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이라는 말을 빼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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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이라는 말을 빼주세요"
  • 안태엽
  • 승인 2022.05.0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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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안태엽 / 자유기고가

필자와 가까이 지내는 75세의 건강한 지인이 있다.  평소 ‘어르신’이라는 존칭을 쓰며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했다. 그러나 가끔씩 그에게 친밀감을 표현하기 위해 '형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가 대화를 하고 나면 대화에는 공감을 하면서도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수개월 뒤에 “앞으로 나를 부를 때는 ‘어르신’이라는 말을 빼고 ‘형님’이나 ‘누구누구’ 씨라고 불러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내가 “어르신이라 부를 때마다 거리감을 느꼈고 불쾌함까지 들기도 했다.”고 했다. 필자는 “연세가 있는 분을 어떻게 ‘누구누구’ 씨라고 부르냐.”고 말했는데, 그는 “나에게 어르신이라고 부르면 늙은이 대접받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셨군요 그러면 앞으로 권**씨라고 부르겠습니다.”라고 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러워졌고 그분도 좋게 받아들였다.

그 후 실내 수영장에서 내가 레슨을 받을 때였다. 수영 강사는 나에게 ‘아버님’이라는 호칭을 썼는데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강사가 60대 중반인 필자에게 아버님이라고 부르자 당황스러웠다. 물론 나를 존중하며 한 말이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버님’이라 부르는 게 좋게 들리지 않는다. 그제서야 나는 ‘아~ 그때 그 지인도 이렇게 불쾌하셨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는 것이 아닌가...

100세 시대인 요즘 40대 중반에도 결혼 안 한 사람이 많다. 그런데 공공 기관이나 은행, 상점을 가면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노인이나 어르신이라는 말을 들을 나이가 아닌 사람에게도 종종 그렇게 부른다. 설령 노인의 나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부르는 것을 요즘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60~70대도 건강하고 나이에 비해 젊게 사는 분들이 많다. 내가 몸담고 있는 모임에 칠순이 넘은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은 건강하고 감성이 풍부하여 글도 쓰고 컴퓨터와 스마트폰도 잘 활용한다. 그분들은 퇴직 후, 더 바쁘게 살아가며 음악이나 영화 장르도 다양하게 보고 듣는다. 그들과 대화할 때는 마치 50대와 얘기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사전에서 ‘어르신’이란 뜻을 찾아보았다. '남의 아버지나 아버지 친구 그 이상의 노인'을 가리킨다. 한데 요즘 유흥 음식점이나 상점에서 직원과 고객들이 서로 이모, 고모를 남용하는 것처럼 아버님, 어머님, 어르신이 한도 이상의 호칭으로 오용되고 있다. 이러한 용어는 자칫하면 어색한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 아직 건강하여 젊은 사람 못지않게 활동하는 이들을 단정적으로 규정하는 용어에 불쾌감을 줄 수 있고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요즘 역 꼰대가 많다고 한다. 젊은이가 숙명론에 빠지면 늙은이와 다를 게 없다. 젊은이들의 삼포 세대를 넘어 오포 세대 (결혼, 연애, 출산 포기 등)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야말로 젊은 늙은이들인 셈이다. 이런 의미는 사무엘 울만이 78세에 쓴 ‘젊음’이라는 시에 잘 나타나 있다.

 

'그대가 기개를 잃고 정신이 냉소주의와 염세주의 얼음에 덮여 있는 한

그대는 20세라도 늙은이라네 그러나 그대의 기개가 낙관주의 파도를 타고 있다면

그대는 80세라도 청춘의 이름으로 죽을 수 있네'

 

패기와 박력은 젊음의 특권이지만 경험과 지혜는 연륜에 따라온다. 집안에 어둠이 찾아와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빛을 발할 때가 어른의 지혜가 있을 때이다.

덴마크 속담에는 ‘집안에 노인이 없으면 옆집에서 빌려오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노인은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의 본질을 찾아내고 지혜로운 길을 알려주는 중요한 존재이다. 노인들이 체현해 내는 초연함에서 젊은 세대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만약 노인이 이러한 모습을 못 갖춘다면 나잇값도 못하는 ‘늙은이, 꼰대’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상대에게 어리다고 나이를 앞세워 무시하기보다는, ‘나 때는’이 아니라 ‘너 때는’에 관심을 갖고 현실의 고통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너그러운 어른이 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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