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의 통큰 주유소는 '부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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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의 통큰 주유소는 '부메랑'
  • 박병상
  • 승인 2011.07.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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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한 대형마트에서 선보인 피자가 인기몰이를 하자 경쟁 대형마트가 ‘통큰 치킨’을 내놓아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동네 치킨 가게들을 개점휴업으로 내몰았기 때문인데, 이어 등장한 ‘통큰’ 시리즈는 이제 대형마트들의 명실상부한 ‘미끼 상품’이 되었다. 다소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춘 어떤 상품에 현혹돼 찾아오는 고객이 늘어난다면 오히려 수익이 늘어날 거라는 논리, 다시 말해 당장 필요하지 않은 상품을 더불어 구입하도록 고객들을 공격적으로 유인한다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상혼이 미끼 상품에 깃들어 있다. 덕분에 주변 상가 이웃은 주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 터.

월급은 늘지 않았는데 물가가 오르면 직장인의 실질소득은 당연히 낮아진다. 그만큼 월급이 오르면 불만이 없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낮아진 실질소득으로 생활비에 압박을 받는 시민들은 대형마트의 통큰 시리즈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데, 화답한 걸까. 올봄 지식경제부 장관이 리터 당 76원이 싼 통큰 주유소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국제 유가 급등으로 국내 휘발유 가격이 치솟는 현실을 감안, 유가 안정을 위해 대형마트에 주유기 설치를 적극 유도할 계획이라고 국회에 보고한 것이다. 자동차 사용이 보편화한 세상에 휘발유는 필수인데, 가격을 낮추라고 아무리 압력과 사정을 해도 꿈쩍도 않는 정유회사 대신 정부는 통큰 주유소에 정책을 의뢰한 꼴이었다.

정부의 하소연이 시한부로 통했는지 오직 3개월 동안 리터 당 최대 100원 할인했던 주유소들이 예전 가격으로 돌아가는데, 그 즈음 한 중앙언론은 정부가 마트 주유소를 늘리겠다고 밝혔음에도 왜 통큰 주유소가 늘어나지 않는지, 개탄하고 나섰다.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으로 북적이는 대형마트 주유소가 현재 전국 10여 곳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혀를 차는 그 언론은 대형마트 역시 사업을 확장할 의지가 있는데, 고객을 위해 마진을 팍팍 줄이려는데, 주변 주유소 업자들의 반발로 영업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지자체들을 지탄했다. 영업허가를 내주지 않는 지자체를 고발한 한 대형마트는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속이 탄다고 눈물겨워한 그 언론은 시민들의 실질소득을 진정 걱정한 걸까. 그 언론의 사주와 그 대형마트 사주가 돈독한 인척 관계라는 사실이 새삼 상기되는 건 왜일까.

국제 원유의 가격이 오르자마자 주유소 기름값을 잽싸게 올리는 정유회사는 원유 가격이 일찌감치 내렸어도 낮아지는 소매가는 굼벵이 같기만 하다. 하지만 어디 정유회사만 그런가. 이윤을 밝히는 기업들 본색이 대개 그러하므로 자유 경쟁을 유도하는 자본주의 체제 사회에서 정부는 담합을 철저히 통제해야지 이윤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일이다. 분명 막대한 이윤을 남기는 기업일지라도 가격을 쉽게 낮추지 못하는 어떤 말 못할 이유는 있을 터. 그들에게 가격을 낮추라는 정부의 강압이나 읍소는 법률에 근거하지 않는 이상, 지속적인 약효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정부가 하도 떼를 쓰니 3달 동안 억지로 받아주었던 건데, 이제 운전자들이 아우성이다. 어떤 대형마트와 인척 관계를 가진 언론의 노심초사처럼 운전자 아우성에 대한 정부 대책이 이른바 ‘착한 기름’을 파는 통큰 주유소로 귀착된다면? 착한 기름값에 현혹된 운전자, 다시 말해 소비자인 시민들은 결국 부메랑을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기름값이 미국보다 비싼 이유는 모두 이야기하듯 물론 세금이다. 여러 국가들이 국경선을 맞대는 유럽처럼 시민을 생각하는 대중교통이나 자전거 위주 교통망을 먼저 확보하기보다 땅덩이가 광활한 미국처럼 자동차 없이 불편한 도시로 바꿔놓은 정부의 정책은 예서 따지지 말자. 다만 미국보다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게 기름값에 과다하게 붙은 세금은 아무래도 세수를 쉽게 확보하려는 정부의 발상이라고 많은 운전자들은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어떤가. 석유 매장량은 한정되어도 소비량이 무섭게 늘어나기만 하는 현실에서 국제 원유 시세는 오르기만 할 텐데, 부자 감세를 철회할 생각이 없는 현 정부는 기름에 붙인 세금을 줄일 생각도 없어 보인다. 이럴 때 경차로 바꾸거나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민들은 앞으로 널리 보급될지 모를 통큰 주유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축구전용경기장의 순조로운 완공과 운영을 위해 필수라는 대형마트를 왜 지역 상인들이 반대하는지,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어떨까.

대형마트에서 고객에게 내세우는 통큰 주유소의 착한 기름값은 다분히 미끼다. 출출할 때 들리는 구멍가게와 달리, 일부러 찾아가 가격표가 이웃의 소매점보다 저렴하게 붙은 물건을 잔뜩 구입하려고 찾아가는 대형마트는 보통 자동차를 몰고 간다. 그래야 트렁크 하나 가득 온갖 물건을 싣지 않은가. ‘기왕이면 착한 기름까지 넣자’고 상품들을 왕창 소비할 의지를 가진 고객들이 기름이 떨어질 때마다 운집하도록 휘발유를 미끼로 내걸었다는 거, 모를 시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통큰 주유소가 있는 대형마트를 기름 떨어질 때마다 찾아간다면 기름값 지출은 일단 줄겠지. 한데, 주위에 기존 주유소들이 파리 날리다 문을 닫은 뒤에도 기름값이 계속 착할까.

가격표를 저렴하게 붙이기 위해 파리 목숨과 같은 비정규직을 최저 임금으로 혹사시킬 뿐 아니라 낮은 가격으로 납품하도록 제조업자를 닦달하는 대형매장은 결과적으로 제조업체까지 비정규직을 양산하게 했다. 월급으로 가족을 건사하던 가정의 가장이 실직돼 거리로 내몰리는 일은 대형마트가 전국에 늘어나는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제조업체의 실직자라도 운 좋으면 대형마트에 일용직으로 취직하지만 불안하다.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못하면 자칫 더 심각한 실직으로 내몰리는 일은 통큰 주유소에 열광하는 시민이 늘어날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런 희생자는 착한 가격을 좇는 시민의 다정했던 이웃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통큰 주유소에 열광하는 시민의 직장도 납품가 인하 압력을 견디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통큰 시리즈의 필연적인 부메랑이다.

대형마트 사주와 돈독한 인척 관계를 가진 사주 언론사의 특별한 노심초사는 그렇다 치고, 유가 안정을 위해 대형마트에 주유기 설치를 적극 유도하려는 천박한 발상을 국회에 보고한 지식경제부장관은 통큰 주유소가 부메랑이 될 거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걸까. 그렇다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 허망한 노릇인데, 이참에 차를 타지 않는 일상이 불편하기만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굳이 주목하고 싶다. 되도록 차를 타지 않는 만큼 기름값이 들어가지 않아 가정경제에 도움이 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읽는 독서량만큼 상식이 늘고 부족한 잠을 청할 수 있다. 회의나 모임 뒤 자연스레 이어지는 술자리를 마지막까지 개근하며 도로를 가로막는 경찰 눈치 보지 않고 흐느적거릴 수 있다. 그 뿐인가. 인척이 아니라도 내 식구를 기억하는 상점의 이웃과 돈독해질 수 있겠고, 무엇보다 미끼 상품을 외면하는 만큼, 대형 마트에서 되돌아올 부메랑을 피할 수 있다.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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