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주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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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주문도
  • 조영옥
  • 승인 2022.03.20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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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조영옥 / 인천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2월 중순이 넘어가면서 딸아이는 ‘먼 곳으로 발령이 나면 어떡하지’? 하고 은근히 걱정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진학 상담이라는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서 ‘지금 있던 학교에서 5년을 채우지 않고 새로운 학교로 발령을 받아서 가야 한다. 강화도 발령이 날 수도 있다는데 설마’ 하고 있던 차에 정말로 강화도로 가게 되었다. 강화 선수항에서 배를 타고 1시간 20분이나 더 들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중학생이 되는 손녀는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모든 정보를 찾아내기 시작하였다. 학생 수는 몇 명이고 학교 시설은 어떤지, 급식은 또 어떻게 나오는지 등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중·고등학생 모두 합하여 열아홉 명으로 손녀가 가면 올해 중학교 입학생은 단 두 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손녀는 “할머니 생각보다 괜찮아요. 저는 엄마 쫓아서 갈 거예요.” 그렇게 마음을 결정하고 나더니 오히려 제 엄마를 안심시킨다. 섬 한 바퀴를 거리뷰로 살펴본 후 카페도 있다고 설명 한다. 둘이서 공부하니까 선생님들께 개인 교습을 받는 거나 같으니 열심히 할 거라고 말한다. 얼마 전 TV에서 섬마을 오지 학교의 교육환경을 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원어민 선생님께 영어도 배우고 악기도 배우던 것이 떠올라 다소 안심은 되었지만 새로운 학교의 교육환경은 어떤지 궁금했다.

개학하기 이틀 전 자동차에 당장 필요한 식재료와 간단한 주방 도구, 책, 옷가지만 실었는데도 자동차가 터지도록 짐이 많아졌다. 짐 속에 사람이 끼어서 가게 생겼다. 새벽 6시 즈음 집에서 출발하여 중간에 강화교육청에 들러서 전학 서류를 제출하고 선수항에 도착했다. 여객 사무실은 두어 사람이 무표정하게 앉아 있고 물자를 수송해가려는 군인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한산한 풍경이었다.

배표를 사 들고 뱃전으로 나왔다. 텅 빈 마당에 자동차 두어 대, 화물차 서너 대가 배를 기다리고 있다. 9시 반에 출항하는 배에 우리는 자동차를 탄 채 올라갔다. 석모도 가는 배를 타면 갈매기가 사람 머리 위를 빙빙 돌면서 손 끝에 들고 있던 새우깡도 채어가던 낭만적 분위기는 다 어디로 갔는지 멀리서 두 어 마리가 날다가 제풀에 시들한지 갯벌에 내려앉는다. 정원이 348명인 큰 배가 승객 6명을 태우고 검은 연기를 하늘에 뿜어 올리며 물결을 세차게 헤치고 나간다. 승선자가 별로 없어 선주의 가슴도 저 연기처럼 매캐하게 오르내리지는 않을까 코로나로 요 몇 년 까맣게 타다가 이쯤에서 무심하게 가라앉았을까 하는 생각도 스쳐갔다. 바다 가운데 점이 찍힌 듯 작은 섬들이 눈앞에 가까이 다가왔다가 멀어진다.

낯선 곳을 가는 호기심과 어색함이 바닷물처럼 출렁대는 사이에 배는 살고지 항에 도착했다. 배가 포구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접안되고 자동차는 스르르 굴러 육지에 바퀴를 굴린다. 길옆 야트막한 언덕에서 소나무 가지가 흔들리며 스스스 소리를 내며 우리를 맞이한다.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포장된 좁은 길이 따라오라며 좁은 팔을 벌리고 있다. 솥단지, 이부자리를 등에 지고 개척지를 찾아 떠나는 이방인 같이 차에 가득 짐을 싣고 가는 내내 조그만 돌부리에 채여도 가슴이 쿵쿵 내려 앉는다, 이곳은 딸과 손녀가 앞으로 몇 년간 살 곳이다. 힐링하러 일부러 찾아왔다고 생각하라고 단단히 당부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씩씩하게 돌아서야 한다.

사흘째 되는 날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없는 사이에 조심스레 밖을 나가본다. 이른 봄볕이 바다에 내려앉아 반짝거리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남쪽에는 매화꽃도 피고 유채화가 노랗게 피웠는데 여기는 아직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지 않았다.

출처-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lgysy/222610683089
주문도 서도교회(출처-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lgysy/222610683089)

집 뒤곁을 돌아서 몇 걸음 안 되는 소나무 언덕 아래에 파란 저수지가 보인다. 미풍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내게로 다가온다. 주문도 농경지에 물을 대주는 저수지이다. 저수지 주변에 나뭇가지들은 봄기운이 올라 밥풀 같은 새싹들이 점점이 붙어있다. 그 길을 내달아 걸어가니 우체국도 나오고 100년도 넘은 한옥으로 지어진 서도교회가 보인다. 띄엄띄엄 집들도 나오는데 돌담에 ”바다카페‘ 팻말이 보인다. 화살표를 따라가 카페에 들어선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아담한 카페에서 카페라떼를 한 잔 주문한다.

카페 주인은 형님따라 다니러 왔다가 주문도의 자연이 너무 좋아 십여 년 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는 파고에 따라 배가 뜨고 안 뜨고를 알 수 있는 물때표를 보여주며 친절하게 정보를 준다. 일상품을 선수항 마트에서 주문해서 받아보는 법도 자세히 알려 준다. 배를 타고 먼 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불안감으로 잔뜩 웅크렸던 내 마음이 어느 새 스르르 풀린다. 낯선 경험이 시작되는 서해의 작은 섬, 주문도에 딸과 손녀를 두고 와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따사로운 봄빛처럼 다가선다.

학교에서는 딸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손녀를 데리고 온다고 하여서 관사에 있던 선생님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시고 커다란 방과 작은 방 거실과 주방에 전기렌지까지 있는 깨끗한 관사를 우리에게 주었다. 거실과 방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고 드럼세탁기. 스타일러, 청소기 등 생활하는데 불편한 점은 하나도 없이 배려하여 준비해주셨다. 그래도 사람이 살다가 나간 자리라 온 집안을 청소하느라 우리는 녹초가 되었다.

개학 날 딸과 손녀는 걸으면 300보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학교에 갔다. 학교에 처음 간 손녀가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손녀는 학교가 마음에 들고 급식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며 명랑한 말투로 말을 한다. 낯선 곳에서 어떻게 적응할까 걱정했는데 한숨 놓았다. 정리가 거의 끝나서 집에 갈 금요일 저녁만 기다리고 있는데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목이 칼칼하고 머리가 띵하다고 한다.

새로 오신 선생님 중 한 분이 오미크론 확진이 되어서 집으로 가셨다고한 지 하루 만이다. 집에서 사 온 자가 키트를 가지고 딸과 손녀가 검사를 해보았다, 딸은 한 줄은 진하게 한 줄은 흐리게 나왔다. 손녀는 한 줄만 뚜렷하게 나왔다. 보건 선생님께 전화를 해보니 확진이라고 한다. 그때부터 우리는 각자의 공간으로 분리되었다. 딸은 안방, 나는 거실, 손녀는 제 방에서 잠도 각각 자고 밥도 따로 먹었다. 딸은 머리가 아프고 온 몸이 쑤신다고 하며 타이레놀을 먹고 계속 잠만 자고 늘어진다. 손녀도 덩달아서 아프다고 한다. 중간에 있는 나는 증상이 더 심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불안하게 아이들을 지켜 보고 있다.

토요일은 남편과 아들이 필요한 물건을 싣고 주문도에 오기로 예정이 되어 있어 남편은 마트에서 아이들이 먹을 식재료를 가득 사서 차에 실었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배가 뜨지를 못한다고 한다. 할 수 없이 하루를 기다려서 일요일에 짐을 싣고 왔다. 오미크론에 감염 될까봐 거실에 잔뜩 내려놓고 준비해 놓은 점심을 후다닥 들고 바로 돌아서 가버렸다. 월요일이 되어 보건소가 문을 열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가 딸과 손녀가 PCR 검사를 하고 왔다. 어디로 보내서 확인을 해야 하니 하루나 이틀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이틀 후에 딸은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낭패다. 집에 가서 봄옷도 가져와야 하는데 꼼짝 못 하고 자가 격리를 해야 한다.

나도 다시 자가키트로 검사를 했다. 나는 음성이다. 사흘이 지나고 딸이 조금씩 거동을 한다. 나는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딸이 많이 아프면 손녀도 보살펴 주어야 하기에 집에 갈 생각을 못했는데 그 정도면 맡기고 가도 될 것 같다. 보건소에서는 동거인도 여기 머무르고 인천으로 가면 안 된다고 한다. 나는 짐을 쌌다. 여기서 어물거리다가 나마저 확진이 되면 일주일을 여기서 꼼짝 못하고 딸아이와 같이 나가려면 열흘은 더 머물러야 한다. 딸도 안 된다고 말리는 것을 마다하고 뱃전까지만 태워달라고 해서 누리항에 내렸다. 하필 여객 사무실에서 보건소 직원을 만났다. 딸도 밖에 나오면 안 되고 나도 집에 가면 안 된다고 야단이다. 사람이 드문 동네라 금방 알아본다.

초행길에 어떻게 먼 길을 찾아가느냐고 붙잡는 딸아이를 뒤로 하고 나는 배에 올라탔다. 이번에도 승객은 여섯 명이다. 나는 이층으로 올라가서 먼 바다를 바라본다. 봄볕에 반짝이는 바다가 출렁대고 밀려왔다 밀려간다. 사람은 원래 이렇게 이기적인가? 비실대는 딸아이를 두고 집에 식구들에게 감염되면 어떻게 하냐며 돌아선 내가 잘못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기저질환이 있고 고령자인 남편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냐며 나에게 묻는 동안 배는 하얗게 포말을 일으키며 정확하게 시간을 지켜 선수항에 몇 안 되는 승객과 자동차를 내려놓는다. 배에서 내려 어리버리 주위를 둘러보니 뱃전 마당에 강화터미널에 가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뱃시간에 맞춰서 운행되는 가보다 역시 승객은 나 혼자다. 한 시간쯤 달려왔을까 강화터미널에 내렸다. 두리번거리며 인천가는 버스를 찾는다. 800번이 보인다. 길병원에서 내린다. 초행길이지만 대중교통이 잘 연계되어서 쉽게 집에 올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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