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리를 분별할 만한 지각이 없이 행동할 때 '철없다'라고 핀잔을 줍니다. 철부지라면서요.
'철없다'라는 말은 원래 절기(節氣)를 느낄 줄 모른다 해서 나온 말입니다.
농사지을 때 절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절기에 따라 씨 뿌리고 거두기를 합니다. 제때 김도 매주고 북을 줘야 합니다. 작물이 자라는 데는 다 때가 있는 법이지요.
일 년 열두 달은 24절기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절기는 대개 보름마다 찾아옵니다.
'철들었다'라는 말은 절기를 느낄 줄 안다는 거고, 반대로 '철없다'라는 말은 절기도 못 느낀다는 뜻입니다. 모내기할 때인지, 보리 심을 때인지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농사지으면 '철없다'라는 말을 듣기 십상입니다.
'철없다'라는 소리는 사람만 듣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요즘 철모르는 식물도 간혹 눈에 띕니다.
안산시 고잔역. 이곳은 수인분당선이 지납니다. 옛 수인선 협궤열차가 다녔던 폐철로 주위에 꽃단지를 조성했습니다. 봄이면 철쭉으로 꽃동산이 되고, 가을이면 구절초와 코스모스가 군락을 이뤄 핍니다. 특히, 바람결에 흩어지는 구절초 향기는 사람들 발길을 붙잡습니다.
그런데 이곳 꽃단지에 때아닌 철쭉이 군데군데 피었네요.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10월 23일)이 지났고, 겨울의 문턱인 입동(立冬:11월 7일)이 한참 지났는데, 철을 잊은 녀석들이 있습니다. 같은 형제들은 차분히 겨울을 대비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철쭉은 봄에 꽃 피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 철쭉이 초겨울에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으니, 요 녀석들 진짜 철이 없어 보입니다. 봄날 같은 날이 며칠 계속되어서 그런 걸까요? 아마 지금이 따뜻한 봄인 줄 알았나 보죠. 시도 때도 모르는 철부지 녀석들입니다.
잎은 벌써 단풍이 들었는데, 제철이 아닌 꽃을 피운 기이한 현상. '코로나'라는 비정상적인 세상에서 철도 몰라보는가 싶어 괜히 씁쓸한 생각이 드네요.
세상은 모든 게 정상적일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꽃이 피고 지는 것도 그렇습니다.
가을 철쭉 / 자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