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도 아내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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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도 아내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남자
  • 최원영
  • 승인 2021.11.08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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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25화

 

 

지식은 늘 ‘옳고 그름’으로 나누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프레임》(최인철)이란 책에 이런 대화가 나옵니다.

“어느 날 세실과 모리스가 예배당에 간다.

‘모리스, 자네는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여기나?’

‘글쎄. 랍비께 한번 여쭤보는 게 좋겠다.’

세실이 랍비에게 물었다.

‘선생님,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

‘형제여, 그건 안 되네.

기도는 신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인데 그럴 순 없지.’

세실로부터 랍비의 답을 들은 모리스가 말한다.

‘그건 자네가 질문을 잘못했기 때문이야.

내가 가서 물어볼 게.’

‘선생님, 담배를 피우는 중에 기도하면 안 되나요?’

‘형제여, 기도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다네.

담배를 피우는 중에도

기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야.’”

사실 기도 중에 담배를 피우거나 담배를 피우다가 기도하는 것이나 같은 모습입니다. 그 행위는,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옳은 것이 되기도 하고 틀린 것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어떤 하나의 행위를 두고 ‘옳고 그름’으로 다툰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요?

《아웃라이어》(말콤 글래드웰)에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릴레오의 논쟁이 나옵니다.

“돌을 손에 쥐고 있다가 공중에서 놓으면 떨어지는 이유를 아리스토텔레스는 돌 자체에 ‘중력’이란 특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돌 자체에 떨어지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갈릴레오는 돌과 전체 장(場) 사이의 ‘관계’로 설명한다. 돌 자체보다는 맥락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옳은지는 이미 과학계에서 증명이 됐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논쟁을 전해드리는 이유는

시계추의 양극성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런 사례를 듭니다.

“철수가 친절한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철수가 친절하기 때문이다’(아리스토텔레스)라는 것과

‘철수가 속한 상황 때문이다’(갈릴레오)라는 설명이 존재한다.”

여러분은 어느 쪽 답에 마음이 더 가나요?

‘철수의 본성이 착해서?’, 아니면 ‘수행평가를 위해’ 친절한 행동을 해야 하는 상황 중에서 말입니다.

어쩌면 두 견해 모두 맞는 것은 아닐까요? 이것이 어떻게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냥 ‘그렇구나’라고 받아들이면 다툴 일이 전혀 없을 겁니다.

지혜는 이렇게 나와 다른 견해까지도 헤아리게 해줍니다.

시계추의 한쪽 끝에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면 다른 한쪽 끝에는 ‘미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움 역시도 사랑했던 그에게서 느끼는 감정일 테니까요.

지인이 보내준 유머를 전해드립니다.

“한 남자가 술집에 들어와 혼자 마셨다. 한 잔, 두 잔, 석 잔, 홀짝홀짝 마시는데, 마실 때마다 윗도리를 제치고 품속을 보았다.

궁금한 바텐더가 물었다.

‘손님, 속주머니에 뭐 소중한 거라도 들었어요?’

‘아내 사진이 들어있어요.’

술을 마시면서도 보고 싶은 아내라니, 바텐더는 감동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남자의 말은 이랬다.

‘아내가 예뻐 보이면 취한 거거든요. 그때는 그만 마시려고요.’”

연애 시절에는 그토록 예뻤던 그녀가 이제는 술이 깰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사랑한 만큼 미움도 큽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속성이니까요.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이렇게 바뀐다는 것이 놀랍죠? 결혼 전에는 이것저것 간섭하는 것을 ‘나를 사랑해서’라고 여겼는데, 결혼 후에는 ‘잔소리’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아내가 중병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면 아마 남편은 이렇게 기도할지도 모릅니다. ‘신이여, 제발 아내를 살려만 주세요.’라고요. 아무리 잔소리가 많아도 괜찮으니 살려만 달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극과 극은 한쪽에만 머무르지 않고 오갑니다. 좋았다가도 싫어지고, 싫었다가도 좋아집니다. 두 사람의 관계도 시계추와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싫어하는 것’이 사실은 ‘좋아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또한 지금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것’ 역시 어느 날 ‘싫어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러니 좋고 싫은 것 모두가 사실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서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술을 깨기 위해 아내의 사진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사진을 보면서 잊고 있던 아내의 좋은 점을 되새기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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