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 태몽을 대신 꿔준 장봉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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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태몽을 대신 꿔준 장봉댁
  • 문미정
  • 승인 2022.02.17 0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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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도에서 아이들과 생활하기](33)
"꽃지 2세들은 오고 바이러스들은 가라!"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 부부가 인천 앞바다 장봉도로 이사하여 두 아이를 키웁니다. 이들 가족이 작은 섬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인천in]에 솔직하게 풀어 놓습니다. 섬마을 이야기와 섬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일상을 이야기로 만들어 갑니다. 아내 문미정은 장봉도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가끔 글을 쓰고, 남편 송석영은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집 동물들의 여름 모습
우리집 동물들의 여름 모습

꿈을 꾸었다. 집에서 키우는 하얀색 토끼가 6마리의 새하얀 아기토끼를 낳은 것이다. 사실 우리 토끼는 숫컷이라 새끼를 낳을 수가 없는데 이렇게 새끼를 낳다니 신기해하면서 꿈에서 깼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또 꿈을 꾸었다. 우리 집에 있는 유산양 부부 꽃지와 동지가 송아지 색의 황금 아기 염소를 각각 네 마리씩 출산한 것이다. 심지어 한 마리는 숫컷인데 말이다. 나는 새끼들 키울 우리를 새로 지어야 한다며 새 집을 물색하고 있는 그런 꿈을 꾸었다. 황금빛 아기 염소의 색이 너무 예뻤고 기분 좋은 꿈이었다.

이렇게 꿈을 연속으로 두 번을 꾸니 태몽 같았다. 순간 꽃지? 하는 생각이 들어 주변에 이야기를 하니 꽃지가 아니라 내가 셋째 가진 것 아니냐며 축하한다고들 하였다. 하지만 나는 임신 가능성이 없고 주변을 생각해 보니 대신 태몽을 꾸어 줄만 한 가까운 지인도 없었거니와 사람의 태몽 치고는 동물이 너무 많이 출현했다.

병아리와 닭이 바글바글한 우리집
병아리와 닭이 바글바글한 우리집

그리고 나서 일주일 뒤, 또 꿈을 꾸었다. 가족들을 차에 태우고 장봉도를 나가려고 차를 돌리는데, 핸들을 왼쪽으로 틀자마자 닭과 오리와 병아리들이 바글바글하게 보이는 꿈이었다. 색깔도 하얀색과 노란색 밝은색들이었다. 기분도 좋은 그런 꿈이었다. 이쯤되니 정말 태몽이 확실했다. 진짜 꽃지가 임신했나? 사실 이제 동지가 어느 정도 자랐기 때문에 꽃지가 수태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꽃지와 동지의 여름 모습
꽃지와 동지의 여름 모습

그날부터 꽃지를 유심히 관찰했다. 하지만 별로 다른 걸 느끼지는 못했다. 배가 부른 것도 아니고 밥도 잘 먹고 특별히 달라진 것이 보이지 않았다. 하루는 시간을 좀 내어 가까이 가서 만져보고 시간을 좀 같이 보냈다.

달라진 모습이 관찰되었다. 숫컷 동지가 꽃지에게 하던 교미 행위가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숫컷 동지는 사람만 봐도 교미 행위를 하며 안아달라고 난리를 부리는데 유독 꽃지에게 만은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가을 내 풍성귀들을 먹으며 잘 자라준 유산양 부부
가을 내 풍성귀들을 먹으며 잘 자라준 유산양 부부

그리고 또 다른 징후는 꽃지가 자신의 젖과 배를 못 만지게 했다. 다른 집과 달리 우리집은 항상 꽃지와 동지를 쓰다듬어 키웠기 때문에 서로 쓰다듬고 안는 것에 익숙하다. 심지어 젖을 만질 때는 젖짜는 자세를 만들어 주어 늘 신기했다. 그러데 그랬던 꽃지가 머리와 목 등은 쓰다듬게 하는데 유독 가슴과 배는 만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늘 우리와 함께 놀았던 꽃지
늘 우리와 함께 놀았던 꽃지

그리고 나서 한 달 반 쯤 지났을까? 나는 또 한 번의 꿈을 꾸었다. 오이와 애호박을 좋아하는 나는 해마다 오이와 호박을 심는데, 하우스 골조 아래 오이와 애호박 모종을 가득 심어 둔 꿈이었다. 아직 어린 모종이라 열매는 하나도 없었는데 딱 두 개의 열매가 눈에 확 띄었다. 하나는 둥근 애호박, 하나는 길다란 애호박 이었다. 이제는 나는 꽃지 뱃속에 쌍둥이가 들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기 염소 꽃지가 이렇게 어른이 되다니, 내 딸도 그렇게 되겠지?
아기 염소 꽃지가 이렇게 어른이 되다니, 내 딸도 그렇게 되겠지?

나는 귀농, 귀촌 까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혹시 반려동물 태몽을 대신 꿔주신 분들이 있는지? 다들 우스개 소리처럼 넘겼지만 어떤 분은 열대어가 새끼 낳던 날 태몽 비슷한 것을 꾼 분이 있다고도 얘기해 주셨다. 그렇게 조금은 말도 안되는 태몽 에피소드는 한 달을 지나 두 달이 되어 가고 있다.

워낙에 먹성이 좋은 숫컷 동지는 꽃지의 배보다 더 불렀고 꽃지 역시 여름 내내 사람들로부터 임신 했나봐요?” 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배 통통이들 인지라 도대체 임신을 했는지 안했는지 확실하지가 않았다. 그리고 초산은 배가 많이 부르지 않는다고 하니 더 티가 안난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가슴을 만져보라 하고 젖꼭지가 붉어졌는지 살펴보라 조언해주었다. 하지만 늘 피부가 발그스름하여 이전보다 붉어졌는지 어쨌는지 나는 통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좋아하는 사료를 잔뜩 주고 먹이에 정신 팔린 틈을 타서 살짝 만져보았다. 지난번엔 손도 못 대게 하더니 이번엔 좀 수월했다.

! 봉긋해져 있다! 임신이다!’

이로써 꽃지 임신설은 확실해졌다. 꿈을 기점으로 한다면 5월 중순이 예정일이다. 그 쯤되어 아기 유산양이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가 태어난다면? 게다가 암수가 태어난다면? 이건 정말 놀라울 자이다.

임신 2개월째인 꽃지와의 산책
임신 2개월째인 꽃지와의 산책

세상은 바쁘고 어지럽다. 내 일터도 그렇다. 하지만 이리 지구의 한편에서는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지쳐가고 있다. 꽃지의 2세들이 태어날 5월이 오면 서로가 왕래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즐길 수 있어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이번 봄바람은 꽃지 2세들은 데려오고, 바이러스들은 데려갔으면...

꽃지, 동지와 함께 희망이 넘치는 2022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꽃지, 동지와 함께 희망이 넘치는 2022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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