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의 돌, 편견의 돌
상태바
오해의 돌, 편견의 돌
  • 안태엽
  • 승인 2022.03.23 18: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자칼럼]
안태엽 / 자유기고가
영화 '그린 북'
영화 '그린 북'

                        

얼마전 어느 공동체 모임을 진행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를 난감하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경험이 맞는다며 일방적으로 주장을 했다. 마치 물냉면이 비빔냉면에게 ‘너는 시원하게 우려낸 국물 맛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늘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았다. 회의를 진행하는 나로서는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직선 길로 못 가면 곡선의 길도 있는데 왜 역주행을 하면서까지 힘들게 가려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필자는 그와 몇 번의 대화를 시도했지만 불신만 갖게 되었고 결국 마음에 벽을 쌓게 되었다.

어느 날 1960년대의 실화를 다룬 ‘그린 북’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꽤 유명한 영화라는 사실도 알았다. 허세와 주먹으로 나이트클럽 해결사인 백인 운전사 토니는 주관적인 주장이 강한 다혈질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그린 북'은 그와 천재 피아니스트 흑인 ‘셜리’가 만나 갈등하고 화해하는 특별한 우정을 그린 영화였다. 셜리는 교양과 인품을 지키며 죤 에프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백악관 초청을 받기도 하고 미국 전역에서 콘서트 요청을 받아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당시 흑인은 천대받고 차별받던 시대였다. 백인 토니는 흑인 셜리에게 고용돼 그를 모시고 다녀야 하는 처지였다. 처음에는 티격태격하며 말다툼을 하였다. 이들은 흑인과 백인이라는 피부색은 물론이고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 행동, 취향까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지만 함께 다니며 셜리가 노골적인 차별을 받는 등 세태를 겪으며 서로의 마음 깊은 곳을 알게 된다. 차츰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인정과 배려를 통해 부족함을 채워주는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나아가 공감하고 배려하면서 그들의 사랑과 우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영화를 본 후 필자는 미워하는 그에 대해 혹은 그와의 관계에 따라 변화되어 가는 주변의 새로운 상황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불신의 돌 하나가 잘못 놓여 벽 전체가 균형을 잃고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쌓은 담이 완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니 나의 허물은 여기저기 많이 보였다. 들쑥날쑥 모양도 색깔도 엉망이었다. 그것들이 보였다. 

전에 지인인 열쇠 수리공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열쇠 수리공에는 하수가 있고 고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초고수가 있는데 이 정도의 실력이면 어떤 집의 열쇠도 다 열 수 있어요.” 하지만 그는 곧 “초고수도 못 여는 자물쇠가 있다”고 했다. 문안에 단추처럼 생긴 후크를 딸깍 눌러버리면 천하의 열쇠 수리공도 문 밖에서는 절대 못 연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나 문득 '혹시 마음 안에 후크까지 잠가버린 일은 없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밖에서는 열 수 없다는데 나는 누군가에게 대한 마음의 단추를 잠그고 외로운 터널을 홀로 지나가고 있는 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내 모습을 나는 볼 수 없지만 주변 사람은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울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보기 흉할 정도로 시커먼 것이 묻어있었다. 이런 모습을 하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재단한 것이 부끄러웠다. 다르다는 것이 나에게는 틀린 것이었고 그 다름의 다양성과 특별함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음 안에 문은 나 자신이 열고 나와야만 했다. 얼마 후, 나는 마음의 담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불신의 돌과 오해의 돌, 편견의 돌, 실망의 돌들을 서서히 옮겨 놓았다.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처음부터 다시 쌓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영화 속 그들을 생각하고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