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똥풀, 몰라봐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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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 몰라봐서 미안해"
  • 전갑남 시민기자
  • 승인 2022.05.04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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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샛노랗게 피어 오월을 장식하는 꽃

오월입니다. 4월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온갖 꽃들이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는 꽃을 대신하려는 듯 샛노랑 꽃잎으로 시선을 끄는 들꽃이 있습니다. 애기똥풀이 그것입니다. 양지바른 곳이면 낮은 산이며 들에 또 동네 주변 길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절경을 이루는 곳입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날, 경의중앙선을 타고 양수역에서 내렸습니다. 산과 호수가 병풍처럼 둘러친 곳에 사람들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출렁이는 물결을 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물과 신록이 우거진 자연 정원이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잘 닦여진 길가에서 만나는 노란 꽃, 애기똥풀이 사람을 반깁니다.

젊은 부부가 나란히 걷다 무더기로 피어있는 꽃 앞에서 내게 사진 한 방 찍어달라 합니다. 오순도순 두 사람 얘기가 들립니다.

샛노랑꽃으로 오월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애기똥풀입니다.
샛노랑꽃으로 오월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애기똥풀입니다.
"자기, 이 꽃이 뭔 줄 알아?"
"글쎄."
"애기똥풀이야."
"그런 이름을 가진 풀도 있어? 꽃잎이 노래서 그런가?"
 

남자가 꽃대를 꺾어 부인에게 보여줍니다. 줄기에서 노란 진액이 나오자 부인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진액에서 애기똥풀이 연상되는 모양입니다.

남자가 문득 스마트폰 검색을 통해 멋들어지게 안도현의 시 <애기똥풀>을 낭송합니다.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남편이 낭송한 시를 듣고서 여자는 한마디 합니다.

"난 마흔을 넘기고도 모르는데, 요녀석들, 날 만날 때마다 얼마나 서운했을까? 애기똥풀도 꽃말이 있겠지?"
"그럼, '몰래 주는 사랑'이라고 해."
 

남자는 들풀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애기똥풀이 양평 두물머리 물가에 저절로 피어나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애기똥풀이 양평 두물머리 물가에 저절로 피어나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무더기 피어 노란 꽃동산을 이룬 애기똥풀 꽃밭.
무더기 피어 노란 꽃동산을 이룬 애기똥풀 꽃밭.

애기똥풀에는 전설 하나가 전해집니다. 옛날 눈을 뜨지 못해 볼 수 없는 아기 제비가 있었습니다. 어미 제비는 안타까운 마음에 약초를 찾아 나섰지요. 누가 애기똥풀즙을 눈에 발라주면 낫는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어미는 어렵게 애기똥풀꽃을 찾아내었는데, 꽃을 지키는 뱀에게 물려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미의 지극한 사랑, 몰래 주는 사랑이라는 꽃말이 생겼다 합니다. 혹자는 어미가 어렵게 구해다 아기 제비의 눈을 낫게 했다고도 합니다. 어찌 되었건 엄마의 지극한 사랑에서 느껴지는 '몰래 주는 사랑'이란 꽃말이 그럴듯합니다.

애기똥풀은 꽃도 동글동글, 잎도 동글동글합니다. 두해살이풀로 봄에 피어나 여름이 다 가도록 피고 지기를 반복하여 오래 피어납니다.

옹기종기 모여 피어 자세히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피어 자세히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손톱만 한 4개의 꽃잎은 앙증맞습니다. 꽃봉오리에 아주 가느다란 솜털이 숭숭 나 있습니다. 노랗다 노랗다 해도 이렇게 샛노랗게 피어날 수가! 꽃만이 노란 게 아니고 줄기고 잎이고 자르기만 하면 노랗습니다. 마치 몸 전체에 죄다 노란 피가 흐르는 것 같아요. 애기똥풀은 일제 강점기 우리 식물에 우리 이름을 붙여주자는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탄생하였다고 합니다.

애기똥풀의 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노란 즙이 건강한 아기의 똥을 닮았습니다.
애기똥풀의 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노란 즙이 건강한 아기의 똥을 닮았습니다.

애기똥풀은 노란 액즙을 이용하여 천연염료로 아름다운 색을 만들어냅니다. 양귀비과에 속하는 애기똥풀은 독성이 있어 나물로는 이용하지 않습니다.

예전 사마귀를 빼낼 때 애기똥풀을 찧어서 붙였던 생각이 납니다. 티눈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애기똥풀즙으로 효과를 본다고 합니다.

애기똥풀꽃이 피어있는 곳에 사람들이 이를 알아보고 인증샷을 남깁니다.
애기똥풀꽃이 피어있는 곳에 사람들이 이를 알아보고 인증샷을 남깁니다.

양수리 두물경으로 가는 물가 풀밭에 애기똥풀이 군락을 이뤄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누가 가꾸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예쁘게 피어났습니다. 들꽃밭에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네요.

좀 전에 만난 부부도 다시 만났습니다. 부인이 감탄하여 말을 합니다.

"난 이제부턴 친구들한테 애기똥풀에 관해 얘기해 줄 거야. 수수한 꽃이 이쁘고, 꽃말도 의미 있다고."

솜털이 복슬복슬한 애기똥풀 꽃봉오리. 곱슬털로 덮혀있으나 점차 크면서 사라집니다.
솜털이 복슬복슬한 애기똥풀 꽃봉오리. 곱슬털로 덮혀있으나 점차 크면서 사라집니다.

 

애기똥풀 / 자작시

꾸미지 않았어도
여기저기 샛노란 색깔
보면 볼수록 수수하다
 
그도 이름이 있단다
꺾어진 줄기에
갓난아가 노란 똥 쌌다 하여
허투루 붙여진 이름
애기똥풀
 
사람들은 왜 알려 하지 않을까
저절로 피어나도 다 쓸모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왜 모를까
몰래 주는 사랑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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