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바닷새가 죽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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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바닷새가 죽은 이유
  • 최원영
  • 승인 2021.12.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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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29화

 

 

삶의 속성은 시계추의 속성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삶의 속성에는 ‘운동성’이 있어서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늘 이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양극성’도 있어서 기쁨이 있으면 슬픔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시계추의 속성 한 가지를 더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지향성’입니다.

시계추가 한 방향을 향해 올라갈 때는 그 방향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다는 ‘지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창 사랑의 기운이 클 때는 그 사랑의 감정이 영원할 것만 같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미움이 클 때는 그 미움 역시 영원할 것 같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감정이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은 어김없이 불행한 삶을 부릅니다. 사랑은 애정과 미움이 교차하는 것이니까요. 애정도 사랑의 절반이고, 미움도 사랑의 절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랑의 절반인 ‘애정’만을 나누는 긍정적인 관계만을 사랑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미워질 때를 견디지 못합니다. 이것이 갈등과 슬픔이 잉태하는 원인입니다.

 

《긍정력 사전》(최규상)에 나오는 글을 전해드립니다.

“오래된 멋진 벽시계가 있었다. 무거운 추를 달고 움직이는 시곗바늘이 안쓰러웠다. 얼마나 힘들까. 그래서 추를 떼어냈다. 그러자 시계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인생도 시계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누구나 느끼는 삶의 무게처럼 인생에는 주어진 몫이 있다. 무겁다고 내던지는 순간, 편할 수는 있지만 나 자신은 무의미해진다. 혹시 당신 발밑에 보이지 않는 추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걸 밟고 즐겨라.”

추가 무겁게 느껴지나요? 추가 바로 삶의 무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온갖 걱정거리들이 시계의 추입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이 걱정거리가 무겁다고 그 추를 없애버리면 시계는 멈추고 맙니다. 우리의 삶이 멈추는 겁니다. 그래서 저자는 차라리 그걸 밟고 즐기라고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추가 무겁다고 느끼는 것은 그만큼 삶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추가 무거워서 힘든 게 아닙니다. 그 추가 우리에게 영원히 매달려 있을 거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힘든 겁니다. 시계추가 다시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잊은 겁니다.

시계추가 한쪽으로 올라갈 때는 계속 올라가려는 ‘지향성’이 있습니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그 사람을 미워할 때는 그 미움 또한 영원할 거라고 믿습니다.

왜 그럴까요? 시계추의 반대편을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사랑이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데도 절반만을 사랑의 전부라고 착각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이 옳다고 믿어버립니다. 그것이 자신만의 기준과 원칙이 되어버립니다. 이때부터는 자신의 기준과 원칙이 ‘절대선’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 기준과 원칙을 상대에게 강요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불행은 시작되는 겁니다.

 

《CEO 경영우언》(정광호)에 〈장자〉의 바닷새 이야기가 나옵니다.

“큰 새가 바다로부터 날아와 노나라 도성 교외에 내려앉았다. 왕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가 날아들자 기묘한 생각이 들어 친히 그 새를 영접하고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묘당에 안치했다. 나아가 그 바닷새에게 존경을 뜻을 표시하고, 그를 즐겁게 해주려고 궁중 악대에게 가장 아름다운 악곡인 ‘구소’를 연주케 하고, 연회를 열어 대접했다.

그러나 새는 음악 소리에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침침할 뿐이었다. 융숭한 환영의식에 놀라 혼이 다 빠질 듯했다. 고기도 먹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고, 정신마저 이상해져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왕은 새 기르는 방법으로 바닷새를 응대하지 않고, 오직 자기 방법대로 새를 접대했으니 어찌 타당하다 하겠느냐?”

혹시 우리도 상대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고 믿었지만, 우리의 의도와 달리 결과가 나빴던 적은 없었나요? 그것은 나의 기준으로 상대의 행위를 판단해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살다 보면 기준이 형성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기준대로 삶을 살면 됩니다. 문제는 그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고 평가할 때 생깁니다.

오늘 우리는 고장 난 벽시계 이야기와 장자의 바닷새 이야기를 통해 삶은 한쪽만을 지향하려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갈등의 원인이 나만의 방식과 관점을 고집하기 때문일 수 있다는 개연성을 알아보았습니다. 여러분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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