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삭은 사랑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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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삭은 사랑꽃
  • 허회숙
  • 승인 2022.04.21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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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허회숙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70이 넘어 여성복지관 탁구 교실에 등록을 했다. 주1회 두 시간씩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탁구 교실은 즐거웠다. 1년이 지나자 ‘새싹 반’명찰을 달고 ‘관장 배 탁구시합’에 출전하여 입상도 했다. 고목에 다시 새싹이 돋는 기분이었다. 차츰 시간이 흐르자 참여인원에 비해 탁구대가 부족하여 복식으로 탁구를 치지 않으면 쉽게 차례가 오지 않았다. 그즈음 다른 바쁜 일들로 복지관 탁구 수업을 그만두게 되었다.

다음 해 노인복지회관 문학아카데미에 등록을 하고 2년이 흐르자 뜻이 맞는 문우들과 친해지고 문학 동아리 활동도 하는 등 즐겁게 지내게 되었다. 2020년 1월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가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기세를 높여가던 10월 초.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함께 한 몇몇 문우들과 탁구 이야기를 하다가 장난 끼와 승부욕이 발동하여 함께 탁구를 치러갔다.

나는 몇 년 동안 탁구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운동 신경도 둔해서 자신이 없었지만 우리는 서로 잘 친다고 자랑을 하며 말씨름 끝에 다섯 명이 탁구장으로 몰려간 것이었다.

연습으로 몇 게임을 하면서 보니 동료 중 한 분만 탁월한 실력이고 나머지는 모두 탁구를 쳐 본지 오래되어서 공이 탁구대에서 빗나가기 일쑤였다. 모두 나보다는 잘 치는 분들이어서 그 분들의 몸이 완전히 풀리기 전에 시합을 하면 이길 수도 있으리라는 얄팍한 계산을 했다.

내가 제안하여 남녀 대항 복식 시합을 하고 지는 쪽이 탁구장 비를 내기로 했다.

기분도 들뜨고 몸도 가벼워 즐겁게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시합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기고 싶은 승부욕이 만남의 바람보다 더 커지자 나르는 것은 마음 뿐, 몸은 바닥에 못이 박혀버렸다. 한 팀 동료를 방해하지 않으려 몸을 휙 돌려 피하는 순간 운동화 뒤꿈치가 걸리면서 몸이 맥없이 뒤로 넘어 갔다. 아뿔사 과유불급이 이럴 때 쓰는 말이었구나. 왼 손이 바닥에 부딪치자 시계 줄이 풀리면서 왼 손목에 골절이 왔다. 정형외과에 가서 X레이를 찍고 팔에 임시 기브스를 한 후 집으로 왔다. “여보 나 좀 봐” 하면서 집에 들어서자 남편이 놀라면서 “당신 넘어진 거야?” 한다. 그렇다고 하니 “당신은 눈이 나빠서 고개를 숙이고 땅을 보며 걸어야 하는데, 언제나 밑을 보지 않고 고개를 바짝 쳐들고 콧대를 세우고 다니니까 넘어지잖아, 내가 하는 말을 그렇게 듣지를 않는다니까~”하며 지청구를 한다.

그 날 저녁부터 역할이 바뀌었다. 남편이 저녁 차리고, 설거지 하고, 내 옷 벗는 시중까지 들게 되었다. 일주일 만에 정형외과에 갔다. 다시 X 레이를 찍더니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라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동안 아프지도 않았는데~ 인천사랑병원으로 가라고 의뢰서를 써준다. 결국 그 병원으로 가서 3박 4일 입원을 하고 수술을 받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코로나의 공포가 더 심해서 병원 출입통제가 심했다. 보호자 한 명만 하루에 한 번,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면회가 가능했다. 입원 다음 날 낮 시간에 수술을 받게 되었다. 남편은 낮 시간 병실 출입 통제 규칙 때문에 출입문을 지키는 젊은이와 몸싸움까지 하며 간신히 들어왔단다. 11층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수술 잘 받고 나오라며 손을 흔드는 늙은 남편의 여윈 얼굴이 내 가슴을 젖게 만든다. 밤이 되자 남편이 주섬주섬 먹을 것을 챙겨들고 입원실로 들어온다. 다음날은 10월9일, 공휴일이어서 병원이 휴원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낮에 온 남편이 진찰받으러 왔다고 하자 문을 지키던 젊은이가 오늘은 진찰을 못 받는 날이라며 막았다. 남편은 그대로 그 자리에 서서 문지기 청년을 한 시간 넘게 노려보고 있었다. 견디다 못한 젊은이가 방으로 연락을 해서 내가 병원 입구로 내려갔다. 남편은 꼿꼿이 선 자세로 말없이 젊은이를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 젊은이는 나를 보더니 반색을 하며 제발 할아버지더러 집으로 가시라고 말씀 좀 해 달라고 한다. 내가 남편에게 왜 그러고 있느냐고 했더니 “그 녀석에게 부담감을 주려고 했지” 하는 것이었다. 둘이 함께 웃음을 터트리고는 늙은 남편의 농성 시위는 끝을 냈다. 남편은 출입문을 지키는 젊은이와 실랑이를 하면서 하루에 두 번씩 입원실을 찾아왔다.

퇴원 후 일주일이 지나자 머리를 감아야 살 것 같다. 비닐로 팔을 감싼 후 남편더러 샤워기를 들고 내 머리에 물을 뿌려 달라고 했다. 물을 뿌려주던 남편이 어느새 은근한 목소리가 된다. 나도 남편이 뿌려주는 물을 받으며 아련한 옛 추억에 잠기게 된다. 꼬박 6주간 남편과의 역할이 바뀌어 살다보니 이대로 살아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잔소리가 심해지는 남편이 미울 때가 많다. 그래도 내가 입원했을 때 병실에 못 들어오게 한다고 한 시간 넘게 병원 입구에서 농성 데모를 하던 남편 생각을 하면 슬그머니 미소가 떠오른다.

결국 나는 놀고 싶고, 이기고 싶은 과욕 때문에 손목 수술까지 하고 남편을 고생 시켰다.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내가 입원했던 3박 4일간 하루에 두 번씩 병실을 찾고, 6주 동안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느라 애쓰면서도 별로 힘들어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나에게 잔소리하는 재미를 즐기는 듯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믹서기 돌아가는 소리 들린다. 사랑과 미움을 단백질 음료에 녹이고 블루베리, 당근 양파에 사과도 반쪽, 무미한 일상에 고소한 맛 첨가하고 견과류도 듬뿍 넣어 드르럭 드르럭 아침을 깨우는 저 오래된 기계음이 반백년 된 우리 부부의 아침을 상큼하게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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