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구가 없는 세상의 막다른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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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구가 없는 세상의 막다른 벽
  • 이세기
  • 승인 2022.03.18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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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손바닥소설 - 북창서굴]
(2) 최
 3월부터 이세기 시인의 장편(掌篇)소설 '북창서굴'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손바닥 크기 분량의, 산문도 되고 소설도 되는 '이세기의 북창서굴'은 격주로 연재하지만 매회 독립적인 내용으로 엮어갑니다. 인천의 도시 골목에서 일어나는 애잔하고 쓸쓸하며, 때로 아름답기도 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입니다.

 

 

연재하면서

내 집에 북쪽으로 난 창이 하나 있다. 보잘것없는 창밖이지만 석류와 엄나무가 자라는 데 눈을 씻기가 그만이다. 그곳을 바라보면 골목이 내다보여 사람들의 목소리와 발소리가 들리곤 한다. 간혹 동네 사람들의 대화를 듣거나 나도 그 대화에 슬며시 끼기도 한다. 듣다 보면 가슴 저미고, 유쾌하고, 기이하고, 애달프다. 억울한 이야기는 입과 발이 없다. 산문도 되고 소설도 되는 손바닥만 한 글은 북쪽 창가에서 보내는 ‘장편(掌篇)’이다. 땅을 기며 살아가는 지렁이와 같이, 스스로 ‘북창서굴(北窓書窟)’에 갇혀 날갯짓을 글로 펼친다.

 

최근의 일이다.

최가 짐승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다음 얘기였다. 한밤에 자신의 복부를 칼로 가르는 끔찍한 자해 소동이 벌어졌다. 급기야 양손으로 배 속의 창자를 꺼내는 그의 모습에 노모는 실신했고, 그는 응급실까지 가서 겨우 생명만은 건졌다는 것이다.

경악할 일은 배 속의 창자를 밖으로 끄집어내면서 그가 뱉어낸 말이었다.

시원해, 시원해.

그 일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가 적어도 몇 해 동안 일도 하지 않은 채 방안에만 있었다고 했다. 사람들의 만남도 거부하고 이제는 언어능력까지 상실되어 상대방과 말하는 것까지 잊어버릴 정도로 변했다는 것이다.

칩거하기 전에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배를 타겠다고 자신의 심중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배를 타기 위해 항구에 직접 가서 선원 일자리를 알아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젊은 사람이 험한 선원 일을 할 수 있을지 의혹의 눈초리로 꿰뚫었다고 할까? 결국 배도 못 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누구보다도 최를 잘 알고 있었다. 한때 그와 나는 동거를 한 적이 있었다. 허름한 산동네 월세방에서 함께 살면서 목재공장을 다녔다. 어느 날인가 그는 피곤에 지친 나의 몸을 흔들며 말을 건넸다.

벽에서 소리가 들려.

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는 벽을 향하여 손을 내저으며 어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저쪽 구석을 봐, 저기, 저 소리가 안 들려?

하고 말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터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벽에서 소리가 들린다는 증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급기야 벽과 천장 도배지를 뜯고 어둠 속에서 들린다는 소리의 정체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자, 봐, 없어 아무것도 없다고. 심지어 망치로 벽을 깨서 보여주었지만, 도무지 수긍하지 않았다.

소리가 들려, 분명하게 들린단 말이야.

나는 끝내 그에게만 들리는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비밀이 되어 숨어 버렸다. 그러곤 최를 이러구러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십팔 년 전, 그가 막 공고를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들어간 것은 목재공장이었다. 처음에는 전기과 전공을 살려 배전반에 배치되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부서 이동을 당했다. 최는 오히려 자신은 몸 쓰는 일이 제격이라며 차라리 잘되었다고 말했다. 12t 합판을 재단하는 런닝쇼의 부사수가 되어 밤샘 철야를 하며 지냈다.

그의 부모는 최가 푸른색 작업복을 입은 모습을 대견스럽게 생각했다. 제 밥벌이를 하게 됐다며 반겼다.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의 아버지는 공단의 변두리에 있는 공장 수위로 사십여 년간을 결근 한 번 안 하고 일했다. 퇴직한 후 인근의 아파트 경비로 밥벌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도 잠시, 후진하는 지게차에 치여 일자리를 잃게 되자 급격하게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나마 최가 공장을 다니게 되어 부모를 부양하게 된 것이 다행이었다.

몇 해 공장을 잘 다니던 그가 어느 날부터인가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었다.

답답해, 답답해.

그가 어느 날, 나에게 한 질문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생각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죠?

이 뜬금없는 질문이 의아했지만 사뭇 진지한 태도에, 그래 생각만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지라고, 대답했었다. 나는 방바닥에 나무젓가락을 손으로 직접 옮기면서 그의 말에 동조를 보냈다. 말보다는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의 답답함은 점점 더 심해지는 듯했다. 처음에는 노동조건이 열악해서 그러려니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최는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답답함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야.

하는 말로 처방을 내렸지만, 과연, 그럴까요? 라는 말로 반문을 했다. 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니던 공장에서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공장을 떠난 그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우유배달, 점원, 신문 배달, 일용직, 음식 배달직 등을 전전하면서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그러곤 무슨 영문인지 곧 집에 틀어박혀 두문불출이었다. 겨우 그의 노모가 아파트 공사장의 타일 매지 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최근 자신의 복부를 칼로 긋는 믿지 못 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꿈틀거리는 창자를 꺼내며 시원해, 시원해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고 한다. 다행히 이웃 사람이 발견하고 급히 창자를 배 속에 넣어 그 길로 응급실로 간 바람에 겨우 죽음을 면했지만, 그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진 이후 그는 지금까지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십 년 만에 찾은 그의 집은 세월의 풍화를 겨우 연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집은 낡고 마당의 잡초는 어지럽게 자랐다. 커튼이 쳐진 어두침침한 방안엔 막걸릿병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고 초점을 상실한 몽롱한 그의 눈동자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내가 방에 들어가자 그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천장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방안의 벽지는 손톱으로 뜯었는지 곳곳이 찢겨 있었다. 무거운 침묵만 질식하듯 멈춰 있었다.

확실히 그는 폐인이 되어 미쳐가고 있었다. 퀭한 눈빛은 이미 총기를 잃어버렸고, 처진 양어깨는 어둠 속에서 한없이 짓눌려 있었다. 맥없이 풀어져 두 발은 갈 길을 잃은 짐승의 발이었다. 불혹이 가까운 나이에 식물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의 처참한 모습이 나를 놀라게 했다. 몸의 근육이 다 빠져나가 나이보다 더 왜소하고 수척해 보였다. 그는 나와 잠시도 눈빛을 마주치지 않았다.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한 그의 집을 빠져나오면서 나는 불사약이라도 구해 그의 입에 가져다주고 싶었다.

엉뚱한 생각은 이내 침통한 절망으로 변했다. 그의 무기력한 상태에 대해 의사는 급격한 정신적 충격 후의 에피소드로 일종의 과대망상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의 병적인 증상은 세상을 물어뜯고 대항하는 대신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 자신을 공격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정신과 치료 중에서도 끝끝내 침묵을 지켰다. 약물도 거부했다. 그의 급격한 충격은 일시적인 장애는 아니고 평생 그를 괴롭힐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오히려 주변의 무관심만이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고 했다.

집에 들어와 숙취에 몸을 이리저리 뒹굴며 누웠다가 구토증세에 새벽 무렵 화장실로 갔다. 순간 최의 무의식 속에 침투한 유령과도 같은 답답한 악몽이 떠올랐다. 벽과 천장에서 들리던 소리, 그놈의 유령이 그의 몸 안으로 들어와 육중하게 벽처럼 버티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내게 어떤 흐느낌 같은 것이 아련하게 들려오는 것인데, 그것은 밑바닥을 치고 올라와 급기야 나의 명치를 쿡쿡 찌르는 것이었다.

마치 사막을 걸어온 낙타처럼, 소금 장수의 헤진 얼굴처럼. 거울 속의 나의 모습은 돌파구가 막힌 막다른 벽에서 만난 절망의 자화상처럼, 버림받은 벌거숭이 몰골로 메말라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아라비아 사막에서 마법의 램프를 들고 검은 가운으로 얼굴을 가린 사신의 낮은 목소리가 내 안에서 또렷하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아, 답답해, 답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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