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이, 지방에서, 실업고 졸업생으로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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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이, 지방에서, 실업고 졸업생으로 사는 것
  • 장한섬
  • 승인 2021.11.12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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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영화로 읽다]
④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 인천여상 소녀들의 표류기
- 장한섬 / 홍예門문화연구소 대표

 

『82년생 김지영』 주변부 소녀들

대한민국에서 개성을 드러내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되는 지름길이 있다. 첫째, 고추 없이 딸로 태어나는 것. 둘째, 서울 아닌 지방에서 사는 일. 셋째, 대학졸업장이 없을 때.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1)에 나오는 인천여상 졸업생들은 이 세 가지를 갖췄다. 즉, 이들은 주변부 사회적 약자이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오프닝 장면 (인천항)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오프닝 장면(인천항)

 

포획된 바다와 교복에 갇힌 몸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오프닝은 근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인천 도크항에서 (산업화시대를 상징하는)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 교복(치마)을 입은 여고생들이 노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군가)를 부르고 노는 장면이다. 바다는 보통 여성성을 상징하며 해방감과 다양성을 품는 포용력(海不讓水:해불양수)을 뜻하나, 인천항 바다는 도크(dock)에 포획된 바다(물)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노는 인천여상 학생들 몸은 교복에 갇힌 타율적인 대상으로, 인간답게가 아닌 학생답게 그것도 실업계 학생답게 일찌감치 학번(사회적 계급)을 포기한 저부가가치의 삶을 강요받는다(여자 [실미도]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졸업 후 교복을 벗고) 어둠이 남은 아침, 아파트 창문이 깨지고 혜주(이요원)가 동인천역에서 서울행 전철을 타고 인천을 떠난다(혜주는 서울 직장에서 교복 대신 회사 유니폼을 입고 잔심부름을 한다). 이때 카메라는 부상하며 동인천역 너머 공장 굴뚝(연기) 사이로 바다를 살짝 보여준다. 백정우는 『영화, 도시를 캐스팅하다』(2019)에서 ‘인천’을 다루면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소재로 삼고 소제목을 “변두리의 질박함을 부탁해!”라고 쓴다. 그리고 인천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쓴다. “서울 토박이인 내 머릿속에 인천은 지하철 1호선 막차 시간과 맞물린다. 인천에 사는 친구는 항상 막차를 이야기했더랬다. 이 영화에도 동대문 대형쇼핑몰에 놀러 갔다가 막차를 타기 위해 질주하는 모습이 나온다.”

 

일상의 공간과 일탈의 희망

[고양이를 부탁해] 등장인물들은 [82년생 김지영] 세대다. 그런데 영화 속 인물들은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목적으로 한 여상 출신으로, 이들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미성년이고, 학번 없는 고졸 출신이고, 여성이 아닌 소녀에 가깝다. 탈(脫)인천을 성공해 서울로 출근하고 마침내 서울로 이사한 혜주는 이렇게 말한다. “내 이십 평생 가장 큰 실수가 뭔지 아니? 별 생각 없이 여상 간 거. 인천에서 제일 좋은 여상 나오면 뭐하니.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영화 속 북성포구
영화 속 북성포구

 

유태희(배두나)는 (유태인을 떠올리는 이름이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찜질방에서 일하지만,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찜질방 전단지를 돌리다 선원모집 사무실에 들어가 묻는다. “아저씨, 저도 배를 탈 수 있을까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도 바다(물)는 부정적인 이미지다. 태희는 영화 속에서 배에 누워 어디론가 떠나는 몽상을 하지만, 현실생활에서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불가마(불+물)에서 카운터와 서빙을 본다. 사람들 눈을 피해 태희가 (지영과 함께) 담배를 피우는 장소는 공장과 굴뚝으로 둘러싸인 북성포구다.

 

영화 속 만석고가 (잠시 후 미친 여자가 나타난다)
영화 속 만석고가 (잠시 후 미친 여자가 나타난다)

 

부모 없는 딸의 성장통

서지영(옥지영)은 미술에 재능이 있지만 부모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가난하게 산다. 지영은 당장의 생계를 걱정하며 일자리를 찾다 태희가 돌리는 전단지 일을 도와주고, 태희에게 돈을 빌린다.

둘은 전단지를 다 돌리고 만석고가를 넘어간다(그 밑으로 인천역으로 향하는 전철이 지나간다). 둘은 고가에서 붉은색 숄을 걸친 미친 여자와 마주친다(유태희의 벙어리장갑은 여자의 숄과 같은 붉은 색이다). 둘은 애써 모른 척 지나친다. 잠시 후 “아까 그 거지 말이야. 솔직히 나는 그렇게 될까봐, 무섭다.” 지영이 말하자, 태희가 답한다. “무섭다는 생각은 안 해봤고, 가끔 그런 사람들 보면 궁금해서 따라고 가고 싶어. 매일 뭐하면서 지내는지, 아무런 미련 없이 자유롭게 떠돌아다닐 수 있다는 건 좋은 거 아닌가?” 그러자 지영은 이렇게 말한다. “그걸 자유라 그러니?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렇게 다니다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둘은 좁고 어두운 골목을 지나 간조로 갯골이 들어난 북성포구에 도착한다. 북성포구는 주위 공장에 둘러싸인 포구로 산업도시 인천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2020년 일부가 매립되었다). 이때 서울 증권회사에서 일하는 혜주가 지영에게 전화한다. 지영은 바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러자 곧바로 태희 휴대폰이 울린다. 혜주 전화에 태희는 (혜주가 모르는) 친구와 있다고 말하고 통화를 정리한다. 화면이 바뀌자 서울 증권회사에서 혜주는 폴더 휴대폰을 접고 (단절되고 고립된 공간에서) 서류를 복사한다. 이 셋은 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들이었지만, 졸업 후 각자의 생활로 점점 멀어진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 살아간다.

영화 포스터와 애관극장 앞 인도에 설치된 동판 (ⓒ장한섬, 2011)                     고양이를 맡는 비류와 온조의 모습과 이름은 포스터와 동판에 없다
영화 포스터와 애관극장 앞 인도에 설치된 동판. (ⓒ장한섬, 2011)
고양이를 맡는 비류와 온조의 모습과 이름은 포스터와 동판에 없다.

 

혜주는 부모의 이혼 후 언니와 함께 서울로 이사한다. “언니야, 서울특별시민이 된 기분이 어떠니? 내가 제일 싫었던 게 뭔지 알아? 퇴근하고 돌아올 때 전철 안에 진동하는 돼지갈비 냄새…… 생각만 해도 역겨워.” 혜주는 탈인천에 성공한다. 그러나 언니가 외지로 이사하자 외로움에 힘들어 하다 홀대하던 남자친구 어깨에 기댄다.

지영의 조부모는 함께 사는 집이 무너져 두 분 모두 죽는다. 지영은 경찰조사에 협조하지 않아서 교도소에 감금되어 더욱 고립된다.

태희는 부모님 찔짐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기에 공허함을 느낀다. 집에서는 동생(아들)에게 관심이 쏠리고, 어쩌면 자신의 미래가 될지 모르는 (가족에게 헌신하는) 엄마의 삶을 보며 더욱더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러다 태희는 가족 레스토랑에서 가족의 의견을 묻지 않고 메뉴를 주문하는 아빠의 독단에 실망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취업 합격 전화가 오자 밥상에 있던 아버지는 딸에 말한다. “고기 먹어!” 그리고 아들에게는 한약을 해준다.)

“아빠, 때리는 것만 폭력이 아니야. 이런 것도 인권을 무시하는 폭력이라고.” 나아가 아빠를 닮아가는 남동생도 못마땅해 한다. 결국, 태희는 집에서 몰래 가출하고 지영과 함께 (배 대신) 비행기를 타고 떠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철조망 너머 비행기가 저녁놀을 향해 날아가고 “Good Bye” 자막이 화면을 채우며, 태희와 지영은 탈인천 너머 탈조선한다.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2015)의 원류처럼 보인다(바다도시 인천에 갇힌 인천여상 소녀들의 표류기는 역설적으로 호주라는 섬으로의 탈출기로 마무리된다).

 

시심(詩心)은 있으나 시를 직접 쓰지 못하는 장애인
시심(詩心)은 있으나 시를 직접 쓰지 못하는 장애인

 

詩心 없는 도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개봉 이후 영화에 나오는 장소는 많이 바뀌었다. 인천 개항 100주년 기념탑도 철거되었다(2003). 그러나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인천의 모든 ‘여상’이 과학고와 정보고 등으로 교명이 바뀌지만, 인천여상은 그대로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로 있다. 왜냐하면 산업화시대부터 구축한 인천에서 제일 좋은 여상이라는 브랜드 가치 때문이다. 그리고 인천의 역사는 열강에 의해 강제 개항된 1883년에 고착되어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비류와 온조의 역사적 해석도 그대로이다(포스터에는 비류와 온조가 없다).

영화 속 산업도시 인천을 의인화해서 보여주는 인물이 있다. 장애 있는 시인으로, 시인은 직접 시를 쓰지 못해서 유태희가 타자기(컴퓨터 대신 타자기를 고집한다)를 타이핑해서 (아래) 시를 완성해준다.

 

모두들 가고 오지만 / 나는 늘 기다린다.

사람들은 움직이고 / 나는 잠을 잔다.

나는 늘 그렇게 / 잠자는 기분이다.

 

시인은 태희에게 묻는다. “너도 떠날 거지?” 이 질문은 인(in)서울을 꿈꾸는 지방도시 청년에게 (아직까지) 변치 않는 화두이다.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 댄스스포츠 동아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땐뽀걸즈](2017) 여학생들은 교복에 갇힌 몸을 춤으로 해방시키지만, 졸업 후 여학생 소녀에서 사회인 여자로 성장하고 인간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의문이다. 고추 없는 딸로서, 서울 아닌 지방에서, 대학졸업장 없이 말이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올해 20주년 리마스터링 재개봉을 하였지만, 인천을 떠난 영화 속 인물들은 돌아오지 않은 것 같고, 인천에 남아 고양이를 맡은 비류와 온조의 삶도 아는 바가 없다. 이들은 아직도 표류 중이다.

 

인천, 영화로 읽다 - 연재순서

① 들어가는 말 : 인천 없는 인천영화제(10/22)

② 북경반점 : 가부장을 위한 디즈니랜드(10/29)

③ 파이란 : 인천바다의 탁함과 동해바다의 색조(11/5)

④ 고양이를 부탁해 : 인천여상 소녀들의 표류기(11/12)

⑤ 슈퍼스타 감사용 : 함께 시작할 줄 아는 용기(11/19)

⑥ 천하장사 마돈나 : 프로씨름단 해체기와 노동자 아버지의 소멸(11/26)

⑦ 차이나타운 : 신자유주의 속 가족의 재편(12/3)

⑧ 인천상륙작전 : 반공주의의 (재)생산기지 인천(12/10)

⑨ 오늘도 평화로운 : 장소의 재발견과 일상의 재미(12/17)

⑩ 맺음말 : 인천, 영화롭다(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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