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울음소리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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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울음소리를 생각하면서
  • 최종규
  • 승인 2011.07.13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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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좋다] 패트리샤 J.윈·캐롤라인 아놀드, 《새, 하늘을 나는 놀라운 생명체》

 수많은 멧새 가운데 뻐꾸기는 울음소리를 금세 누구나 알아챕니다. 네 살 아이도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리면 “응, 뻐꾹 뻐꾹 뻐꾸기가 우네.” 하고 말합니다. 뻐꾸기 울음소리는 사람 귀로 듣기에 무척 높고 맑으며 굵습니다.

 뻐꾸기 울음소리를 깊은 밤과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에 들으면서 늘 곰곰이 생각합니다. 뻐꾸기라는 새는 스스로 둥지를 틀어 알을 까서 보듬지 못합니다. 일부러 다른 둥지로 파고들어 알을 낳아 자라도록 하는지, 아니면 다른 새를 밀어내려고 이렇게 하는지 알 노릇이 없어요. 다만, 뻐꾸기 한삶을 헤아린다면, 뻐꾸기는 다른 새 알을 죽이면서 제 알을 살리기 때문에 몹시 괘씸하다고 느낍니다. 이 괘씸한 새인데, 울음소리는 맑으면서 곱구나 싶으니 얄궂다고 느낍니다.

 뻐꾸기라는 새는 도시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뻐꾸기는 다른 여느 새가 살아가는 곳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스스로 둥지를 틀지 못할 뿐 아니라 새끼를 돌보거나 건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뻐꾸기는 ‘새끼를 알뜰히 사랑하면서 돌보아 날갯짓하기를 가르치는 어미’ 새들이 있어야 비로소 살아남습니다.

 생각해 보면, 뻐꾸기는 무척 괘씸하달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불쌍하달 수 있습니다. 다른 여느 새는 스스로 깐 새끼들을 스스로 낮밤 가리지 않으면서 아끼거나 돌보거나 품에 안습니다. 다른 여느 새는 저희 새끼를 먹여살리려고 저희는 굶으면서 새끼를 먹입니다. 다른 여느 새는 새끼를 낳아 키우는 나날이 얼마나 고되면서 보람차고, 얼마나 힘들면서 아름다운가를 몸으로 느낍니다. 이와 달리 뻐꾸기는 어미새이든 새끼새이든 힘들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모릅니다. 고되면서 보람찬 삶을 몰라요.

 뻐꾸기 울음소리가 왜 무척 높고 맑으면서 굵은지는 모릅니다. 저는 새를 살피는 학자나 연구자나 전문가가 아니기도 하지만, 뻐꾸기 한삶을 돌아볼 만큼 느긋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네 살 아이와 갓난쟁이를 돌보느라 눈코 빠지는 나날이기 때문에, 숲마실을 하며 숲새를 살필 겨를이 없어요.

 그저, 갓난쟁이를 안고 어르면서 생각해 봅니다. 네 살 아이를 토닥이면서 헤아려 봅니다. 이 뻐꾸기들 울음소리는 제 어미를 물살에 떠내려 보내고 만 청개구리하고 매한가지는 아닐까 하고 가늠해 봅니다. 오직 사람 눈으로 살피는 이야기인데, 뻐꾸기 울음소리가 사람 귀에 퍽 예쁘게 들리는 까닭은 틀림없이 무언가 있으리라 느껴요.


.. 오두본은 숲속에 머물면서 직접 관찰한 새들을 그렸습니다. 화가 스스로 야생의 자연을 보고 그린 그림들은 그 당시 아주 드물었으므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오두본은 새의 습성을 자세하게 묘사한 일종의 조류 생태 보고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  (3쪽)


 그림책 《새, 하늘을 나는 놀라운 생명체》(길벗어린이,2005)를 펼칩니다. 책이름 그대로 《새, 하늘을 나는 놀라운 생명체》는 새가 ‘하늘을 어떻게 날’며 ‘얼마나 놀라운 목숨붙이’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새가 하늘을 날 수 있는 몸 얼거리가 어떠한가를 어린이 눈높이에서 낱낱이 밝히고, 새라는 목숨은 얼마나 놀라운가를 여러 갈래에서 곰곰이 따집니다.

 하늘을 날 수 없는 사람 눈길에서 바라보자면, 이 그림책 하나를 펼치는 동안 새라는 목숨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깨달을 만합니다. 하늘을 훨훨 나는 새들이 얼마나 홀가분할까 하고 꿈꾸도록 도울 만합니다. 빈틈없이 그린 그림이고, 알뜰살뜰 적바림한 글입니다.

 한 장 두 장 살피면서 한국에서는 아직 이만 한 그림책이 나오기 힘들겠다고 느낍니다. 한국땅 한국새를 바탕으로 ‘새는 어떻게 날고, 새는 얼마나 놀라운 목숨붙이닌가’를 보여주는 그림책이 나오기란 몹시 힘들겠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끝없이 시골과 자연을 밀어내는 막개발이 이루어집니다. 한국에서는 그림쟁이나 글쟁이가 시골 살림살이를 조용히 일구면서 새를 사랑하기에는 너무 힘겨운 나날입니다. 새 한 마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살가이 담은 그림책을 엮더라도 한국사람은 이러한 그림책을 느긋하게 돌아보기 퍽 어렵습니다. 먹고살기에 바쁠 뿐더러 온통 도시에 몰린 채 살아갑니다. 자연하고는 등을 돌리면서 물질문명에 젖어들기만 합니다. 아이들이 좋은 생태자연 그림책을 읽더라도 이윽고 입시지옥에 파묻히면서 시험문제 풀이에만 얽매입니다. 중학교에 들 푸름이 나이부터 아이들 머리에는 오직 ‘도시·문명·물질·돈·기계’만 자리잡습니다. 그림책 《새, 하늘을 나는 놀라운 생명체》는 꽤 훌륭하지만, 이 그림책이 어느 대목에서 얼마나 훌륭한가를 알아챌 만한 어버이는 한국에 꽤 드물 수밖에 없구나 싶어요.


.. 하늘을 날 수 있었던 까닭에 새들은 지구상 어느 곳에서나 살 수 있게 되었지요. 오늘날 지구상에는 1만여 종의 새가 있습니다. 새들은 극지방의 툰드라 지역에서부터 열대 지방의 밀림에 이르기까지, 또 시골의 논과 밭에서 복잡한 도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집을 짓고 삽니다 ..  (31쪽)


 다시금 곰곰이 생각합니다. 《새, 하늘을 나는 놀라운 생명체》라는 그림책은 새가 하늘을 날 수 있는 얼거리를 살핀 ‘과학지식 그림책’입니다. 생태환경 그림책은 아니고 과학지식 그림책이에요. 새를 과학지식 눈길로 바라보면서 찬찬히 뜯어본 그림책입니다. 그림책 한 권으로 바라볼 때에 무척 잘 빚은 작품이요, 새를 살피는 좋은 길잡이책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내 아이한테 이 그림책을 읽히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이 그림책을 읽힐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그림책을 읽는 내내 ‘새를 만날’ 수는 없어요. 새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날갯짓을 좋아하며, 하늘을 날 때에 어떤 느낌이나 생각일는지는 조금도 밝히지 못합니다. 새가 하늘로 날아오를 때 느낌이랑 새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올 때 느낌이 어떠한가를 차분히 들려주지 못합니다. 어미새가 새끼새한테 먹이를 줄 때에 어떤 날개 모습이요, 새끼새는 날개가 어떻게 돋아 어떻게 단단해지는가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어미새가 새끼새한테 날갯짓을 가르치는 이야기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새끼새가 얼마나 힘든 나날을 겪으면서 날갯짓을 배우고, 날갯짓을 배운 다음 어미새하고 어떻게 헤어지는가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젊은 새와 늙은 새 날갯짓이 얼마나 다른가를 밝히지 못합니다. 배고플 때하고 배부플 때 날갯짓이 어떠한지, 오래도록 날아갈 때 날개가 어느 만큼 결리거나 저린지를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날개 꺾이거나 깃털 빠진 새는 날갯짓이 어떠하고, 제대로 못 나는 새는 어떻게 삶을 일구는지를 보여주지 못해요.

 두 아이 어버이로서 생각합니다. ‘하늘을 나는 얼거리’를 보여주는 일은 그다지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늘을 못 날고 새는 하늘을 날거든요. 하늘을 나는 얼거리를 배우거나 알 수 있대서 하늘을 날 수는 없는 사람입니다. 새가 하늘을 어떻게 나는가를 안대서 ‘새를 안다’ 할 수 없어요. ‘새가 나는 일’을 조금 돌아본다고만 할 수 있습니다.

 과학지식을 다루든 생태환경을 다루든 더 깊이 한결 넓게 헤아려 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시사상식을 배우도록 하는 책이 아니라, 아이들이 저희 삶을 사랑하면서 아낄 수 있는 길을 여는 책이 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새를 들여다보면서 새를 깊이 사랑하도록 돕는 책으로 엮으면 좋겠어요. 새가 날갯짓하는 삶을 살피면서 새가 홀가분하게 날갯짓하는 보금자리를 조용히 일구며 보살필 수 있게끔 곁에서 좋은 삶동무로 이웃하는 마음을 북돋우는 책으로 빚으면 좋겠습니다.

― 새, 하늘을 나는 놀라운 생명체 (패트리샤 J.윈 그림,캐롤라인 아놀드 글,최종윤 옮김,길벗어린이 펴냄,2005.2.14./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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