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마당이 필요한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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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마당이 필요한 인천
  • 박병상
  • 승인 2021.11.1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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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장

 

20년 넘게 살던 아파트단지를 떠나 2년 전 여름, 소암마을의 신축 아파트단지로 이사했다. 유원지였던 예전 송도 주변으로, 신도시로 바뀌기 이전의 너른 갯벌에서 조개 캐던 토박이 주민의 어촌계가 오래전부터 자리하던 후미진 곳이었다. 세 군데 고층 아파트단지가 번듯하게 올라서면서 개과천선한 지역이라지만, 여전히 서먹하고 동네는 한가하다. 분양이 벌써 완료되었다지만, 신축한 상가들은 텅 비었다.

소암마을 아파트단지의 건너편은 갯벌에 쓰레기를 메운 자리다. 위생매립 전이라 중금속이 검출된다는데, 어떤 건설업체가 놀이시설을 짓겠다며 울타리를 둘러쳤다는데, 무슨 이유인지 공사가 여러 해 진행되지 않았고, 지금은 수풀이 가득하다. 어떻게 들어왔을까? 장마철마다 맹꽁이가 울어대는데, 얼마나 많은지 8차선 도로 건너 아파트단지가 시끄러울 정도다.

최근 놀이공원 공사가 시작될 거라는 소문이 돈다. 이재에 밝다고 알려진 그 건설업체가 놀이공원 예정 용지 건너에 한동안 방치하던 넓은 땅에 아파트를 지으려 이윽고 마음먹었나 보다. 송도신도시를 비롯해 인천 아파트의 가격이 치솟지 않았나. 아파트 분양하려면 놀이공원을 먼저 완공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던데, 그 때문에 서두르는지 모른다.

소암마을 아파트단지에 거주하는 3000가구의 주민은 어디에서 친지와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실까? 동네는 분명 아니다. 아파트단지와 놀이시설로 인기 있으리라 믿었는지 잔뜩 지어놓은 상가들은 민망할 정도로 비었다. 코로나19 탓도 있겠지만 떠난 자영업자도 여럿이다. 놀이시설에 입장객이 북적거리면 달라질까? 몇 년 뒤의 일이라 짐작이 어려운데, 소암마을 주민은 퇴근 후 동네 상가를 찾을 여유가 없다. 이웃이 아직 낯설다. 썰렁한 콘크리트 건물은 이웃이 다정하게 모이는 공간이 아니다.

기존 연수구로 가면 주점과 공원뿐 아니라 문화센터와 종교시설을 포함하면 모일 공간이 많다. 이웃과 어울리는 마당이다. 소암마을에 이렇다 할 마당이 없다. 단지 내에 작은 공간이 더러 있지만, 어울릴 이웃은 드물다. 송도신도시의 하늘 찌르는 고급 아파트단지도 사정이 비슷할 텐데, 흔히 “송도3교”라고 말하는 “아트센터교”를 건너면 ‘이음텃밭’이 보인다. 올 초 분양한 공동체 텃밭이다. 텃밭 농사에 가족 단위로 참여하는 시민들은 다정해 보인다. 1년 만에 다정한 이웃이 반갑게 만나는 마당이 되었다.

이음텃밭 네이버블로그 1m1m2m2m
이음텃밭(사진 = 네이버블로그 1m1m2m2m)

 

겨울로 들어서는 요즘, 텃밭의 작물은 얼마 남지 않았다. 주말에 만나던 시민들은 텃밭이 아니라도 자주 어울릴 게 틀림없다. 그들은 연수구와 인천시의 정책에 관심이 클 것이다. 텃밭 참여로 지역에 삶의 뿌리를 내린 만큼 관심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내년에도 텃밭 분양이 가능할지 궁금할 뿐 아니라 농사 정보를 나누던 이웃과 계속 만나고 싶을 것이다. 인천시와 연수구에 더 넓은 마당을 열어달라 부탁하고 싶겠지. 유럽처럼 텃밭이 모자라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해달라고 국가에 청원하고 싶을지 모른다. 선거 후보에게 견해를 묻고 싶을 것 같다.

이음텃밭은 신청한 시민에 비해 턱없이 좁다. 갯벌 매립 비용을 따지면 더 넓힐 수 없다고 인천시는 대꾸할까? 하지만 어떤가?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는 높은 빌딩이 아니라 텃밭을 자랑한다. 시민이 만족할 수준으로 텃밭을 충분히 조성하지 않는 시장은 다음 선거에서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독일 뮌헨은 아파트가 낡으면 재건축하지 않는다. 허물어낸 자리에 텃밭을 조성한다. 많은 세금이 들어가더라도 시민들이 성원하지 않던가. 지역에 뿌리내린 삶이기 때문이리라.

유럽인은 도시의 완성은 아스팔트와 철근콘크리트가 아니라 마당이라고 믿는다. 마당은 녹지와 습지가 넓은 공원이고 주말마다 이웃과 어울리는 텃밭이며 공동체 카페다.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마당에 모여 저녁을 먹고 찻잔과 술잔 기울이기에 단체장은 마당 만드는 예산을 아끼지 않는다. 5분 걸어 다정한 이웃을 만날 마당이 30%가 넘으면 시민들은 도시를 떠나지 않는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자신과 가족이 사는 도시가 자동차로 더러워지거나 위험해지는 걸 반대하면서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터전인 까닭이리라.

커다란 놀이공원이 예정된 소암마을 건너 수풀을 마을의 마당으로 조성하면 어떨까? 놀이시설 규모를 대폭 줄이고 맹꽁이가 목청을 놓을 수 있는 습지와 녹지가 넓은 공원으로 조성한다면 소암마을은 물론이고 연수구 주민들도 흔쾌히 찾아오는 마당으로 승화되지 않을까? 건설회사가 난색 하더라도 아파트 시세가 가라앉으면 달라질지 모른다. 땅값이 하락할수록 인천시와 연수구는 더욱 과감히 예산을 투자할 수 있다. 그를 위한 공론화는 어떨까?

내친김에, 좁고 긴 이음텃밭도 대폭 확장하자. 300만 인천시가 자랑하기에 초라한 면적이 아닌가. 다행히 이음텃밭 옆의 공간은 무척 넓다. 400명 신청 가능한 이음텃밭을 10배 넘게 충분히 확장할 수 있다. 시민이 반가워할 공간은 인천시 여기저기 많을 것이다. 시민의 삶이 뿌리내리는 인천! 상상만으로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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