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당신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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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당신으로 인해
  • 허회숙
  • 승인 2022.05.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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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스승의 날에
허회숙 / 전 인일여고 교장

지난 5월 15일 저녁 6시, 인천 송도 오라카이호텔에서 인하대 교육심리 박사팀의 조촐한 스승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코로나 사태로 지난 3년간 스승의 날에도 만나지 못하던 안타까운 마음들을 안고 제자 30여명이 속속 모여 들었다.

6시가 되자 중앙 좌석으로 박영신교수님을 모시고 대표 윤영진 교장의 사회로 행사가 시작 되었다.

첫 번째 순서는 박영신 교수님의 박사 1호 제자인 정갑순 회장이 드리는 축사였다.

“오늘은 5월 15일 스승의 날, 지금 이 순간 온 맘을 다해 진정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진정을 다해 실천하신, 참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분의 제자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요! 저희들은 교수님 덕분에 참으로 복된 사람들입니다. 학문의 경지를 넘어 삶으로 이어진 교수님의 가르침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나를 성찰케 하고, 삶을 움직이게 하고....마른 대지를 적시는 단비 같은 스승님의 제자 사랑은 감동을 넘어 아름다운 에너지 였습니다.(중략) 교수님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빛이었고, 제자들에게 전해진 배움은 울림과 깨달음이었고, 부어주신 제자 사랑은 교수님의 생명 그 자체였음으로 영혼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중략) 이 벅찬 은혜를.... 이 뜨거운 감사함을 표현할 길이 없어....먹먹한 마음이 되어 큰 절을 올립니다.(하략)”

정갑순 회장은 차츰 목이 잠기고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정 회장의 축사를 들으며 우리 모두는 각자가 그동안 교수님으로부터 받아온 과분한 사랑과 배려의 추억에 잠기게 되었다. 우리 제자들이 가장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은 지도교수이신 박영신 교수님이 한국 교육심리학계에서 최고 수준의 연구 실적을 쌓아올리신 분이라는 사실이다. 인하대에 재직하신 30년 세월동안 세속의 잡다한 유혹을 모두 물리치고 오로지 한국인의 토착심리 연구에만 매진하여 학자로서 최고의 경지에 오르신 분이다.

한국교육심리학 분야 최고의 연구 실적과 더불어 교수 평가에서 몇번이나 우수교수가 되신 분이기에 우리 제자들은 교수님의 발끝에라도 미치고자 노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학자로서 보다도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치신 것은 교수님이 몸소 보여주시는 인간적인 품격과 사랑의 실천이었다.

박교수님은 부모님으로부터 한없는 사랑을 받으며 5남매의 장녀로 성장하신 분이다.

평생 건강하시던 아버님이 쓰러지셨을 때 헌신적인 간병으로 아버님이 다시 일어서시게 하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 본 제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효도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97세까지 천수를 누리시고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몇 년 전부터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아 저렇게 해드리는 것이 효도로구나!’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고 계시다.

평범하고 부족한 우리 제자들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을 교수님께서 실천하고 계신 것이라고 가끔씩 입을 모은다.

정갑순 회장의 눈물범벅으로 이루어진 축사가 끝나자 이어서 이경란 제자의 ‘당신으로 인해!’라는 축시 낭독이 있었다.

“교수님! 당신으로 인해

어느 날, 이것이 꽃이다/ 이것이 바람이다/라고, 써주셨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십여년..../ 뿌옇게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슬그머니 바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떠듬떠듬 읽었습니다/ 빨간 꽃을 읽고, 노란 꽃을 읽었습니다/ 산들바람을 읽고, 하늬바람을 읽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것이 꽃이구나/ 이것이 바람이구나/ 드문드문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또 십여 년, 희미하게 꽃을 알았고/ 바람의 행간을 이해했습니다/ 이제 읽었으니/ 이제 깨달았으니/ 이제 쓰겠습니다/ 이것이 꽃이다/ 이것이 바람이다/ 라고/ 써주신 그 씨앗을 쓰겠습니다/ 세상에 씨앗이 환하게 꽃필 것입니다/ 교수님! / 당신으로 인해.

자신의 성장과정을 되새겨 보게 해주는 이경란 박사의 시를 들으며 우리 제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에 젖었다.

막내 제자인 손주연 박사가 소금으로 ‘아리랑 변주’를 연주한 것을 끝으로 제자들의 '재롱 잔치'는 끝났다.

마지막으로 제자들 한명 한명이 카네이션을 한 송이씩 들고 나가 교수님께 감사의 마음을 드리는 순서가 시작되었다.

오늘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김세용 장로님의 커다란 꽃다발도 증정되었다.

모두들 이제까지 교수님 가르침대로 반듯하게 살아오지 못한 부끄러움과 앞으로 더 잘 살아 교수님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각오로 발걸음 한걸음 한걸음을 조심하며 교수님께 나아갔다.

박영신 교수님의 인사와 당부 말씀을 들으면서 그 자리에 참석한 제자들은 다시한번 자신의 마음을 추스른다.

어느 곳에 위치해 있을지라도 나 자신의 조그마한 힘을 더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동참하겠다고....

스승의 은혜 합창으로 행사가 끝난 후 집에 돌아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요즈음 바쁜 일과가 지속되었고 오랜만에 그리운 얼굴들을 만나 기쁨과 흥분 속에 몇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여서 많이 피곤했다.

마침 샤워실에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남편도 잠이 들어 받지 않는 속에 집전화가 다시 울린다.

급한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으니 박영신 교수님이 방금 우리집 현관 앞에 다녀가셨다는 전화였다.

오늘 받으신 꽃다발 한 개를 놓고 가셨으니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라는 전갈이었다.

송도 신도시에서 모임을 가졌고, 박교수님댁이 그 근처인데 이 깊은 밤에 손수 운전을 하시어 간석역 앞 우리집까지 오셔서 꽃을 주고 가시다니~

시간을 보니 11시가 넘었다.

문득 지난 해 가을 내가 손목 관절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기어이 병원 앞까지 오시어 위로해 주시고, 얼마 후 늦은 밤 우리집 현관 문고리에 몇 가지 밑반찬과 죽을 쑤어 담은 쇼핑백을 매달아 놓고 가신 교수님 생각이 났다.

그여이 가슴이 뭉클하고 목이 메인다.

나에게 이런 대접을 해주시는 지도교수님을 모시고 사는 내가 어찌 교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 것인가?

이런 모습으로 우리를 가르치시는 교수님 밑에서 18년을 배워온 내가 어찌 남에게 함부로 대할 수가 있단 말인가?

‘감동을 주는 삶과 행동’을 몸소 보여주시는 교수님 곁에서 내가 어찌 노력조차 하지 않고 살 수가 있단 말인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박영신 교수님! 몸으로 가르쳐주시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조금씩이나마 실천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다짐해 보지만 내가 교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하며 살 수 있을지는 아직도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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