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아파트’ 논란 4개월째 무대책... 문화재청 진퇴양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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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아파트’ 논란 4개월째 무대책... 문화재청 진퇴양난
  • 윤성문 기자
  • 승인 2021.11.19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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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장릉 인근에 건립 중인 검단신도시 아파트단지 전경. 사진=문화재청
김포 장릉 인근에 건립 중인 검단신도시 아파트단지 전경. 사진=문화재청

‘왕릉뷰 아파트’로 불리는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를 둘러싼 논란이 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입주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문화재청과 건설사 모두 마땅한 묘안을 찾지 못한채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1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검단신도시 아파트 공사 중단 사태는 건설사들과 문화재청 간의 이견으로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논란에 휩싸인 검단신도시 아파트는 3개 건설사의 3400여가구 규모 44개동 가운데 19개동이다.

이중 대광건영이 짓는 9개동(735가구) 중 9개동, 금성백조가 짓는 12개동(1249가구) 중 3개동(244가구)은 공사가 멈췄다.

문화재청은 지난 7월 세계문화유산이자 사적 202호인 김포 장릉 인근에서 허가를 받지 않고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들을 상대로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문화재 반경 500m 내의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짓는 20m 이상의 건축물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하지만 건설사들이 이 같은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들 아파트는 이미 지상에서 93~97m까지 골조 공사를 마친 상태로 입주는 커녕 철거될 위기에 처해했다.

 

◇ 입주 예정자들 ‘발등에 불’

입주를 1년도 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아파트 철거설이 돌자 수분양자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지난 14일 인천 검단신도시에서는 문화재청의 명령에 따라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과 2개 건설사간 간담회가 열렸다.

이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은 연설문을 통해 “문화재청, 인천도시공사, 인천 서구청, 건설사의 안일하고 성급한 행동으로 인해 국가의 주택공급정책에 따라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입주 예정자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입주 예정자 커뮤니티 등에는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아파트를 분양받은 이들에게 선의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아달라는 글도 잇따르고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 캡처

반면 일부 시민들은 아파트 때문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을 잃을 수 없다는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 9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김포 장릉 인근에 문화재청 허가 없이 올라간 아파트의 철거를 촉구합니다'라는 청원은 21만6,045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김포 장릉의 경관을 해치는, 문화재청 허가 없이 지어진 아파트의 철거를 촉구한다"며 "해당 아파트들은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했으나 이를 받지 않고 지어진 건축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인정한 우리 문화유산을 건설사 및 지자체들의 안일한 태도에 훼손되는 이런 일이 지속한다면 과연 우리 문화가 계속해서 세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 관할 지자체·건설사들 ‘억울’

왕릉 근처에 문화재청의 심의 절차를 어기고 건축물을 지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건설사들은 지자체의 허가대로 적법한 절차를 따랐을 뿐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2014년 인천도시공사로부터 택지 개발 허가를 받은 땅을 사들였고, 2019년 인천 서구청의 건축 심의도 거쳤다는 것이다.

또, 토지를 매입한 2014년 이후 강화된 규정을 소급 적용한 것은 불합리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또 인허가를 받을 때 지자체로부터 문화재청 심의를 받으라는 요구가 없었기 때문에 필요성을 몰랐다는 입장이다.

관할 지자체인 인천 서구청은 관보에 고시된 걸 전달받지 못해 법이 바뀐 걸 몰랐다며 문화재청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 마땅한 해법없는 문화재청

건설사들은 아파트 외벽 색상과 마감 재질 등만 교체하는 내용의 개선안을 제시했지만 문화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열린 회의에서 “3개 건설사가 제안한 방안으로는 김포 장릉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유지하기 어렵다”며 심의를 보류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아파트를 건설중인 대방건설, 대광이엔씨, 제이에스글로벌은 아파트 외벽의 색상과 마감 재질 등만 언급했다.

세 업체는 마감 색상을 장릉을 강조하는 색으로 칠하고, 야외에 육각 정자를 두겠다고 제안했다.

최근에는 문화재청의 왕릉뷰 아파트 시뮬레이션 결과가 공개되기도 했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이 공개한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문제가 된 아파트를 문화재 심의 기준인 최고 높이 20m에 맞추기 위해서는 각 동을 모두 4층 높이로 만들거나, 30~58m의 나무를 심어 가리는 방법이 담겼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최대 58m의 나무를 식재해 가리는 방법은 사실상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또 현재 20층이 넘는 꼭대기 층까지 골조 공사를 마친 각 동의 일부를 철거하는 것은 안전성 등의 문제가 있어 사실상 불가능하고 모두 허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현모 문화재청장은 17일 김포 장릉 인근에 문화재청의 허가없이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 철거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유튜브 캡처
김현모 문화재청장이 지난 17일 김포 장릉 인근에 문화재청의 허가없이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 철거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유튜브 캡처

일각에서는 문화재 보호와 관련한 늑장 행정을 보인 문화재청과 지자체가 건설사와 입주 예정자에게 책임을 전가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박정 의원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올해 5월에야 장릉의 경관 훼손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청이 왕릉 인근 아파트 건설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고도 아파트 골조 공사가 끝날 때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문제가 더 커진 것이다.

문화재청은 문제가 터진지 4개월이 지났지만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바탕으로 적절한 행정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만을 밝히고 있다.

김현모 문화재청장은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답변자로 나선 자리에서도 "문화재청에서는 문화재위원회 소위원회를 구성해 사안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향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바탕으로 적절한 행정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말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문화재청의 곤궁한 모습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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