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의 남성다움+여성의 성적 매력... 노동시장의 신상품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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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의 남성다움+여성의 성적 매력... 노동시장의 신상품이지만
  • 장한섬
  • 승인 2021.11.26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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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영화로 읽다]
⑥ 천하장사 마돈나 : 프로씨름단 해체기와 노동자 아버지의 소멸

 

아버지 대신 노동자의 이름으로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2006)는 한국 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경쾌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재미로만 본다면 훌륭한 작품이다. 그러나 지역의 시각으로, 특히 노동도시 인천의 정체성으로 바라보면 시비를 걸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노동자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노동자

 

영화 속 아버지(김윤석)는 (권투선수 출신으로) 공장에서 해고된 노동자다. 그는 자신의 복직을 위해서 비 내리는 공장 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다(이 영화에서도 비는 부정적으로 배치된다). 피켓 내용은 아래와 같다.

“노동자를 부당하게 짤르는 악덕 고용주는 각성하라”

노동자 (피켓) 앞에서 여자아이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남자아이는 “아저씨, 이거 (짤르는) 글씨 틀렸어요.”라고 말한다. 잠시 후 사장 승용차가 공장으로 진입하다 정문 앞에 정차하고 창문을 내린 후 “저 새끼가 여기 왜 있어. 저거 당장 치워.” 노동자는 구경거리와 멸시의 대상으로 빗속에 남는다.

위 장면 후 노동자는 포장마차에서 (해고된 직장에서 함께 일한) 동생(동료)과 술을 마신다. 노동자는 자신의 욱하는 성미(부당해고의 분노)때문에 사장을 폭행했고, 쪽팔린 건 못 참는다고 말한다. 그러자 동생(동료)은 “형, 사는 게 쪽팔린 거야. 그래야 사는 거야.” 이때 건너편 테이블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 눈에 들어온다. “야, 깜씨. 한국 왔으면 한국말 해라. 너 어디야? 베트남? 필리핀?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어선다) 그래, 가라. 고향으로 돌아가. 여기 우리끼리도 열나 박 터지거든.”

위 두 장면 전에 노동자(아버지)는 (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 밥 먹는 아들들을 (문지방 앞으로) 부른 후 훈계한다. “만만해. 세상 사는 게 만만해. 세상이 얼마 무서운지 알아? 한번만 삐끗하면… 이 새끼야, 인생 끝장이야. 그냥 나가리 되는 거야. (작은 아들이 짜증스러워하자) 이 새끼가 아버지가 얘기하는데, 확… 똑바로 들어. 상대방 주시하고, 가드를 올리고, 저 새끼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딱, (폼) 잡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거야. 안 그러면 죽어.”

해고된 노동자(아버지)에게 세상은 적들의 소굴이고 쳐부숴야 할 악이다. 더 큰 문제는 해고된 노동자(아버지)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다(부평공단에서 기타를 만든 콜트악기 노동자들은 부당해고에 저항하며 13년이나 문화예술인과 시민단체와 연대하며 투쟁했다).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는 노동자(아버지)를 부정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자기파괴적)으로 그린다. 이혼한 아내는 남편(노동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왜 당신이 싫은지 않아? 맨날 술 마셔서 싫고, 맨날 소리 지르고 집어던지고… 당신 정말 너무너무 싫은 사람인데… 무엇보다도 가장 싫은 건 당신은 당신 자신을 너무 미워해. 그래서 난 정말 당신이 싫어.”

큰 아들 동구는 엄마를 찾아가 동생(동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철이 갈수록 아빠 닮아가. 그래서 나 걔 싫어.”

[천하장사 마돈나]는 폭력의 대물림이 가난의 대물림처럼 현실을 그린다(영화 [풀 몬티]와 [빌리 엘리어트]는 해고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사랑과 헌신으로 그린다).

영화 속 노동자(아버지)는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장이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결말을 맞이한다. 다른 점은 난장이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죄책감) 때문에 자살하지만, 영화 속 노동자(아버지)는 고립감 때문에 분노하고 절망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다가 자기소외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미국에서는 공화당이 집권하면 살인율과 자살률이 증가한다).

 

  8월 구사대의 폭력으로 세원테크 이현중 사망, 9월 농민 이경해 할복, 10월 한진중공업 김주익 · 곽재규 자결과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이용석 분신, 11월 세원테크 이해남 분신 … 하반기에는 노동자민중의 죽음이 이어졌다. 이른바 ‘열사정국’이었다. 수많은 주검들이 “노무현 대통령님!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야 이 나라의 노동정책이 바뀔 수 있겠습니까?”(세원테크 이해남 지회장의 유서) 라고 절규했다. 그러나 노무현은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화답했다.

-「오늘보다」(특집 2017/06 제29호) http://todayboda.net/article/7349

 

노무현 정권 시기 프로씨름단 해체와 한미FTA 문제가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현상이 일어난다(1990년대까지 인기절정이었던 프로씨름은 IMF 금융위기부터 몰락했고, 2016년 마지막 프로팀인 ‘현대 코끼리 씨름단’이 해체된다). 전통문화의 쇠퇴는 전통적인 권위의 상실과 맞물려 일어난다. 영화 [북경반점]의 산업화시대 가부장제 권위는 사장님의 부동산(북경반점 건물과 춘장 대농장)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 세대의 아버지는 이른바 386세대의 학번과 상징자본을 갖추지 못하면 노동자가 아닌 ‘나가리’가 되고, 그 아들 세대는 아버지 세대에 대한 존경은 고사하고 자신의 생존까지 불안해한다. 이러한 현상은 지배계급의 행동양식으로부터 비롯되는데, 대한민국의 권력층은 노동자와 노동자 자식을 진심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노동현장의 안전을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취지가 축소되었다).

그래서 [천하장사 마돈나]의 주인공 동구는 여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아버지(노동자)를 닮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아가 동구는 아버지(노동자)를 대신할 수 있는 일본인 선생님을 사랑한다. 아버지와 정반대로 폭력성이 없고 노동자 계급이 아닌 지식인 계급에 가깝다. 그러나 일본인 선생님이 매를 들자 동구는 상처를 받는다. 영화 마지막에 동구는 클럽에서 여성(혹은 여장남성)이 되어 마돈나 노래를 부르지만, 여자로 사는 게 아니라 마돈나처럼 보이는 성(性)상품으로 무대(진열장) 위에서 조명을 받는다.

 

노동자의 인품 대신 마돈나라는 상품으로

마돈나가 시대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정권에 반항적인 행동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미국은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의 패전과 오일쇼크로 경제가 쇠락하자 미국 국민은 1950년대 아이젠하워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때 레이건이 대선 후보로 등장하여 강한 미국의 재건을 약속한다(2016년 트럼프가 재연한다).

레이건의 강한 미국은 강한 아버지상으로 제시되고, 이러한 정치적 비전은 [람보], [코만도], [로보캅] 등 하드보디 영화를 통해서 어필된다. 그래서 아이젠하워 시절을 기억하는 아버지 세대는 열광하지만, 그 아들 세대와 딸들에게 강한 남성상은 피로와 함께 반동을 일으킨다. 마돈나의 첫 히트곡 ‘라이크 어 버진(Like a Virgin)’은 처녀처럼 얌전한 노래가 아니라 창녀처럼 관능미를 발산하고, 영국에서 날아온 컬처클럽의 가수 보이 조지(Boy George)는 남성임에도 여장을 한 채 무대에 선다. 이러한 변화에 젊은 세대는 거부감 대신 아버지상과는 상반되는 이미지에 흥미를 느끼고 오히려 열광한다. 즉, 유통 상품이 아닌 저항하는 인품에 반한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1980년대 미국의 (강력한 아버지상의 반동으로 부상한) 마돈나와 보이 조지처럼 새로운 인물상을 보여준다기보다 천하장사라는 남성다움에 여성의 성적 매력을 가미시켜 (남자로 살기 어려운 세상살이 속에서) 가난한 아들 세대가 노동시장에 내놓은 신상품에 가깝다. 그 때문에 영화 자체는 경쾌하나 지역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건강한 영화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이 영화에서도 인천바다는 (파이란처럼) 어둠에 젖어 있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주인공은 현덕 소설 『남생이』의 부둣가 노동자처럼 등장하며 인천항을 보여준다(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처럼 교복 입은 모습을 보여준다).

 

인천 자유공원과 인천항 그리고 (정치선전) 현수막
인천 자유공원과 인천항 그리고 (정치선전) 현수막.
“확고한 한미동맹은 북한의 남침을 억제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보장한다”
“맥아더 장군 동상을 결사적으로 사수하자!!”
2015년 12월. 이곳에서 영화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가 열린다.

 

아버지의 행동 대신 맥아더(동상)의 권위로부터

영화 속 자유공원 장면에서 친구 종만은 권위적인 맥아더 동상 앞에서 춤추며 랩을 한다. 권위에 대한 반항과 비판보다는 자기 자신의 흥에 겨워 노래하고 춤춘다. 종만은 화교출신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신문반에 들어가 기자를 꿈꾸다 포기하고, 씨름부에 가입하는 등 여러 곳을 전전하지만, 진정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항상 희화화된 모습으로 표피적인 행동에 머문다. 그런 의미에서 맥아더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 장면은 불합리한 권위를 풍자한다기보다 인천의 진풍경을 병풍으로 배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슈퍼스타 감사용]에 나오는 자유공원은 장소의 상징은 보이지 않지만 새로운 관계망이 형성된다는 의미에서 영화는 장소를 다른 의미로 생성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도시에서 노동자 아버지는 난장이 아버지보다 더 위축되고 위악스럽게 그려진다. 아들이 씨름 경기에서 우승하지만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사라진다. 영화 마지막에 동구가 마돈나 노래를 부를 때에는 친구들과 엄마만 등장한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폭력적인 아버지가 사라진다고 평화가 저절로 피지 않는다. 폭력을 낳는 사회체제와 시스템에 대한 성찰과 비판 없이는 폭력을 낳는 구조는 지속된다(또한 학습된 무기력이 관성으로 작동한다). 영화 마지막에 아버지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닮아가는 작은 아들(동생) 또한 보이지 않는다.

 

[천하장사 마돈사] 촬영지 인천 중구(2019)
[천하장사 마돈나] 촬영지 인천 중구(2019)
공공영역에서 여성의 몸이 전시물로 배치되었다.

 

노동 넘어 행동하는 인간

2018년 동인천역 광장에서 제1회 인천퀴어축제가 열리지만(서울에서는 2000년에 처음 퀴어축제가 열렸다), 종교단체와 보수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빨갱이 몰이하듯) 축제 참여자들을 고립시키고 축제를 파행시켰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폭력을 합리화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극장의 영화는 끝이 나고, 폭력적인 아버지도 영화 속에서 사라지지만, 극장 밖 현실에서는 다름과 차이는 여전히 빨갱이 사냥(낙인찍기)처럼 작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집단광기가 일어나는 대한민국 현실 속에는 (동구 아버지 같은 노동자도 있지만) 다른 노동자를 위해서 싸우고 연대하며 행동하는 김진숙 같은 여성(노동자)도 있다. 유쾌한 [천하장사 마돈나]에 시비를 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 건강한 사랑을 꿈꾸고 실제로 사랑을 나눈다. 공장에서 일하고, 시를 쓰고, 사랑을 나누다 가정을 이루는 노동자의 詩는 대한민국에서도 피어난다.

 

부평 4공단 여공

늘 그녀들로부터 위축되어 있었다

맘에 드는 상대가 나타나도

내 처지만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나서질 못했다

가까이 접근을 하면

공돌이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면박을 줄 것만 같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궁여지책으로 펜팔을 했다

펜팔 업체로부터 소개받은 그녀는

부평 4공단에서 여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립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연장작업, 휴일 특근작업, 36시간 교대작업,

공장생활의 고단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아프지만 병원 갈 돈이 없다는 소식이 오고갔다

“아프지만”이란 소식에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병원 갈 돈이 없다”는 소식에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 정세훈 시집 『부평 4공단 여공』 (푸른사상, 2012) 26쪽

 

 

인천, 영화로 읽다 (연재순서)

① 들어가는 말 : 인천 없는 인천영화제(10/22)

② 북경반점 : 가부장을 위한 디즈니랜드(10/29)

③ 파이란 : 인천바다의 탁함과 동해바다의 색조(11/5)

④ 고양이를 부탁해 : 인천여상 소녀들의 표류기(11/12)

⑤ 슈퍼스타 감사용 : 함께 시작할 줄 아는 용기(11/19)

⑥ 천하장사 마돈나 : 프로씨름단 해체기와 노동자 아버지의 소멸(11/26)

⑦ 차이나타운 : 신자유주의 속 가족의 재편(12/3)

⑧ 인천상륙작전 : 반공주의의 (재)생산기지 인천(12/10)

⑨ 오늘도 평화로운 : 장소의 재발견과 일상의 재미(12/17)

⑩ 맺음말 : 인천, 영화롭다(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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