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인천을 넘어 인천 보기 - 정체성과 자부심을 발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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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인천을 넘어 인천 보기 - 정체성과 자부심을 발견하는 것
  • 장한섬
  • 승인 2021.12.2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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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영화로 읽다]
⑩ 맺음말 : 인천, 영화롭다 - 장한섬 / 홍예門문화연구소 대표
인천역
(下)인천역

 

인천의 기준은 어디인가?

“하(下)인천 가나요?”

“동인천이요?”

“상(上)인천 말고 하(下)인천?”

국철 1호선을 타면 가끔 듣는 말이다. 경인선 서쪽에 있는 동인천역은 어떻게 동(東)인천이 되었고, 그 옆에 있는 인천역은 어떻게 '서울 아래' 하(下)인천이 되었나?

 

인천의 인물?

2000년대 초반까지 인천 청소년에게 인천을 대표하는 인물 1위는 맥아더였다. 동상 건립은 보통 죽은 위인을 위해서 하는데, 맥아더 ‘동상’은 1957년에 세워졌고, 맥아더 ‘장군’은 1964년 사망한다. 근래 인천 지역사회에서 조봉암 동상 건립 논의가 있다. 그러나 ‘맥아더장군동상보존연대’는 조봉암 동상 건립반대를 외친다. 인천의 청소년들은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고, 조봉암이 누구인지는 더더욱 관심이 없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이후 생긴 ‘맥아더 길’이 사라지자 ‘백범 청년 김구 역사거리’가 인천 중구에 조성되었다. 반공영웅에서 민족영웅으로 인천시민의 표상이 바뀌었다.

2021년 인천문화재단 우현예술상을 젊은 극단 ‘앤드씨어터’가 수상했다. 인천시민 중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 1905~1944)과 앤드씨어터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300만 명 중 300명은 될까?

 

인천대교 조감도
인천대교 조감도

 

인천의 랜드마크

『굿모닝인천』 2021년 1월호 표지는 ‘인천대교(Incheon Bridge, 仁川大橋)’가 장식했다. ‘인천교(仁川橋)’는 인천에서 사라진 다리가 되면서 인천시민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지만, 인천대교 이미지는 인천 곳곳에서 보여주면서 인천 랜드마크로 부각되었다. 그런데 인천대교의 주인은 인천시민이 아닌 대기업 소유물이다. 그리고 명칭과 다르게 인천대교는 (부산 영도대교와 달리) 인천의 문화와 역사 등 인천의 정체성을 연결하고 표상하는 교량이 아니라 제2의 경인고속도로와 연결되어 인천을 빨리 밟고 지나가는 ‘경인대교’로 작동한다. 

 

마계인천을 떠나자

인천 청(소)년에게 인천은 마계인천으로 불리기도 한다. 탈(脫)인천-in서울이 지상과제이다. 졸업식 무렵이면 고등학교 입구에는 ‘SKY캐슬’ 입성(入城)을 축하는 현수막이 걸린다. 좋은 학교로 진학하는 것은 축하할 일이고,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존중받아야 하고 당연한 권리이다. 문제는 지역 공교육이 지역 인재를 키우기보다 중앙집권 시스템을 강화하는 명품교육(제조업 방식)으로 인천의 강남화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인천 대표도서관 미추홀도서관은 미추홀구에 없고 남동구에 있다. 인천 부평구청 옆에 있는 북구도서관의 북구(北歐)는 “북구라파(‘북유럽’의 음역어)”를 뜻한다. 下인천과 함께 북구는 어디인가?(1995년 경인고속도로를 기준으로 인천 북구는 계양구와 부평구로 분구하였다.)

인천시청과 인천시교육청은 지역의 정체성과 공공성 나아가 미래를 고민하는 흔적은 없어 보인다(서울 강남과 연결되는 GTX 건설과 제물포고의 송도 이전을 위해서 노력했다). 이러한 관성은 대학입시가 끝나고 졸업 무렵 학교 교문을 아래와 같은 현수막으로 장식하며, 인천‘명품’도시라는 미명 하에 서울‘납품’도시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인일여고&현수막
인일여자고등학교 입구와 신사임당 동상 (ⓒ장한섬)

 

인천, 반공도시에서 공공도시로 가는 길

인천을 정의내려왔던 것은 인천의 시각과 언어가 아니라 중앙집권의 시각(下인천)과 냉전논리의 언어(맥아더-반공)이고, 인천의 비전은 서울입성을 위한 인천상륙작전이다. 그리고 인천의 존재 이유는 경인선을 통하여 물품과 인력을 빠르고 값싸게 서울로 진상(進上)하는 것이다. 그래서 명품도시의 진짜 정체성은 납품도시다. 이를 지속 확대한 것이 인천의 정치문화와 교육행정이다. 대학입시▶서울입성▶중앙관료▶지방파견▶금의환향 순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면 도시계획과 개발공사에 앞장서며 장소의 기억보다 용적률과 평당 시세를 우선시하고, 인천의 정치-경제를 서울의 권력과 자본을 위해서 작동하게 만든다. 그래야 다시 중앙으로 진출하는 발판 즉, 인천상륙작전을 성공리에 할 수 있다. 그 결과 인천시민은 장소의 기억을 통하여 세대와 세대 간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2012런던올림픽과 2014인천아시아게임 개막식을 비교해 보라).

 

▲경-인선과 반공주의에 종속된 인천의 세계관
▲경-인선과 반공주의에 종속된 인천의 세계관

 

이를 반증하는 것이 인천에서 일어난 가장 큰 참사인 인현동 화재참사다(1999). 세월호 참사(2014) 이전 가장 큰 참사였다. 60명 가까운 청소년들이 사망했고, 90명 가까운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인천의 행정과 교육은 1999인현동 화재참사를 공적기억에서 지워버렸다. 이러한 집단기억의 망각은 지역의 집단지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게 했고, 지역의 인재를 키우는 대신 중앙집권의 관료만을 양성하며 내부 식민지를 강화했다.

최근에는 애관극장과 미림극장 그리고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지키고자 인천시민사회가 노력하고 있다. 인천의 문화생태계와 노동인권을 위해서 기억하고 보전해야 할 곳이지만, 인천시민의 무관심 속에서 사라질 위기에 직면했다. 이는 인천의 고건축물의 위기가 아닌 인천의 자치와 분권의 위기이고, 정확히는 인천의 정치와 교육이 낳은 위기이자 갈등이다.

 

인천의 영화로움은 무엇인가?

영국이 대영제국으로 전성기를 누릴 무렵 애덤 스미스(1723~1790)의 『국부론』이 출간된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1776) 미국독립혁명이 일어나고, 영국 중심의 세계관에 균열이 생기자, 12년 후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은 『로마제국쇠망사』를 출간하며 영국의 비전과 지속가능성을 로마제국에서 발견한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몰락을 앞당긴 원인은 조상의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려는 편협한 정책에 있었다. 하지만 웅대한 뜻을 품은 로마는 달랐다. 그들은 야망 앞에서 허영을 버렸다. 노예나 이방인은 혹은 적이나 야만족에게도 장점과 미덕이 있으면 활용하는 것이 현명하며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입이 마르고 닳도록 찬양하는 다양성과 다원성이다. 인천에는 토박이가 없어서 구심력이 약한 뜨내기 도시라는 자조가 심하다. 그러나 제국의 도시인 뉴욕과 런던은 토박이들의 성(城)이 아니다. 개방성으로 인한 다양성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융합이 힘의 원천이다. 인천은 이러한 가능성을 품은 도시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을 위해서는 서울종속성‘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이다.

개인적으로 인천에 산다는 자부심은 간짜장 위에 오른 계란후라이를 마주할 때 발견한다. 예전에는 동인천 ‘심지음악감상실’과 지하상가 음반가게 ‘지성’을 들먹이며 MTV와 CD 1세대를 자부하며 진정한 문화시민임을 스스로 인정했지만, 지역의 집단기억이 소멸되면서 꼰대가 되어가는 현실과 마주한다. 그런데 얼마 전 가끔 들리는 동네 카페에서 작은 전시를 보았다. 작은 액자 속 그림에는 영화 포스터들이 즐비한 게시판 앞에 아빠와 딸이 나란히 서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인천 영화관 이름이 먼저 들어왔다. 진짜, “인천은 영화롭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새로운 자부심을 발견했다.

 

영화게시판-윤민아
영화게시판-윤민아

 

어릴 적 우리 동네엔 영화관들이 정말 많았다.

오성극장이 있었고, 인형극장, 현대극장, 자유극장이 있었다.

지금도 있는 미림극장, 애관극장은

그중에서도 가장 사람이 많고 재밌는 영화를 많이 상영했다.

집 앞엔 이번 달 상영하는 영화 포스터가 붙은 게시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땐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었고,

핸드폰도 전화 용도로만 사용하던 시절이라 집 앞 영화 상영 게시판을

통해서야 어떤 영화가 나오는지, 그리고 영화를 보려면 어떤 극장에 가야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동인천 근처에 산다는 것이,

참,

자랑스럽고 근사한 일이었다.

                               - 윤민아 『빈곳을 채우다』 中

 

인천, 영화로 읽다 (연재)

① 들어가는 말 : 인천 없는 인천영화제(10/22)

② 북경반점 : 가부장을 위한 디즈니랜드(10/29)

③ 파이란 : 인천바다의 탁함과 동해바다의 색조(11/5)

④ 고양이를 부탁해 : 인천여상 소녀들의 표류기(11/12)

⑤ 슈퍼스타 감사용 : 함께 시작할 줄 아는 용기(11/19)

⑥ 천하장사 마돈나 : 프로씨름단 해체기와 노동자 아버지의 소멸(11/26)

⑦ 차이나타운 : 신자유주의 속 가족의 재편(12/3)

⑧ 인천상륙작전 : 반공주의의 (재)생산기지 인천(12/10)

⑨ 오늘도 평화로운 : 장소의 재발견과 일상의 재미(12/17)

⑩ 맺음말 : 인천, 영화롭다(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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