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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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 박상희
  • 승인 2021.12.20 09: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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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읽는 도시, 인천]
(24- 끝) 성탄절 예배당 눈길 위에서

 

박상희_답동 성당_31x23cm_종이 위에 수채_2021
박상희_답동 성당_31x23cm_종이 위에 수채_2021

 

송림동 유년시절에는 크리스마스 이브날이 무척이나 기다려졌습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탐구생활 방학숙제를 하며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드는 일도 좋았지만, 초등학교 때까지 부모님은 우리 형제들이 자는 머리맡에 산타의 선물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성탄절 선물이라야 학용품이나 간식 정도였지만, 아직까지도 8살 때 받았던 분홍색 플라스틱 필통은 기억 속에 행복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한가지 기다려지는 성탄절의 행사라고 한다면 부모님이 다니시던 내동 내리교회 성도들이 새벽에 문 앞에서 성탄송을 불러주신 일입니다. 차디찬 새벽공기를 뚫고 깜깜한 새벽에 어떻게 모여서 노래를 하는 지 그때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성가대원들이 성탄절 새벽마다 하는 봉사라는 걸 알고 참 감사한 일로 추억합니다.  

송림동에서 내리교회를 올라가는 길은 동인천역 지하차도를 지나야 했는데 이곳에는 아버지의 이종 사촌형제 기모네가 속옷가게를 운영하셨습니다. 상호도 ‘기모네’로 인심 좋으신 아주머니는 주일이면 웃는 낯으로 아는 체를 해 주시며 크리스마스나 명절에는 양말이나 속옷 등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큰 길 건너 용동을 지날 때면 전날 늦게까지 영업했던 술집들이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환한 대낮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클럽의 어두컴컴한 홀에서는 마대를 들고 나오는 난장이 아저씨들이 청소며 홀정리를 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교회 계단을 올라 들어간 예배당은 이런 세속적인 풍경과는 다른 아름다운 찬송가와 목사님의 끊임없는 축복의 기도가 울려 퍼졌고 오르간 소리와 함께 성탄절의 교회는 특별히 더 꽉 차게 성스러웠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는 몇몇 친구들이 답동 성당에서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답동성당은 결혼식 장소로 매우 인기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최근 답동성당은 역사와 문화, 관광 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하느라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12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양식 근대 건축물인 답동성당은 근대 개항기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근대문화 유산으로 사적 제28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반가운 일은 이 조성사업으로 답동성당을 가리고 있던 건축물을 철거해 신포시장 쪽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성당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하니 내년 개축이 기대가 됩니다.

 

박상희_공사 후 답동 성당_종이 위 펜_31x23cm_2021
박상희_공사 후 답동 성당 도면_종이 위 펜_31x23cm_2021

 

그러나 이렇게 멋지고 고풍스러운 답동성당은 각종 집회가 치러지는 장소였을 뿐 만 아니라, 시위대와 수배자의 도피처가 되어 주기도 했던 인천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습니다. 1975년 인혁당 사건(1974년 내란음모와 내란선동으로 8명을 기소하고 사형을 내린 사건) 관련자들을 구명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다 결국에는 추방까지 당한 시노트(진필세) 신부 역시 답동성당의 보좌신부님 이셨습니다. 필자는 중학생 때 친구들과 답동 성당 앞을 지나다가 사복 경찰에게 붙잡혀 가방 수색과 검문을 당했던 일도 있었던 만큼 7~80년대 성당 부근은 집회 무리와 그들을 쫓는 경찰들로 어수선하고 삼엄했던 곳이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회의 부조리 속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고통을 외면하는 차가운 현실 속에 답동 성당은 그들에게 커다란 울타리가 되어 한결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거두고 계십니다. 

한해가 저무는 이 시기에 종교의 유무와 관계없이 힘없고 소외된 삶이 관심과 사랑으로 사라지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각 나라의 전염병으로 인한 슬픔을 견딜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생겨나기를, 강보에 싸여 마구간에서 약자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하늘에 영광, 땅에 임한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2021.12.19 글 그림 박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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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2021-12-20 23:40:14
아~ 그러게요 새해복많이 받으십시요.
새해에도 그림으로 인천을 담아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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