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변심... 돈버는 일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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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변심... 돈버는 일을 중심으로
  • 장한섬
  • 승인 2021.12.0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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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영화로 읽다]
⑦ 영화 [차이나타운] : 신자유주의 속 가족의 재편

 

엄마는 죽지 않는다. 다만 교체된다

엄마라는 존재는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사람으로 대개 상정되는데, 영화 [차이나타운](2015)의 엄마(김혜수)는 그렇지 않다. “쓸모없을 땐 버릴 거야”라고 말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 이어 엄마의 수난기도 도래한다. KBS드라마 <엄마가 뿔났다>(2008)에서 (전원일기에서 국민 엄마로 등극한) 김혜자가 엄마로 등장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MBC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김혜자의 남편이었던 이순재는 이 드라마에서는 시아버지로 등장한다(MBC드라마 <이산>에서는 영조대왕으로 나온다).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권력과 지위가 높아져 왕의 자리로 이동하는 반면 엄마는 늘 엄마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김혜자는 영화 [마더](Mother, 2009)에서도 역시 엄마로 나온다.

 

예쁜 엄마 못난 엄마

2010년 KBS드라마 <엄마도 예쁘다>(시청률 11.7% 닐슨코리아)는 <엄마가 뿔났다>(40.4% 닐슨코리아)보다 시청률이 낮다. 엄마가 예쁘면 남자들의 눈길이 따르고 바람날 위험이 있기에 엄마는 예쁘면 안 되는 것이 보수적인 드라마의 문법이다(2007년 영화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는 이러한 강박의 코미디를 보여준다). 1961년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그 시대의 미인 최은희가 엄마로 나오고, 사랑방 손님은 한국의 그레고리 펙이라 불린 김진규가 맡는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이 있지만, 남자(양복 입은 신사)는 조국 근대화를 위해서 기차(근대문명)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고(上京), 엄마는 시골에 남아 한복(전근대의 의상)을 입고 딸의 양육에 힘쓴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여자보다 프로이기를 강요하는 시대가 열리며 여성노동은 가정에서 시장으로 흡수된다(전원일기 엄마도 약재상을 운영하며 혼자서 아들을 부양하는 [마더]가 된다).

영화 [마더]와 비슷한 시기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2008)가 출간되는데, 소설 속 (전근대) 시골 엄마는 근대의 상징적인 장소 서울역(지하)에서 실종된다. 처음에는 자식들이 엄마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찾아 나서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부재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특히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판검사가 되기로 엄마와 약속한 장남은 부채의식으로부터 벗어난다(이런 아들은 1961년 영화 [마부]의 큰아들처럼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집안을 일으키는 전형적인 장남 캐릭터이다). 엄마의 딸 중에는 소설가가 있는데, (엄마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문맹이다) 이 딸은 소설 마지막에 죽은 아들을 안은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와 마주한다. 언뜻 모성을 찬양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평범한 엄마가 아닌 신성을 지닌 모성이 필요한 시대임을 암시한다. 그녀가 있는 곳은 모성애가 넘치는 곳이 아니라 반대로 가부장제의 상징인 바티칸 시티의 성베드로 성당이다.

이러한 모성의 변화는 엄마뿐만 아니라 아내들의 역할에도 변화를 준다. 드라마 <내조의 여왕>(2009)과 <역전의 여왕>(2010~2011)은 살림만 잘하는 전업주부가 아닌 남편의 출세와 성공에도 일조를 해야 하는 책임감을 심어준다. 드라마 <선덕여왕>(2009)은 출세할 출신성분이 아닌 김유신을 출세시키며 성군으로 추앙받는 여왕으로 등극한다. 즉, 여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여왕이 되어 권력과 부를 나눠줄 수 있어야 엄마 노릇도 할 수 있다는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다. 5만원 지폐(2009)에 신사임당이 찍혀 나오는 게 우연은 아니다. 시골 엄마는 서울 마더로 변신하지 못하면 교체되는 시대인 것이다.

 

 

인천 비(雨)는 어둡다

영화 [차이나타운]은 할리우드 영화 [델마와 루이스](1991)와 [바운드](1996)처럼 남성중심 가부장제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영화 [바그다드 카페](1987)처럼 자매애로 서로 다른 타자가 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아니다. 영화 [가족의 탄생](2006)에서는 사랑(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가족이 형성되는 반면, [차이나타운]에서는 엄마의 (돈 버는) 일을 중심으로 ‘가족의 재편’이 이루어진다.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남자)는 영화 [북경반점]에서 [파이란]을 거쳐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소멸하고, [차이나타운]에서 엄마가 엄마 같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권위주의와 폭력을 대행한다.

 

우산이냐 칼이냐

[차이나타운]의 대척점에 있는 영화 [007스카이폴](2012)에서 주인공은 마지막에 자신의 칼(남근의 상징성)로 적을 무찌르고 어머니 같은 M을 구하고, 망나니 같은 아들에서 진정한 남자로 성장하는데, 영화 [차이나타운]에서는 주인공이 엄마의 도발에 자신의 칼로 엄마를 찌른다. [차이나타운]에서도 (인천 배경 영화답게) 비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내린다. [북경반점]에서는 한 사장과 양한국이 ‘비 오는 날’ 옥상 건물 처마를 우산 삼아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부자지간처럼 이야기를 나누는데, [차이나타운]에서는 비 오는 밤에, 불길한 미래를 암시하며 엄마를 등지고 일영(김고은)은 홀로 우산을 쓰고 퇴장한다. 그러면서 [차이나타운]도 인천의 장소성을 비추지만, 정서적 반응과 집단기억을 떠올리는 상징성 대신 범죄(피를 비로 지우는) 현장(파이란)을 연상시킨다.

 

 

노동자 아버지 대신 자본을 택한 엄마의 노동

두 여성(엄마와 일영)은 자신들의 여성성을 스스로 소거한다. 특히, 일영을 맡은 배우 김고은은 영화 [은교](2012)에서 시인 할아버지의 뮤즈로 등장하는데, [차이나타운]에서는 남자처럼 짧은 머리에 (긴머리의 쏭과 대조적으로) 옷도 소년처럼 입고 다닌다.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전직 복서 노동자 아버지는 아들 동구가 운동(씨름)하는 것을 알고 격분하며 아들을 때리면서 말한다. “운동에서 1등 안하면 다 쓰레기다. 사람 취급이나 하는 줄 알아.”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닮을까봐 두렵다. 그런데 영화 [차이나타운]에서는 일영이 엄마를 죽이고서 엄마의 일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엄마는 죽기 직전 일영을 자신의 딸로 입적시킨 서류를 유산으로 남긴다.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한 것 같으나 이들의 언어는 공감이 아닌 반감만 있을 뿐이다. 엄마는 일영이 관심과 애정을 쏟는 남자에게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엄마)의 죽음과 서류상의 딸로 만들어 일영의 성장과 성숙을 봉쇄한다. 반면, 일영은 엄마처럼 성장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엄마를 죽인다. 이들은 이러한 언어를 누구에게 배웠을까? “엄마가 이상해졌다”는 소문이 나자 그녀와 공생관계를 맺은 경찰간부와 정치인이 찾아온다. 즉, 부패하고 잔인한 권력관계가 그녀들 내면을 지배한 것이다.

 

차이나타운 밖 인천

[차이나타운]은 인천의 차이나타운에서 제작한 인천영화가 아니라 인천 안에서 고립된 차이나타운이라는 가상 속에서 촬영한 전형적인 인천(소외)배경영화다([록키](1976)가 진정한 미국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베트남 패전으로 자존감이 떨어진 미국 국민에서 건국의 정신이 담긴 필라델피아를 달리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차이나타운]에는 칠대어향(七代御鄕 : 고려시절 일곱 명의 왕비를 배출한 인천을 가리키는 지명)의 역사적인 자부심과 동일방직 똥물사건(1972)에서 보여준 인천여성노동자들의 연대감은 없다. 엄마와 일영은 조직(차이나타운) 속에서 소속감과 정체성을 느끼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삶을 추동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차이나타운] 상영 다음 해(2016) [인천상륙작전]이 개봉하며, 인천은 다시 반공주의(공포와 혐오)의 성지로 부상한다.

 

 

인천, 영화로 읽다 (연재 순서)

① 들어가는 말 : 인천 없는 인천영화제(10/22)

② 북경반점 : 가부장을 위한 디즈니랜드(10/29)

③ 파이란 : 인천바다의 탁함과 동해바다의 색조(11/5)

④ 고양이를 부탁해 : 인천여상 소녀들의 표류기(11/12)

⑤ 슈퍼스타 감사용 : 함께 시작할 줄 아는 용기(11/19)

⑥ 천하장사 마돈나 : 프로씨름단 해체기와 노동자 아버지의 소멸(11/26)

⑦ 차이나타운 : 신자유주의 속 가족의 재편(12/3)

⑧ 인천상륙작전 : 반공주의의 (재)생산기지 인천(12/10)

⑨ 오늘도 평화로운 : 장소의 재발견과 일상의 재미(12/17)

⑩ 맺음말 : 인천, 영화롭다(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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