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 남부의 단란한 이름, 남광로얄아파트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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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 남부의 단란한 이름, 남광로얄아파트 일대
  • 유광식
  • 승인 2022.03.21 0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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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람일기]
(76) 주안7동 일대 - 유광식 / 시각예술 작가

 

5층 높이의 남광로얄아파트, 2022ⓒ유광식
5층 높이의 남광로얄아파트, 2022ⓒ유광식

 

검붉은 큰불을 노란 봄비로 추스른 뒤, 봄이라는 이름을 조금씩 입가에 올려 본다. 이와 대조적으로 바깥세상은 참혹하고 살얼음판이다. 전쟁이라는 세계의 큰불은 어떻게 꺼야 할런지 모르겠다. 거리두기가 조금 완화되었지만 감기 수준의 확산세가 심해 아직도 긴장을 놓지 못한다. 얼마 전에는 기름값이 리터당 2,000원이 넘었기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최저가를 검색해서 주유 원정을 떠나는 차량이 많다고 한다. 이쪽저쪽 치솟는 소리로 소란스럽다. 

 

쌍용아파트와 진흥아파트가 보이는 신기시장사거리(북적북적), 2022ⓒ유광식
쌍용아파트와 진흥아파트가 보이는 신기시장사거리(북적북적), 2022ⓒ유광식
1990년대부터 먼지 꽤 휘날렸을 citi 100 오토바이(남부초등학교 옆에 폐차), 2022ⓒ유광식
1990년대부터 먼지 꽤 휘날렸을 citi 100 오토바이(남부초등학교 옆에 폐차), 2022ⓒ유광식

 

미추홀구 주안7동은 일명 신기촌으로 불린다. 사람들은 좁은 보폭으로 열심히 궤적을 그리며 오늘의 삶을 움직이고 있다. 이곳은 신기시장이 있는 곳으로, 주변 일대는 온통 거주 구역이다. 시장의 규모도 매우 크다. 신기시장과 남부종합시장이 함께 활발한 가운데, 7동 행정복지센터 뒤편에 평소 인지하지 못한 통일종합시장이 있었다. 통일이라는 명칭을 시장 명으로 쓰는 것이 흔치 않은데 규모도 작은 편이 아니라서 놀라웠다. 1985년 세워진 통일종합시장은 ㄷ자 형으로 2층 규모의 시장이다. 혹시 통일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다 ‘연백’, ‘해주’라는 이름이 보여서 반갑기는 했어도 결정적이진 않아 보였다. 문득 생각해보니 1985년은 남북 최초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역사적인 해였다. 한마음 한뜻으로 통일을 염원해보자는 의미로 시장 명을 정한 건 아니었을까. 통일종합시장은 2년 후 길 건너 신기시장과 남부종합시장이 생기고 구월동 백화점과 아울렛의 등장으로 빠르게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현재 통일종합시장은 오랜 개점휴업 중이다. 

 

주택가 안쪽에 자리한 통일종합시장, 2022ⓒ유광식
주택가 안쪽에 자리한 통일종합시장, 2022ⓒ유광식
통일종합시장 안쪽(몇 개의 점포운영과 창고 등으로 이용), 2022ⓒ유광식
통일종합시장 안쪽(몇 개의 점포운영과 창고 등으로 이용), 2022ⓒ유광식
통일종합시장 주변 골목 풍경, 2022ⓒ유광식
통일종합시장 주변 골목 풍경, 2022ⓒ유광식

 

통일종합시장 옆에는 1981년생 남광로얄아파트가 있다. 5층 규모의 아파트는 주변을 ‘로얄’로 통하게끔 하는 주인공이다. ‘로얄(royal)’이라는 이름은 한 시절을 풍미했던 단어이다. 왕실이라는 뜻에서 더 나아가 성대한, 위풍당당한, 장엄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는데, 한마디로 왕이 사는 귀한 집이라는 뜻이다. 집에 이름을 붙일 때는 다들 ‘최고’라는 의미를 담기에 바쁘다. 이후에는 ‘노블(noble)’이라는 이름이 성행했던 것도 같다. 다음으로 ‘클래스(class)'라는 이름도 있다. 건너편에 신축 아파트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이곳도 새 둥지로 갈아탈 조짐이 보인다. 가로세로 100m쯤 된다 싶으면 어김없이 예상한다. 남광로얄아파트는 더 높은 계급장을 달고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어쩔 수 없다지만 알게 모르게 사는 공간으로 계층과 계급을 나누는 것인지 씁쓸하다. 모두가 탑클래스인 시대로 가면 나머진 누가 남을지 궁금해진다. 내 발끝과 비둘기, 고양이만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남광로얄아파트(주차 공간이 협소해졌다), 2022ⓒ유광식
남광로얄아파트(주차 공간이 협소해졌다), 2022ⓒ유광식
함께 그린 따뜻했던 날들(지하 공간 입구로 아래가 경로당), 2022ⓒ김주혜
함께 그린 따뜻했던 날들(지하 공간 입구로 아래가 경로당), 2022ⓒ김주혜
오래전 폐기된 웅변주산글짓기 학원 간판과 일광욕 중인 고양이, 2022ⓒ김주혜
오래전 폐기된 웅변주산글짓기 학원 간판과 일광욕 중인 고양이, 2022ⓒ김주혜

 

남광로얄아파트에서 빠져나오니 남부초등학교 교정이 보인다. 이곳에서 딱 한 번 예비군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학교 앞으로는 아이들과 부모님, 학원 차량이 뒤섞여 오가고 있었다. 로얄할인마트와 우주할인마트가 교문 앞에 있는데, 아무래도 학교 앞이다 보니 문구점도 겸하고 있었다. 우주와 로얄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아이가 되어 상상해 본다. 건물의 고도가 높지 않아서 새들도 거침없이 날아다닌다. 조경수 꼭대기에도 분명 그들의 집이 있는데 로얄아파트 나무의 까치집은 좀 다를까? 아무튼 남다른 자부심으로 지내온 8, 90년대의 그림이 남아 있는 산책하기 좋은 공간이다. 옥수탕과 로얄아파트의 굴뚝이 이채롭다. 시장 구경은 피해 갈 수 없는 덤으로, 주안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인천남부초등학교 앞, 2022ⓒ유광식
인천남부초등학교 앞, 2022ⓒ유광식
로얄아파트와 굴뚝(굴뚝은 도시가스 연결로 현재 사용금지), 2022ⓒ유광식
로얄아파트와 굴뚝(굴뚝은 도시가스 연결로 현재 사용금지), 2022ⓒ유광식
옥수탕 굴뚝과 펌프 공장, 2022ⓒ유광식
옥수탕 굴뚝과 펌프 공장, 2022ⓒ유광식

 

남광로얄아파트 일대는 지금이야 로얄석이 아닌 이코노미석 같은 집들이 되었지만, 새롭게 꿈꾸어 가는 모습에 긴장과 초조가 뒤섞여 좌불안석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나간 시간을 걷는 봄의 걸음이 나쁘지 않다. 이후의 모습이 절대로 나의 바람대로는 안 갈 테지만 시선으로 어루만질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할 따름이다. 인천 곳곳엔 아직도 때 묻은 시간의 진득한 장소가 많다. 이와 반대로 이 생애 마지막 한 방, 로또라 여기며 장소를 새롭게 탈바꿈 하려는 시도도 포착된다. 영어 이름이라면 뭔가 멋져 보일 거라는 생각도 지양했으면 한다. 단지명이 순수 국어로 불리는 공간이 많아지면 좋겠다. 영어와 숫자로 비빈 집은 시큼하다. 

 

건너편 힐스테이트푸르지오 공사처럼 비상하려는 남광로얄아파트, 2022ⓒ유광식
건너편 힐스테이트푸르지오 공사처럼 비상하려는 남광로얄아파트, 2022ⓒ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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