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급 휴업을 처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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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급 휴업을 처벌하라!
  • 김은복
  • 승인 2021.12.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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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칼럼]
김은복 / 노무사, 민주노총인천본부 노동법률상담소

1953년 5월10일 제정·공포된 근로기준법 제2조, “본법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은 최저기준”이다. 2021년 현재까지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근로기준법 제3조). 최저기준이란 어떤 의미인가? 대법원 판결을 보자. “근로기준법의 규정은 각 해당 근로에 대한 임금산정의 최저기준을 정한 것이므로, (생략)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위 기준에 미달할 때에는 그 미달하는 범위 내에서 노사합의는 무효이고, 무효로 된 부분은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야 한다.”(대법원 2013.12.18.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 인용). 그러니 최저기준을 위반하는 합의는 무효다. 최저기준은 노사 합의로 포기시킬 수 없다.

제정 근로기준법 제38조(휴업지불)에는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인하여 휴업하는 경우에는 사용자는 휴업기간 중 당해근로자에 대하여 평균임금의 100분의 60이상의 수당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정했다. 여기서 사용자 귀책사유로 휴업한다는 건, (사용자 측의 고의·과실이 없더라도) 사용자의 세력범위 안에서 발생한 사정으로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지 못한 것이다. 노동자가 일할 의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할 의사에 반하여 노무제공이 거부되거나 불가능해 진 경우를 포함한다(대법원 1991.12.13.선고 90다18999 판결 참조).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1961년에는 사업계속이 불가능한 경우처럼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노동위원회 승인으로 휴업지불금을 감액하는 절차를 마련했다. 1989년 개정으로 휴업기간에 최소 60% 지불 기준이 70%로 바뀌었고, 1997년에 지금의 휴업수당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모든 국민은 일할 권리를 갖는다(헌법 제32조). 일할 권리는 일자리 뿐 아니라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를 포함한다(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2014헌마367 참조). 6.25전쟁 정전 이전부터 노동자에게 휴업수당을 보장한 이유는 노동자의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사용자가 우월한 지위에서 노무제공을 함부로 거절하지 못하도록 하고 동시에 경영상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임금으로 생존하는 사람의 인간답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려는 것이다. 기업의 일방적인 휴업 조치는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생활고를 떠넘기지 않는가!

인천 부평에 한국지엠은 2020년 2월부터 수입 자재와 반도체 수급 차질, 전 세계적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잦은 휴업을 반복한다. 그 밖에도 기계파손, 화재사고 등 휴업 사유는 다양했다. 한국지엠은 협력업체들로부터 자동차 부품을 납품받는다. 1차 협력업체만 20개가 넘고 2~3차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많다. 한국지엠이 휴업하면 협력업체들도 휴업한다. 한국지엠과 몇몇 협력업체에는 튼튼한 노동조합이 있다. 튼튼한 노조가 있는 사업장 노동자들은 법과 노사 간 단체협약에 따라 휴업수당을 받는다.

그러나 다수의 협력업체는 일방적으로 무급휴업을 실시했다. 휴업수당은커녕 주휴수당도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근로기준법에 주휴수당은 1주를 개근해야 발생한다고 정해서라는데, 이건 아전인수 격 법 해석이고 위법하다. 다른 한편 연차휴가를 강요하기도 한다. 어떤 사업장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연차일수를 넘겨서 마이너스 연차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런데 연차휴가는 노동자가 청구한 시기에 주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60조, 1953년 제정 근로기준법 제48조). 사용자의 무급휴업 강요가 노동자의 연차휴가 청구권까지 박탈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떤 사업장에서는 고용노동청의 사업장 감독으로 휴업수당, 주휴수당 미지급이 확인됐다. 그러자 노동자들에게 무급휴직에 동의하라는 서명을 강요했다. 노동자가 무급휴직에 동의한다는 서류만 있으면 고용노동부는 사용자의 휴업수당 지급 의무를 면제해 준다. 포기할 수 없는 권리, 근로기준법에 정한 강행법규인데도 말이다. 심지어 사측 임원, 관리자가 무급휴직 동의서 작성을 거부한 노동자들에게 고성을 지르며 강요한 사실이 녹음되어 확인된 경우에도, 고용노동부는 노동자의 휴업수당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용자로서는 특효약을 얻은 셈이다. 많은 사업장에서 이런 식의 무급휴직 동의서 강요 행태가 벌어졌다. 자동차부품사 뿐만 아니라 업종을 가리지 않고 유행병처럼 번져간 것이다.

이전에도 무급휴직 동의로 휴업수당을 피해가려는 시도는 있어왔다. 휴대전화 제조사 협력업체에서 많이들 그러했다. 노동자들은 호황기에는 잔업에 특근, 장시간 노동을 하고, 비수기에는 무급휴업을 감당해야 했다. 그런데 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 중에는 무급휴직 동의를 인정하지 않고 휴업수당을 지급하도록 지도한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무급휴직 동의서라는 면제부는 공공연히 인정되었고 코로나19와는 또 다른 유행병이 되어 번져가는 것이다.

무급휴직 동의서와 같은 유행병은 과거에도 있었다. IMF를 겪은 대한민국에 연봉제라는 가짜 만병통치약(?)이 유행했는데, 연봉제라는 이름으로 월급에 퇴직금을 포함시키면 나중에 퇴직금을 안줘도 된다는 유행병이었다. 그 유행병 확산에는 당시 노동청들과 근로감독관들의 책임이 크다. 그때도 월급을 쪼개서 퇴직금이라는 항목을 만드는 아주 쉬운 방법으로 사용자들은 퇴직금 지급 의무를 면했던 것이다. 당시 노동부는 2007년에 이르러서야 적법한 요건을 갖추지 않고 퇴직금을 월급에 포함시키는 걸 인정하지 않겠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노동자와 그 가족은 임금을 벌어 살아한다. (그 돈이 돌고 돌아 기업도 살고 은행도 살고 자영업자도 산다.) 세상천지에 임금 벌려고 다니는 직장에서 무급휴업을 원하는 노동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말이다. 쉬기를 원하면 휴가를 쓰거나 퇴직할 것 아닌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헌법 제32조제3항). 그러니 노동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 권한을 갖는 고용노동청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무급휴업을 왜 인정하는가? 왜 이런 몹쓸 유행병을 막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번지게 하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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