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지역 공간이 예술의 장소로 - 백승기의 인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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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지역 공간이 예술의 장소로 - 백승기의 인천 영화들
  • 장한섬
  • 승인 2021.12.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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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영화로 읽다]
⑨ 오늘도 평화로운 : 장소의 재발견과 일상의 재미

 

영화 [오늘도 평화로운]의 주인공
영화 [오늘도 평화로운]의 주인공 - 신포시장 옥상의 결투

[오늘도 평화로운](2019)은 인천에서 성장하고 인천에서 영화를 제작한 백승기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신포시장 ‘옥상’ 결투 장면이다. - 영화 [올드보이]의 길고 어두운 복도 장도리씬과 대비되며, 영화 [모던타임즈]의 컨베이어벨트에서 나사를 조이는 채플린의 강박증에 주성치 영화 [쿵푸허슬] 그리고 원빈의 [아저씨]가 융합하여 파괴 대신 파격을 보여주는 혼종(混種)의 화합물로 연출된다.

[오늘도 평화로운]의 전개는 롤러코스터처럼 초반은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지만, 중반부터 경쾌하게 비틀며 달린다. 인천 중구 신포동과 북성동(차이나타운), 동구 배다리의 구체적인 장소가 중국이라는 이질적인 추상적인 공간으로 확장되지만, 영화 전개는 롤러코스터처럼 수직 상승하며 360도 회전과 함께 수평적 질주를 꽈배기처럼 비틀며 구체적 맥락과 추상적 기호로 재미와 의미를 직조한다. 나아가 영화 속에는 우리가 아는 많은 영화가 차용되지만, 패러디도 아니고 오마주도 아닌 백승기 감독의 언어로 증식한다. 특히 신포시장 ‘옥상’은 지상의 구체적인 장소(신포동 골목)를 천상의 낯선 공간으로 상승ㆍ확장시키며, 영화 [올드보이]의 어두운 복도(홈 패인 공간)와 영화 [매드맥스]의 광활한 사막(매끄러운 공간)을 결합한 화합물로 배치된다.

 

백승기 감독의 영화들
백승기 감독의 영화들

 

백승기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숫호구](2012)는 수평적 흐름과 공시성(共時性) 위에 인천 동구 ‘배다리’라는 구체적인 장소의 현안(재개발) 속에서 주인공 개인 문제가 함께 전개된다. 두 번째 장편영화 [시발,놈 : 인류의 시작](2016)과 네 번째 장편영화 [인천스텔라](2021)는 수직적 부감과 통시성(通時性)으로 인류의 시초와 지구의 미래를 보여주고자 시간대를 과거와 미래로 확장시킨다.

세 번째 영화 [오늘도 평화로운]은 위 영화들 속에 위치하고, 지역의 특수성(개별성)을 일상의 재미와 장소의 재발견으로 조명했다. 그러나 후속작 [인천스텔라]는 이상의 의미와 세계(world)의 공간을 보편성으로 창조하지 못하고, 행성이라는 지구(earth) 안에서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간 [시발,놈]의 경우와 반대로, 지구 밖 미래라는 다른 행성으로 이동시켜 현실의 관계망이 다원성으로 확장하는 대신 다른 차원에서 옛 관계로 퇴행하며 축소된 비현실적인 세계를 그린다(영화 마지막 장면은 인류 문명의 사회적 공간이 아닌 자연적 공간인 해변으로, 관계의 새로운 시작보다 종착지에서 해후로 보인다). 그로인해 백승기 영화의 패턴은 인천의 구체적인 장소와 추상적인 시간의 확장이라는 구조 속에서 현실의 보편성을 담는 세계 대신 특수성이 담긴 지역이야기로 국한되면서 국가 차원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부재한다.

 

도식-오늘도 평화로운
도식-오늘도 평화로운

 

그래서 백승기 감독의 영화는 인천이라는 지역의 장소와 인물의 개성을 보여주긴 하지만, 보편적인 세계로 확장하지 못하고, 이는 감독 개인의 한계라기보다는 인천이라는 도시의 미학과 교육 철학의 부제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인천은 분단국가의 반공도시(영화 [인천상륙작전]의 공간)이자 조세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노동도시로 계급, 환경, 젠더 등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값싼 상품과 인력을 공급하는 ‘공장’으로 작동하면서 성찰과 비판능력을 상실했다. 도시미학과 교육철학은 부동산(인천의 강남화)과 대학입시(서울입성)의 관성을 더욱 고착시키며 다원성이 살아 숨 쉬는 공론영역까지 축소시켰다.

백승기 감독의 영화는 공론영역으로 확장되는 사회문제나 세대 간 갈등 혹은 가치관의 충돌은 없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를 통하여 일상의 공간이 예술의 장소로 탈바꿈하고, 일상의 반복적인 지루함이 전복적인 서사로 의미있는 생활을 꿈꾸게 한다. 이는 산업화와 민주화로 얼룩진 현실 속 성찰과 비판 대신 상상과 비약으로 새로운 세계를 그리고자 하는 건강한 욕망을 지역에 자양분으로 공급하며 지역의 시각과 언어를 창조하는 행위이다. 무엇보다 지역주민이 구경꾼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와 후원자로 함께 행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백승기 감독의 영화는 극장 안 스크린보다 극장 밖 현장에서 공장처럼 작동하는 인천의 공론영역을 광장으로 확장하는 난장(亂場)으로 지역에서 호흡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천, 영화로 읽다 (연재)

① 들어가는 말 : 인천 없는 인천영화제(10/22)

② 북경반점 : 가부장을 위한 디즈니랜드(10/29)

③ 파이란 : 인천바다의 탁함과 동해바다의 색조(11/5)

④ 고양이를 부탁해 : 인천여상 소녀들의 표류기(11/12)

⑤ 슈퍼스타 감사용 : 함께 시작할 줄 아는 용기(11/19)

⑥ 천하장사 마돈나 : 프로씨름단 해체기와 노동자 아버지의 소멸(11/26)

⑦ 차이나타운 : 신자유주의 속 가족의 재편(12/3)

⑧ 인천상륙작전 : 반공주의의 (재)생산기지 인천(12/10)

⑨ 오늘도 평화로운 : 장소의 재발견과 일상의 재미(12/17)

⑩ 맺음말 : 인천, 영화롭다(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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