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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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만화
  • 최종규
  • 승인 2011.07.26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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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콘노 키타,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2)》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로서 만화책을 장만하곤 합니다. 아이가 나중에 함께 읽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아버지나 어버이라는 자리에 앞서, 오늘 나 스스로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즐길 만화책을 장만하곤 합니다. 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어도 기쁠 테지만, 어버이 스스로 오늘 재미나게 즐기지 못한다면, 어버이부터 오늘 아름다이 껴안지 못한다면, 어버이로서 바로 오늘 예쁘게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만화책은 그닥 장만할 만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동화책이든 그림책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도움이 되라며 장만하는 책은 없습니다. 아이한테 도움이 되기 앞서 어른한테 도움이 될 책이어야 합니다. 아니, 어른한테 도움이 되기에 아이한테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책을 장만하며 읽을 수 없는 어린이책을 아이한테 읽히자면, 어른 스스로 어른이책을 좋아하면서 즐길 수 있어야 해요.

 어른 스스로 좋아하거나 즐기지 못하는 책을 아이한테 좋아하거나 즐기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어른 스스로 맛나게 먹지 않는 밥을 아이보고 맛나게 먹으라 할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네 몸에 좋으라고 먹이는 밥이라고 말하려면, 어른도 똑같이 먹으면 됩니다. 어른이 똑같이 먹으면 아이는 두말 않고 냠냠짭짭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함께 즐기는 밥이면서 책이요 만화입니다. 나란히 좋아하는 삶이면서 꿈이요 책입니다.


- “사호, 미안한데 들어와서 부엌에 좀 갖다 놔 줄래?” “그럼, 실례합니다.” (5쪽)
- “됐어, 괜찮아. 어린애가 치는 피아노 소린 싫지 않아. 소리가 튀거나 삐끗하는 게 듣기만 해도 미소가 나오는 게 마음이 즐거워지지 않아?” … “시오리도 저렇게 장난으로 칠 때가 있구나. 시오리는 착한 아이야. 길에서 만나면 꼬박꼬박 인사하고, 늘 진지한 표정으로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똑바로 걸어가곤 한단다.”  (27, 29쪽)


 좋다고 할 만한 책이라면 하루아침에 장만하지 못합니다. 오랜 나날에 걸쳐 차근차근 장만할 수 있습니다. 추천도서목록이나 권장도서목록에 오른 수백 수천 권을 한꺼번에 장만할 수 없어요. 아니, 돈이 있다면 한몫에 살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장만’하지는 못합니다. 벽 한쪽을 좋거나 훌륭하다는 책으로 채우는 일은, 책읽기가 아니니까요.

 책읽기를 하려고 책을 장만하는 일이란, 내 마음을 살찌울 좋은 책을 하나하나 만나면서 새롭게 마음눈을 뻗치고 마음길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하루에 그림책 백 권을 읽는다 해서 아이가 책읽기를 좋아한다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이 마음밭에 고운 열매를 맺도록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더 많은 책을 더 자주 읽혀야 하지 않아요. 날마다 알맞게 꾸준하게 즐기면서 아이 스스로 아이 삶을 사랑하면서 아끼도록 이끌 때에 참다이 책읽기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버이 또한 곁에서 어버이 삶을 북돋우면서 보살피는 어여쁜 책을 갖추어야겠지요. 책읽기란 삶읽기인 줄 가만히 헤아리면서 종이로 이루어진 책을 비롯해 사람으로 이루어진 책에다가 자연으로 이루어진 책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할 테고요. 아이를 낳아 같이 살아가려는 어른이라면 더더욱 종이책과 사람책과 자연책을 알뜰히 엮을 줄 알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 “엄마가 이런 과자는 몸에 안 좋다고 먹지 말랬어.” “몸에 안 좋은 건 왜 이렇게 맛있을까 하고 우리 엄마도 자주 말해.” (52쪽)
- “쿠마 잘못이 아니야. 고양이의 본능이 그런걸. 어쩔 수 없어.” “본능이면 아기 새를 죽여도 돼?” “고양이는 육식이란 말이야. 사야도 닭고기 먹잖아. (아차.) 아, 사야, 지금 말은, 어.” “안 먹어. 사야 이제 고기 안 먹어.” (62∼63쪽)


 만화책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2권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2권에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는 머잖아 새롭게 나오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1권에서는 착한 사람들 사랑씨가 어떻게 맺어 시나브로 퍼지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2권에서는 착한 사람들 나눔씨가 어떻게 뿌리내려 열매를 맺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얼핏 잘못 생각하기로는 착한 사람들 이야기라면 슬픈 이야기는 없으리라 여길 테지만, 착한 사람들 이야기이건 못된 사람들 이야기이건 눈물과 웃음이 뒤엉킵니다. 눈물이 있기에 웃음이 있고, 웃음이 있는 만큼 눈물이 있어요.

 기쁘게 살아가며 눈물이 나고, 슬프게 살아가다가 웃음이 납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내 삶에 어떤 아쉬움을 맺지 않을 때에는 홀가분하기 때문입니다.


- “행복을 가져다줄 말을 찾아봐.” (105쪽)
- “음, 난 알 것 같아. 어른이 되면 타인의 마음이 없는 말이나 행동에는 내성이 생기지만, 그 반면 생각지도 못한 따뜻하고 다정한 말에는 약해지거든. 이상하지? 다정한 말에 눈물이 나다니.” (115쪽)


 아이하고 살아가는 나날이란 아이를 먹여살리는 나날입니다. 아이를 먹여살리는 나날이란 아이하고 살아가는 나날입니다. 아이한테 읽히는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란 어른이 함께 읽는 그림책이나 만화책입니다. 어른이 먼저 읽은 그림책이나 만화책은 나중에 아이가 천천히 읽기 마련입니다.

 시를 쓰듯 그림 하나와 글 하나가 곱게 얽힌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2권을 곰곰이 되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가만 보자, 만화라면 만화에 실리는 글월이란 한 줄 두 줄 시와 같지 않던가. 사람들이 서로 복닥거리며 주고받는 말마디란 한 줄 두 줄 똑 떼어놓고 헤아리면 시와 같다 할 만하지 않나. 이 만화책 하나만 시와 같다고 할 뿐 아니라, 내 마음속으로 살며시 스며드는 착한 만화책이라면 어느 만화책을 손에 쥐든 시를 읽는 느낌이 되지 않으려나.

 좋은 책이란 좋은 시라 할 테지요. 좋은 시란 글월 하나로 좋은 책을 이루는 셈이겠지요. 좋은 책이란 한 줄로 갈무리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겠지요. 좋은 시란 한 줄을 읽으며 몇 날 몇 달 몇 해를 기쁘게 살아낼 기운을 북돋우겠지요.


- “창피하고 부끄러워하는 것도 소중한 거야, 하루카. 그렇게 연약하게 흔들거리는 마음이 좋은 시로 이어질 거야.” “흔들거리는 마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엄마도 내가 한 말이지만 잘 모르겠다.” (125쪽)
- “엄마가 그 책을 갖고 계셨거든요. 나중에 빌려 드릴까요?” “정말? 고마워! 아, 근데 어머님의 소중한 책인데.” “많이 읽어 줘야 책도 기뻐할 거라고 도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는걸요.” (148쪽)


 빈틈이 없는 어머니가 아닌 빈틈이 있는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스레 돌봅니다. 돈이 넉넉한 아버지가 아닌 돈이 모자란 아버지가 아이를 따숩게 얼싸안습니다. 똑똑한 어머니가 아닌 똑똑하지 않은 어머니가 아이를 믿음직하게 보살핍니다. 힘이 센 아버지가 아닌 힘이 여린 아버지가 아이를 튼튼하게 키웁니다.

 어느 하나 모자라거나 아쉬울 구석이 없다는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참으로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거나 훌륭하게 자라지는 않습니다. 돈이 많대서 모자람 없는 살림집이 아닙니다. 이름이 높대서 아쉬움 없을 살림집이 아닙니다. 가방끈이 길어야 훌륭한 어버이가 되지 않습니다.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어른이 되고 어버이가 될 때에 비로소 사랑이 자라고 믿음이 싹틉니다.

 밥알 하나에는 사랑이 깃듭니다. 배앓이하는 아이 배를 살살 쓰다듬는 손길 한 번에는 믿음이 서립니다. 텃밭 감자밭에 감자잎이 우거지고, 이 우거진 감자잎 사이로 멧다람쥐 한 마리 뽀로롱 숨습니다. 뭐, 멧다람쥐한테 먹이 될 만한 무언가 있을까 모르겠지만, 좋은 그늘자리나 숨을 터는 되겠지요.


―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2 (콘노 키타 글·그림,김승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1.2.15./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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