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도서관이 역차별? - 여성전용공간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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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도서관이 역차별? - 여성전용공간의 필요성
  • 박교연
  • 승인 2021.12.1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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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 터너' 활동가

 

‘공간’은 종종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실재로 간주된다. 그러나 공간은 결코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이지 않다. 성별, 계급 및 인종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관계가 공간을 재구성한다. 미국 리즈대학의 발렌타인 교수는 “공간과 사회가 단순하게 상호작용하거나 서로를 반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적으로 구축된다.”고 공간의 사회성을 정의한다.

발렌타인 교수는 공적 공간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폭력에 대한 공포를 예로 들며 ‘공간 정체성의 변화’를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여성들이 거리에서 느끼는 범죄에 대한 공포는 밤에 더욱 증가하는데, 이는 어두워진 이후에는 거리를 사용하는 방식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낮에는 학교나 일터 등에 가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에 의해 점유되지만, 밤에는 행인의 수가 적어지고 ‘낯선 남성’에 의해 거리가 지배된다. 결국 밤거리는 여성에게 두려움의 온상이 된다.

이에 서울시는 2007년 일상적 삶의 공간에서 여성들이 배제되고 차별받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울시는 공적 공간에서의 여성 사용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특히 거리, 교통기관, 도심공원 사용에 대한 여성들의 안전문제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계획했다. 여성이 불편을 겪는 화장실, 주차장, 길, 택시, 아파트 조성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 기준을 통과한 지역에 대해서는 인증을 하여 공공시설의 여성친화성을 증진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외려 여성전용공간이 역차별이라며 이를 해체하려하고 있다. 지난 7월 인권위는 제천여성도서관에 남성도 출입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제천여성도서관은 1994년 고(故) 김학임씨가 여성으로 살면서 느낀 교육기회 차별을 해소하기위해 삯바느질로 모은 전 재산 11억원을 기부하면서 세워졌다. 하지만 한 20대 남성이 “공공도서관이 여성전용으로 운영되는 것은 역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자 곧바로 시정명령이 내려왔다. 제천시는 이건 기증자의 뜻이며 인근 1.5㎞ 내에 시립도서관이 있기에 차별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성전용공간이 존재 자체만으로 역차별이라는 생각은 제천도서관만의 일이 아니다. 인권위는 같은 달인 7월에 경기 안산 단원구 선부동 행복주택 입주자 지원 자격을 여성으로 한정한 것에 대해서도 시정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선부동 행복주택은 미혼 여성 노동자를 위한 임대 아파트인 ‘한마음아파트’를 재건축한 건물로, 여성한정 지원 자격은 기존의 입주하고 있었던 여성 노동자의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더군다나 주거문제는 여성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로, 여성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지어진 시설을 무분별하게 해체하는 건 여성안전의 위협이 될 수 있다.

 

지난 달 11월에는 성남시에서 16년 동안 운영해온 여성전용 임대아파트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기에 성별제한을 폐지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왔다. 현재까지 880명가량이 해당 청원에 동의한 것으로 보아 해당 청원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언론사에서는 앞 다투어 이를 기사로 다루었다. 물론 대부분의 기사는 남성 역차별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되었고, 여성전용공간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에 대한 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까지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과 혐오범죄 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9월 내놓은 ‘2020년 성별 임금 격차’ 자료에 따르면, 총 2,149개 상장법인 전체 근로자 중 남성 1인당 평균임금은 7,980만원이고, 여성은 5,110만원에 그쳤다.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는 2,870만원으로 무려 35.9%에 달한다. 그러므로 이전보다 경제적 자립을 이루는 여성의 수가 늘어났다는 것에만 집중하여 여성의 약자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결코 평등이 아니다.

2011년 여성신문에 게재된 ‘도시 공간에서 여성의 생활환경과 관련된 전반적인 안전 상태에 대한 연구’를 보면, 여성 응답자의 경우 ‘지하 주차장이나 으슥한 곳에 혼자 있는 것이 두렵다’는 문항이 평균 3.97점을 받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뒤이어 ‘평소 밤늦게 외출할 때 혼자 다니기 무섭다’(3.85점), ‘가로등 조명이 어두워서 심야에 다니기가 꺼려진다’(3.72점) 순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장미혜 연구원은 “전반적으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생활환경의 안전 상태와 관련한 문제를 더 높게 인식하는 편이었다.”고 이를 분석했다. 또한, 2016년 통계청 <사회 안전 성별인식도>를 보아도 사회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여성(50.9%)이 남성(40.1%)보다 10.8% 이상 높았다.

이를 미루어볼 때 여성전용공간은 여성의 신체적, 경제적인 약자성을 보완하기 위한 일환으로 시행된 정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여성전용공간이 모든 여성혐오범죄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려 이 공간을 표적으로 삼는 범죄가 발생할 수 가능성도 있다. 또한, 제도적 허점을 노려 이를 악용하는 사람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여성전용공간의 실효성을 다투기에 앞서 이 제도가 생긴 사회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만일 이 사회가 여성에게 충분히 안전했다면, 일상적 삶의 공간에서 여성이 배제되고 차별받지 않았더라면 이와 같은 여성전용정책은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 논의해야 하는 건 여성전용공간의 역차별이 아니라, 여성전용공간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사회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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