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질투, 배신... 늙어감에 대한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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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질투, 배신... 늙어감에 대한 두려움
  • 김민지 기자
  • 승인 2021.12.01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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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대사람들] 안톤 체홉의 '갈매기' 출연하는 강성숙 인천시립극단 차석단원
연극배우 강성숙

 

올해 30주년을 맞은 인천시립극단이 2021년을 마무리하는 정기공연(11.27~12.5)을 무대에 올렸다. 현대연극의 시대를 연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중심, 안톤 체홉의 희곡 <갈매기>(1896)다. 11월 27일부터 시작해 12월 5일까지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린다.

<갈매기>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가는 전환의 시대에 빈자과 부자의 허망한 삶, 사랑과 배신, 파멸로 이끄는 삶의 아이러니와 그 안의 비루함을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인천시립극단 입단 20년차 강성숙 차석단원이 <갈매기>의 주연배우로 나섰다. 한때 잘나가던 러시아 국립 배우였으나 노쇠해가는, 그러나 늘 활력있는 모습을 유지하려는 아르까지나역이다. 이기적이고 질투심이 강한 아르까지나는 아들, 오빠 등 개인적인 것보다 배우, 사랑 등 외적인 것에 더 가치를 두며 젊은 유명소설가를 연인으로 붙잡고 있다.

2001년 인천시립극단에 입단해 인천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연극배우 강성숙. ‘아르까지나’처럼 당당하고 대담하며 통통 튀는 매력의 그녀를 인터뷰했다.

 

- 이번에 ‘아르까지나’역을 소화하며 느끼는 것은

<갈매기>는 안톤 체홉의 4대 장막극 중 첫 번째로 쓰여진 희곡인데, 100년도 더 지난 지금 상연되어도 어색함이 하나 없는 작품이다.

1896년 초연 때는 배신과 파멸 등의 내용에 실망한 관객들의 야유를 받았으나, 2년 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재연되면서 큰 호평과 찬사를 받았다. 극작가로서 체호프의 명성을 높여 준 작품이다.

얼마 전까지도 우리는 돈과 명성을 꿈꿨다. 진정한 내가 누구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인지를 고민하지 않고 답습된 교육 속에서 남들과 비교하며 살아갔다. 남자 주인공인 ‘뜨레블레프’도 재능 없는 작가 지망생이지만, 능력 있는 작가와 자신을 비교하며 질투를 느낀다. <갈매기>는 비교로 인해 생긴 질투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떤 관객은 이 공연을 보고 ‘갈매기가 정착할 수도 없고 머무를 수 없어 안정적일 수 없는 것인지’ 묻기도 했다. 나는 이에 ‘공연을 잘 봤다’고 대답했다.

이번에 ‘아르까지나’ 역을 맡게 됐다. 극 중 러시아 최고의 여배우 ‘아르까지나’는 남자 주인공인 ‘뜨레블레프’의 어머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제일 중요하고 주변을 전혀 돌보지 않는 욕망에 솔직한 인물이다. 아르까지나는 최고의 배우였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더욱 과시하며 늙음에 대한 두려움을 숨긴다.

아르까지나와 닮은 점이 있어 더욱 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 같은 배우이기도 하고 내 삶이 중요하다는 마인드, 그리고 젊음에 대한 욕망 등 공통점이 많았다. 요즘 머리로는 어떻게 생을 정리해나가야 하는지 고민하지만, 감각은 젊게 살기 위한 방안을 생각하는 머리와 감각의 분리가 일어나고 있다. 젊음에 대한 욕망과 늙어감에 대한 두려움은 보든 인간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르까지나다.

‘갈매기’는 12월 5일까지 공연한다. 많은 분이 오셔서 즐겁게 공연을 관람하면 좋겠다.

 

유명소설가 뜨리고린을 연인으로 둔 아르까지나.

 

- 처음 연극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는지?

중학교 2학년 때였나? 종로에서 <바쁘다 바뻐>라는 연극을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나올 정도로 너무 재밌게 봤었다.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조명한 이야기로 가족을 위해 삶의 현장에서 애쓰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연극을 보기 전까지 쓰레기를 줍는 망태 아저씨를 위협적이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옛날에는 할머니들이 호랑이처럼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다는 말로 겁을 줘서 더욱 그런 편견이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가까운 이웃임을 느끼게 해준 <바쁘다 바뻐>라는 연극 덕분에 그런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연극을 만나 ‘연극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생각이 나의 인생에 각인됐다.

 

 

- 어떻게 인천시립극단에 입단하게 됐는지?

처음에는 음악을 전공해서 음악 객원으로 왔었는데 인천시립극단의 배우들과 연습장이 너무 좋았다. 연극은 되게 열악한 환경으로, 연습장 등 시설이 안 좋은 경우가 많다. 내가 본 연습장 중 예술의전당과 인천시립극단이 제일 좋았다. 연습실에 반해 이곳에서 공연도 하고 연습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역량 좋은 배우들도 많아 농담 삼아 ‘이런 곳이라면 내가 일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속으로 했는데 기회가 찾아왔다. 다음 해에 인천시립극단에서 단원을 모집했다. 당시에는 ‘미추’라는 극단에 소속된 상태라 많은 고심을 했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들어갔던 곳이라 의리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결국 모집 기간 마지막 날이었던 토요일, 마감 시간을 10분 남겨놓고 접수했다. 정말 끝까지 고민했었다. 다행히 시험을 잘 마무리 했고 2001년 6월부로 발령을 받아 인천시립극단에 입단했다.

 

아르까지나와의 사랑과 배신으로 파멸로 치닫는 아들 뜨레블레르(좌)

 

- 인천시립극단에서 공연하며 제일 기억에 남는 역할은?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 기념 해였다. 대부분 유관순 열사에 대해 집중했는데 우리는 연극 <100년 후, 꿈꾸었던 세상>을 통해 유관순을 키워낸 유관순의 스승 김란사 선생을 조명했다. 김란사 선생과 나이 차가 딱 100살이었다. 100년 후배가 김란사 선생 역을 맡게 된다니 정말 운명이라고 느꼈고 뜻깊은 2019년을 보냈다.

자유를 노래한 김수영 시인의 삶을 그린 <거대한 뿌리>에서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 여사' 역을 맡았던 것도 기억에 남고 이번에 맡은 <갈매기>의 '아르까지나' 역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인천에서 연극이란?

20년 전까지만 해도 인천에서 공연하면 관객들이 많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줄어들었다. 현재는 연극을 보기 위해 인천시민들이 서울로 유출되고 있다. 서울과 가깝다는 게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인천시민들에게 어떤 연극을 선사해야 하는지 항상 숙제로 남아있다. 인천시민들이 눈높이에 맞춰서 자주 찾을 수 있는 연극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다.

인천시민들이 연극을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이 시대에 생활의 각박함 때문에 문화예술이 소외당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그동안 대면 공연도 힘들었던 상황이었다.

인천문화예술회관이 내년 8월부터 리모델링에 들어간다. 서울에 방문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탄탄한 문화시설로 거듭날 예정이다. 사람들 인식에 연극하면 대학로가 너무 박혀 있다. 홍보가 좀 약한 면도 있다. 앞으로 SNS를 통한 홍보를 기존보다 활성화해야 한다.

MZ세대에게 인천문화예술회관은 쉽게 갈 수 없는 공간이라는 느낌도 있다고 생각한다. 국립극단 같은 소극장 문화가 예술회관에도 도입되면 무거운 기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접근하기 쉬운 문화의 메카로 변모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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