏟아집니다.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 같은 책은 지난날에는 꿈을 꿀 수 없던 책입니다. 지난날 같으면 이와 같은 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글 바로쓰기》(이오덕 씀)가 처음으로 ‘여느 우리 말로 사랑하는 여느 우리 삶’ 이야기문을 연 뒤로 수많은 여느 우리 말 이야기책이 나왔고,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는 이러한 흐름 한켠에 야무지게 자리합니다.

.. 마지막으로, 글맛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워야 한다. 문장이 뜻도 분명하고 표현에도 군더더기가 없는 데다 ‘맛있는 글’이니 ‘향기 나는 문장’이니 하는 이야기까지 듣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한마디로 ‘문학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말은 나의 일부이다. 내가 쓰는 글도 나의 일부이다. 나의 말, 나의 글은 나의 정신이자 나의 인격이다 ..  (14쪽)

 ‘낱말편’에 이어 ‘문장편’이 나온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는 책이름 그대로 ‘우리 말을 잘 쓰면 내 삶에 도움이 된다’는 줄거리를 담습니다. 참말 그렇겠지요. 오늘날 이 나라 사람들은 온통 영어사랑에 푹 빠지는데, 영어를 제아무리 잘 하는 한국사람이라 하더라도 ‘한국사람하고 한국말로 내 생각을 나눌 수 없다’면 그토록 대단하다는 영어 솜씨라 하더라도 부질없습니다.

 영어를 잘 한다는 몇몇 사람 때문에 이 나라 사람들 모두 영어를 하면서 살아갈 수 없어요. 영어를 잘 해야 나라힘을 북돋울 수 있대서 시골 흙일꾼한테 영어를 쓰며 벼를 거두거나 배추를 기르라 할 수 없어요.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이들이 왜 영어를 써야겠습니까.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 영어를 써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영어로 경기를 해야 할까요. 영어신문이나 영어방송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연속극을 영어로 듣는다든지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영어로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건 수업을 하건 한국말로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는가’를 또렷하게 주고받으면서 생각을 살찌워야 아름답습니다.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라는 책은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막대접할 뿐 아니라 짓밟기까지 하는 어설프며 슬픈 모습을 뉘우치거나 돌아보자는 목소리를 들려주어요.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옳게 배우자고 외치며, 한국사람인 만큼 한국말을 알맞게 쓰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좀 궁금합니다. 왜 글쓴이 김철호 님은 ‘나의’와 같은 일본 말투를 쓰지요? 이제 이러한 일본 말투는 한국 말투로 스며들었다 할 만큼 두루 쓰니까 그냥 써도 될는지요? 글쓴이 스스로 토씨 ‘-의’를 다루는 대목에서 “눈과 머리로만 글을 쓰기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또 다른 자리에서는 “말의 중요도를 높여주는” 구실이라든지 “한국어 쓰임을 넓힌”다고까지 덧붙입니다.

.. ‘한국의 문학’에서는 뒤의 ‘문학’보다 앞의 ‘한국’에 초점이 놓여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의’의 효과이다. 즉, ‘의’는 자신이 붙게 되는 말의 중요도를 높여주는 구실을 한다 … 이렇게 ‘의’의 쓰임이 넓어졌다는 것은 한국어에서 동사의 비중이 작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명사의 비중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 위 예들(분홍색이 티셔츠, 34평의 아파트, 세 가지의 의문, 양쪽의 콧구멍)에서 ‘의’는 의미 전달에 공헌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읽는이들이 의미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런 표현들이 빈발하는 까닭은, 눈과 머리로만 글을 쓰기 때문이다 ..  (62∼63, 65, 68쪽)

 말은 하는 사람 나름입니다. 글 또한 쓰는 사람 나름입니다. 말을 하는 사람 나름대로 사랑스레 잘 하면 되는 말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 나름대로 올바로 잘 쓰면 되는 글입니다.

 말을 잘 한대서, 곧 말솜씨가 뛰어나다 한다면 아마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겠지요. 글을 잘 쓴대서, 그러니까 글재주가 훌륭하다 한다면 아마 책을 꽤나 팔 수 있겠지요.

 다만, 말을 좀 못 하거나 글을 퍽 못 쓰더라도 말에 담는 넋과 글에 싣는 얼이 아름다우며 착하고 참다울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솜씨로 부리는 말이 아니라, 착하게 나누는 말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재주를 피우는 글이 아니라 참다이 주고받는 글이어야 한다고 느껴요.

.. 그런데 우리가 글을 쓸 때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은, 고유어는 고유어끼리, 한자어는 한자어끼리 더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뒤집어 말하면, 고유어와 한자어는 친화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  (229쪽)

 글쓴이는 “토박이말은 토박이말끼리 잘 어울리고 한자말은 한자말끼리 잘 어울린다”고 이야기합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토박이말을 쓰려고 애쓰는 사람은 낱말뿐 아니라 글월도 토박이 낱말과 토박이 말투로 가다듬습니다. 한자말을 쓰려고 힘쓰는 사람은 낱말을 비롯해 글월까지 한자 낱말과 한자 말투로 추스릅니다. 영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낱말에다가 글월까지 영어로 펼치겠지요.

 쉬우면서 바르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쉬우면서 바르다 싶은 말글을 나눕니다. 지식과 학식을 뽐내려는 사람이라면 아주 마땅히 지식과 학식을 뽐내려는 글을 쓸밖에 없습니다.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를 읽으면, ‘쉽다고 할 만한 한국말’은 거의 안 보입니다. 이 책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에는 ‘일본 한자말이건 중국 한자말’이건, 또 일제강점기 무렵부터 이 나라 지식인한테 스며들었다 하는 ‘일본 말투’에다가 ‘서양 번역 말투’까지 골고루 드러납니다. 글쓴이는 이러한 글매무새를 다독이거나 손질하지 않으면서 “우리 말 솜씨가 밥 먹여 준다”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책을 덮으며 조용히 생각합니다. 참말, 말솜씨가 밥을 먹여 준다 할 만하며, 오늘날 수많은 글쓰기책이 나오고 말지식책이 나오는 만큼, 영어 지식 못지않게 한국말 지식을 쌓는 일도 ‘내 경력’과 ‘내 소개서’에 적바림할 좋은 보배덩이가 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식으로 얽어매려는 한국말 이야기보다는, 옳고 바르면서 착하고 참다이 꾸려 아름다운 삶으로 북돋우려는 한겨레 한글과 말꽃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무슨 보람이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말솜씨는 없어도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글재주는 없어도 믿음직하게 땀흘려 일하며 어깨동무할 줄 아는 사람이면 반갑겠습니다.

―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문장편 (김철호 글,유토피아 펴냄,2010.10.15.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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