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자유’ ‘투쟁’
상태바
‘반지성주의’ ‘자유’ ‘투쟁’
  • 노영민
  • 승인 2022.05.12 1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칼럼] 노영민 / 노무사, 민주노총인천본부 노동법률상담소

‘반지성주의’

5월 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고 했다.

‘반지성주의’의 뜻을 알고 싶어 사전을 찾아봤는데 위키백과 외에는 찾을 수가 없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반지성주의는 “지성, 지식인, 지성주의를 적대하는 태도와 불신을 말하며, 주로 교육, 철학, 문학, 예술, 과학이 쓸데없고 경멸스럽다는 조롱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반지성주의’는 미국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1963년 펴낸 저서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 처음 언급했는데 1950년대 미국 사회를 휩쓸었던 매카시즘 광풍을 고발하려고 이 개념을 사용했다고 한다.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편견이나 확증편향, 진영논리가 그 예로 꼽힌다.

‘반지성주의’를 이렇게 본래 의미대로 해석한다면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윤 대통령 본인이 아닐까?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윤 대통령은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검사로 처음부터 이 사건 수사를 지휘했고 이후 조작임이 드러나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은 이시원 전 검사를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임명했다.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은 2013년 당시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던 재북 화교 출신 유우성 씨를 탈북자 간첩으로 조작하려다가 재판에서 허위 증언 강요, 증거 날조 등이 드러나 1심(2013년)부터 대법원(2015년)까지 모두 무죄로 판결 난 사건이다. 심지어 2심에서 검사 측은 중국 허룽시 공안국(경찰)이 발행한 2006년 중국-북한 출·입경 기록과 기록 발급 사실 확인서 등을 결정적 증거라고 내놓았는데, 모두 위조임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 씨 변호인단은 “전임 검찰총장이 대국민 사과까지 한 사건의 책임자를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임명한 것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내세우는 ‘공정과 상식’에 부합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자유’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소통, 통합, 협치 등의 단어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자유’는 35번, ‘자유 시민’은 8번, ‘자유민주주의’는 3번을 썼다고 한다. 간첩 조작 사건을 주도한 사람을 대통령 비서관으로 임명하는 것을 보며 그가 외친 ‘자유’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의문인데 한번 확인해 보자.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었던 지난 5월 1일 노동절에 “노동의 가치가 충분히 존중받고 노동자의 권익이 실현되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또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노동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그런데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의 발언·공약이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과제 중 노동 분야의 내용은 노동절 메시지와는 딴판이다.

대선 유세 기간 윤 대통령은 ‘주 120시간 노동’ 발언 등으로 친기업·반노동관을 드러낸 바 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확대 같은 노동 유연성, 산업별·사업장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올해 1월 말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및 수정, 직무성과급제 확대 등 반노동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직 인수위의 국정과제 중 노동분야를 보자. 산업안전 분야에서는 중대재해 처벌 대신 기업 자율의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지원하겠단다. 현장의 불확실성 해소를 위한 관련 법령을 정비하겠다는데 이는 기업주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 전후로 줄기차게 요구한 것이다. ‘산업안전보건 관계법령’의 개정과 함께 ‘지침·매뉴얼을 통해 경영자의 안전 및 보건확보 의무 명확화’도 있는데, 이는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좁히는 쪽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산재예방에 관해서는 공허한 내용만 나열돼 있다.

국정과제에는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 스타업의 근로시간 특례업종 지정, 전문직의 연장근로수당 지급 제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연장근로시간 총량 연간 관리 등 노동시간 유연화 방침은 아주 구체적으로 포함돼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무로 돌리는 계획도 포함됐다. ‘공공기관 혁신’ 운운하며 공공기관에 출자회사 정리를 요구하고 정리하면 인센티브를 주겠단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자회사 소속으로 바꾸는 가짜 정규직화를 하더니 윤석열 정부는 자회사를 없애고 노동자를 짜르면 모회사에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직 인수위의 국정과제 중 노동분야 제목은 ‘약속10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이다.

이쯤 되면 윤 대통령이 외친 ‘자유’의 의미는 이런 것이겠다.

일터에서 노동자가 끼어 죽든, 떨어져 죽든 기업주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을 자유!

1주에 120시간 일하고 연장근로수당도 못 받고 과로사로 죽어도 기업주들이 마음대로 노동자들을 부려먹을 자유!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일 시키고 마음대로 해고하고 돈 벌 자유!

2022 세계 노동절 인천대회
2022 세계 노동절 인천대회

‘투쟁’

지난 5월 4일,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지난해 10월 20일 파업 집회와 11월 13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윤 수석부위원장은 당시 구속 상태였던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대신해 직무대행을 맡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경찰, 검찰, 법원이 합심해 민주노총 지도부를 구속한 것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예고한 반노동 정책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을 단속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그 며칠 전인 5월 1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세계 노동절 대회에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해 지역별로 집회와 시위를 벌였다(인천 대회는 약 6천 5백 명). 이는 윤석열 정부가 취할 반노동 정책에 맞선 투쟁의 서막이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