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수 있어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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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수 있어야 아름답다.”
  • 최원영
  • 승인 2021.11.2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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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27화

https://youtu.be/uGWfyfgW-No

 

 

‘위기’는 느닷없이 닥쳐오곤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준비를 잘한다고 해도 한순간에 홍수가 나서, 불이 나서, 전쟁이 나서, 요즘처럼 감염병이 돌아서 모든 게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게 삶의 두 얼굴, 즉 양극성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이 위기가 우리에게 훗날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이것 역시 삶입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번영은 엄청난 재앙 이후에 이루어졌으니까요.

《흥미롭고 오묘한 말 속 인문학》(이윤재)에 케네디 대통령과 소년이 나눈 대화가 나옵니다.

소년이 어떻게 해서 전쟁 영웅이 되었냐고 묻자, 케네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야. 일본군이 어뢰정을 침몰시키는 바람에 그만 전쟁 영웅이 되고 말았지.”

이게 무슨 말일까요?

케네디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터지자 해군에 입대했습니다. 해군 중위로 남태평양에서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1943년 8월 2일 밤입니다.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에서 케네디의 어뢰정은 일본해군의 1,750톤 구축함 ‘아마기리’와 충돌했습니다. 어뢰정은 침몰해 13명 부하 중 2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는 5시간이나 헤엄쳐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해상에 표류하면서 허리 부상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하들을 구해냈습니다.

이것이 그의 정치적 출세에 영향을 줍니다. 생존 대원들은 1961년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됐습니다.

한편 ‘아마기리’ 함장이던 하나미 고헤이가 그에게 ‘사죄’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케네디는 일본을 관대히 용서해줍니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란 편지를 일본에 보냈습니다. 당시 구축함에 탄 일본 군인들도 초대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어뢰정 충돌사고는 ‘위기’입니다. 그러나 위기 앞에서 부하를 살리려 한 케네디에게 당시의 위기는 훗날 자신을 백악관으로 가게 하는 선물이 되어주었습니다. 이게 삶의 두 얼굴입니다. 삶은 늘 극과 극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기쁨의 미소를 짓게 하고, 때로는 슬픔의 눈물을 짓게 합니다.

고통과 아름다움도 같습니다. 고통이 있어야 아름다움이 빛납니다. 고통스러운 이물이 있었기에 오히려 진주를 만들어내는 진주조개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류시화)에 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에서 크눌프가 친구에게 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름다운 소녀가 있다고 해봐. 만약 지금이 그녀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고, 이 순간이 지나면 그녀가 늙을 것이고 죽게 될 것이란 점을 모른다면, 아마도 그녀의 아름다움이 그렇게 두드러지지는 않을 거야.”

“어떤 아름다운 것이 그 모습대로 영원히 지속한다면 그것도 기쁜 일이겠지.

하지만 그런 경우 나는 그것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이렇게 생각할 거야.

이것은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거다. 꼭 오늘 볼 필요는 없다고 말이야.

반대로 연약해서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게 있다면 나는 그걸 바라보게 되지. 그러면서 기쁨만 느끼는 게 아니라 연민도 함께 느낀다네.

나는 밤에 어디선가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것을 가장 좋아해. 파란색과 녹색 조명탄들이 어둠 속으로 높이 올라가서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작은 곡선을 그리며 사라져버리지. 그래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즐거움을 느끼는 동시에 그것이 금세 다시 사라져 버릴 거란 두려움도 느끼게 돼.

이 두 감정은 서로 연결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래 머무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거야.”

대단한 통찰입니다. 사라질 수 있어야 아름답다는 통찰, 늙을 것을 헤아릴 수 있기에 지금의 이 아름다움을 더욱더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가 영원히 사라지는 ‘죽음’이 있기에 아직도 살아 있는 우리의 삶은 하늘의 별처럼 아름답게 빛날 것이란 이치를 알 수 있습니다.

사라지는 것도 고통이고, 늙는 것도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있기에 우리의 기쁨 또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삶의 이치입니다. ‘사라질 수 있어야 진정 아름답다’는 이 깨달음이 여러분과 저의 행복을 이끌어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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