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속성', 분리·거래하는 것 아니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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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속성', 분리·거래하는 것 아니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
  • 김민지 인턴기자
  • 승인 2021.11.16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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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시민로드(하) - 문화가 있는 도시]
(5) 일터를 미학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 임지연 / 생명정치재단 상임이사

인천in은 올 상반기 이어 11월 2일부터 학산문화원이 진행하는 지역인문강좌 ‘미추홀 시민로드 ? 문화가 있는 도시를 꿈꾸다’ 중 <미학>과 <생태자원>편을 각각 4회씩 8회에 걸쳐 요약해 싣습니다. ‘문화시민을 위한 미학’은 ‘천하의 잡것이 되어라’를 주제로 임지연 생명정치재단 상임이사가, ‘문화와 생태자원의 회복’은 ‘학익천맹꽁이의 회복’을 주제로 장정구 인천 환경특별시 추진단장이 진행합니다. 11월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오전 각각 강좌를 열고 오후에 인천in에 게재됩니다.

 

현실구조 ≠ 언어구조

가장 쉽게 상황을 표현하는 방법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어구조와 현실구조는 다르다. 현실 세계는 온전히 언어로 규정할 수 없다. 상황을 설명, 전달, 규정하기 위해 언어라는 매체를 사용하는 것뿐이다.

기본적인 문장구조는 ‘~이/가 ~다’로 주어와 술어 두 가지 항목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은 통일된 주어와 술어다. 예를 들어 ‘바람이 분다’가 언어구조로는 주어인 ‘바람’과 술어인 ‘분다’로 구분되지만, 현실구조에선 ‘바람이 분다’는 상황 자체를 겪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1844~1900)는 통일적인 상태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구조를 언어구조 즉, 주어와 술어로 분리해 생각하는 데에서 근대철학 인간 사유의 한계가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내 삶에 관해서도 나로부터 내 시간을 분리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는 공부한다’는 문장은 언어 구조상 ‘나’와 ‘공부한다’로 구분되지만, 실제로 삶의 현장을 들어다보면 ‘나’라는 건 따로 없이 공부하는 행위 자체만 있다. ‘나’는 관념이 아니라 생명, 시간, 노동, 신체, 활동 등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사건 속에서 나의 삶은 구성된다.

 

 

거래되는 사람의 속성

우리의 사고구조는 분리를 당연하게 여긴다. 나로부터 생명, 노동, 시간 등을 분리해 물질적 가치로 환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인류가 처음부터 ‘나로부터 나의 활동을 분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건 아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현대 인류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서구 근대로부터 왔다.

서구 근대의 기본 프로젝트는 분리와 정화 작용이다. 서구 근대인의 주된 사고방식은 자연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은 무엇인지 밝히고 그 안에서 자율적인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또한, 분리를 통해 계몽을 진행했다. 자연을 이성을 가진 인간보다 열악한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빛나는 이성이 어둠의 자연을 정화한다는 생각은 근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연인이 아닌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약속 체계에 등록되어야 한다. 로크의 통치론을 보면 사회공동체를 어떻게 구상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로크는 person(인격)과 사람을 다른 개념으로 봤다. 사람은 자연인으로, 자연인 안에는 person(인격)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며 그 안에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산은 생명, 자유, 자산 등이 포함된다. 이게 갖춰져야 사회공동체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서구 근대는 외부의 사물이 노동을 통해 사람의 고유한 속성 재산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인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나의 속성을 거래할 수 있는 사물로 만드는 모습은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 근대부터 이어진 생명 < 돈

인간의 속성을 거래하며 생명체를 존재로 대하는 것이 아닌 상품으로 대하는 태도가 만연해졌다.

‘2018년 OECD 국가의 근로자 10만 명당 사고 사망자 수’ 자료를 보면 터키, 멕시코, 미국에 이어 한국이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산업재해 관련 기사는 지금도 계속 쏟아지고 있다. 지난 9월 기사를 보면 2020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882명으로 집계됐으며, 이 수치는 1970년대 영국 사망자 수와 비슷하다는 비판을 담고 있다.

매해 문제 지적은 이루어지지만 사망자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생명보다는 돈을 중시하는 욕망 때문에 1차적으로 법적 책임이 낮게 규정됐기 때문이다.

 

 

이익을 내기 위해 물건으로 치부되는 건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 외의 개체를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해도 된다는 생각은 서구 근대의 인간중심주의와 이성중심주의부터 이어졌다. 이성중심주의가 추구하는 명석판명한 진리는 수학적으로 측정되고 논리적으로 추론될 수 있다. 이성중심주의 가치관은 높이 오를수록 좋은 것이라는 욕망 운동을 불러일으킨다. 수치화를 통해 비교가 이루어지며 우열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피라미드형 조직구조는 전통적으로 직장 내에서 발견되는 조직구조로 능력, 업무 역량이 측정되고 측정 결과에 따라 연봉, 성과가 부여되는 과정이 일어난다. 이상적으로 측정이라는 말은 객관성을 느껴지지만, 한 사람의 시간과 능력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관념의 틀에 갇혀… 권위에 복종

우리나라 모든 분야에서는 권위에 대한 복종 심리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학생들이 많이 하는 말 중 하나인 ‘제가 잘 몰라서요’에서 권위에 대한 복종심리를 볼 수 있다. 학생들은 모든 걸 알아야 할 필요 없지만,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발언 자격이 없다는 사고구조로 이어져 자격지심을 갖게 된다.

‘제가 잘 몰라서요’는 겸양의 표현처럼 느껴지지만, 자세히 알아보면 잘 모르면 말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에 철저히 복속된 모습이다. 교육 현장에서만이 아닌 문화, 경제, 정치, 종교, 예술, 학문 등 모든 분야에서 발생한다.

자기 스스로 주체가 되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믿고 따르는 관념의 틀대로 살아가는 모습은 한국 사회의 특징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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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사이 공통의 지점… ‘살아 있다’

생명력 넘치는 삶을 위해서는 1차적으로 감각성을 회복해야 한다. ‘존재한다’라는 생명 감각을 회복해야 고통을 줄일 수 있다.

회복의 핵심은 신뢰로 ‘너와 나 사이 공통의 지점’의 발견을 통해 쌓을 수 있다. 공통의 지점이란 지식이나 과학적 측정, 수치가 아닌 ‘내가 살아 있는 만큼 너도 살아있다’라는 생명의 근원이다.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에서 비슷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무지한 스승이라는 말에 어폐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너와 나 사이 공통의 지점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는 개념이다. 각자 가지고 있는 무지의 지점에서부터 대화를 해나가고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것이 상호관계 속에서 형성되어 갈 때 삶의 현장이 훨씬 생명력 있는 공간으로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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