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한 시민과 마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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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한 시민과 마중물
  • 유해숙
  • 승인 2011.07.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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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유해숙 / 서울사회복지대학원대학교 교수


얼마 전 열린 '마중물연구소' 개소식

"할머니 담배 좀 사다주세요."

한 청소년이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화가 치밀었지만, '나는 선배시민이다. 선배시민은 마중물로서 후배시민이 잘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청소년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아들아, 아들이 몸에 해로운 담배를 사달라는데 그걸 사주면 내 꼴은 뭐가 되고 너는 또 뭐가 되겠니? 이건 아니다. 나는 네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에 그 청소년은 "죄송해요 할머니. 다신 안그럴게요."라며 감동의 빛을 보였다. 할머니는 자신이 후배시민에게 마중물의 역할을 한 일을 자랑스러워했고, 지금은 다문화가정을 위한 자원봉사자로서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다.  

여기 또 한 사람이 있다. 현재 그는 조건부 수급권자로서 지역자활센터에 소속되어 어느 학교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담당이 아닌 다른 장소까지 청소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안 볼 때 그 장소에서 침을 닦거나 휴지를 주웠다. 이 일을 통해 그는 뿌듯해 하고,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로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학교의 행정실장이 그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 학교가 깨끗해졌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하시는 일을 교장선생님도 알고 계셔요."

위 사례는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연구소의 시민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 기관들이 시민교육평가 자리에서 언급한 것이다. 첫 번째는 노인복지관 교육사례이다. 교육을 통해 그 노인은 더 이상 무기력하고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지혜가 있고 후배시민을 잘 이끄는 선배시민(senior citizen)으로 된 것이다. 두 번째는 지역자활지원센터 교육사례이다. 인문학 교육과정을 통해 그는 빈곤으로 인해 무기력과 스티그마를 가진 수급권자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통해 사회에 참여하고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는 시민으로 된 것이다. 

마중물은 혼자 힘으로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지하수를 마중하는 한 바가지 정도 물이다. 마중물은 빗물, 논물, 구정물 등 어느 것이나 될 수 있고, 우리는 이 물을 마중물로 쓰고 버린 다음 새로운 물을 사용한다. 마중물 특성들이 우리에게 주는 암시는 모든 물이 마중물로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의 마중물은 전문가나 활동가는 물론 노인, 저소득층, 일반 시민 등 누구나 될 수 있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마중물이 버려졌을 때 새물이 쓰인다는 점에서 자신의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일할 때 사회의 마중물로 된다는 점이다. 즉, 마중물이 되고자 한다면, 지역을 위해 이웃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자 결단해야 한다.

사단법인 마중물(http://waterforchange.or.kr/)은 이러한 관점을 갖고 노인복지관, 장애인단체, 지역자활지원센터, 도서관 등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시민교육을 벌여 왔다. 교육의 목표는 자각한 시민의 형성이다. 자각한 시민은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빈곤, 노령, 장애, 저소득, 질병 등 사회적 위험이 우리 이웃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고, 이에 대한 책임이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육, 의료, 주거, 소득 등의 해결을 공동체 이름으로 우리 모두가 연대해서 해결하고자 한다. 자각한 시민의 자질로 가장 중요한 일은 이 모든 게 정치가나 전문가가 아니라 시민의 일이라는 걸 자각하고 참여하는 데 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치적 동물'로 되는 것이고, 아렌트가 말한 자신의 고유성과 개성이 드러내는 공론장에 참여하는 시민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각한 시민이란 지역사회를 위해 마중물로 되는 게 의미 있는 최고의 일이라는 걸 자각하고, 마중물이 되고자 결단하고 실천하는 시민이다. 앞의 두 사례는 마중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시민교육은 자각한 시민들 스스로 당당하고 풍요로운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걸 목표로 삼는다. '당당하다'는 것이 권리의 주체로서 지역사회의 주체로 된다는 걸 의미한다면, '풍요롭다'는 건 시민 삶의 질이 좀더 높아지도록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실상 당당한 시민이 풍요로운 삶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중물은 시민과 공동체를 변화시킨다. 이런 점에서 마중물은 '변화를 위한 물'(water for change)이라고 할 수 있다. 마중물이 되고자 끊임없이 자원하는 시민들 속에서 우리 공동체가 좀더 당당한 시민들과 함께 풍요롭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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