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없는 독일에서 '행복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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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없는 독일에서 '행복 만들기'
  • 박병상
  • 승인 2011.08.0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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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고등어를 금하노라》, 임혜지 지음, 푸른숲, 2009.

북해와 발틱해에 고등어는 없나? 잠시 저항하던 고교생 딸까지 수긍하게 만들며 겨울철 실내 온도를 섭씨 18도에 맞추는 독일의 짠순이와 짠돌이 부부는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고등어를 식탁에서 퇴출시키기로 작정한다. 건축과 물리학을 전공한 박사부부는 지출 이상의 수입을 원하지 않는 중산층이지만 구두쇠는 아니다.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생활을 최대로 자제하는 차원에서, 한국인 부인은 짠순이고 독일인 남편은 짠돌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원양에서 잡아 냉동해 가져오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고등어를 금지하려 했다.

알프스에서 기원해 경비원 한 명 없는 프랑스 국경을 흐르다 북해로 빠져나가는 라인강은 겨우내 쌓였던 알프스의 눈이 녹는 봄에 자주 범람한다. 유럽에 첫 사람이 유입되기 훨씬 전에도 범람했기에 수많은 샛강과 범람원을 품고 흘렀던 라인강인데, 언제부턴가 주변에 자리잡은 사람에게 재앙을 안기기 시작했다. 석유를 들이키는 커다란 배까지 오가는 운하로 활용하려고 샛강과 범람원을 메워 흐름을 직선으로 만든 이후 일인데, 문제는 그 정도에서 그친 게 아니었다. 배가 다닐 깊이를 확보하려고 보를 막고 제방을 쌓자, 강물 높이보다 낮아진 곳에 정착한 사람에게 범람은 두려움 이상으로 돌변한 거다.

범람은 강의 당연한 생명현상이다. 그러므로 범람을 기술로 통제하려는 인간의 행위는 무모했고, 따라서 재앙으로 이어진 건 필연이었다. 강폭을 줄인 지 이제 150년, 보와 제방을 쌓은 지 고작 수십 년 만의 일이다. 고통을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독일은 결국 범람원을 다시 조성하는 타협으로 자연이 부메랑처럼 되갚는 재앙을 완충하려 진력한다. 넘치는 강물을 인공 범람원으로 유도해 주변 도시와 농경지에 닥칠 재앙을 어느 정도 피하려고 강둑에 배수시설을 만든 현장에서 우리는 한국에서 찾아간 일행보다 진지한 임혜지를 만났다. 범람원에 대해 세계적 권위를 가진 독일 학자의 열띤 설명을 효과적으로 통역하려 이리저리 뛴 임혜지는 '4대강 사업'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독일의 예와 대응을 알리려 몇몇 언론에 정열적으로 기고했던 이다. 그렇기에 진작 만나고 싶었는데, 하나라도 더 안내하려는 그와 약속된 시간은 현장에 한정됐고, 긴한 이야기 나눌 기회는 아쉽게 만들지 못했다.

벌써 구입했지만 차일피일 읽기를 미루던 《고등어를 금하노라》의 저자가 임혜지라는 사실은 귀국해 그의 홈페이지를 찾아가서 알았다. 남편과 독일에서 자유로운 삶을 알콩달콩 만끽하며 두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한국 여성이 쓴 책이라는 건 이미 알았지만, 그 책의 저자가 임혜지였다니! 읽던 책을 밀어놓고 펼쳤다. 자가용 대신 자전거를 타며 25년 된 이발도구로 남편과 대학생인 아들의 머리를 다듬는 그는 15년 된 물주머니를 침대에 놓고 잠을 청한다. 잠들기 전에 끄는 전기담요가 고장났기 때문인데, 물리학자인 남편은 물주머니에 넣는 정도의 물을 데우는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전기담요보다 더 많다는 걸 계산해내며 샤워 시간까지 참견하려 든다. 몸치인 남편과 댄스학원에 다니는 임혜지는 어떤가. 처녀 적 몸매를 유지하려는 건 어느새 중년에 다다른 자신의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가 아니었다. 옷을 사지 않으려는 의지의 발로였다.

"우리 자식 대에서는 목욕이란 풍습이 존재했던 호시절을 환상처럼 그리며, 선조들이 참 파렴치하게 지구를 말아먹었다고 원망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는 임혜지는 돈으로 자신과 가족의 값어치를 매기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 자기체면을 건다. 그 따위 경쟁에 승자는 없기 때문이다. 교육도 마찬가지. 공부에 취미 없는 사람이 대학에 다니는 것만큼 실패한 인생이 없을 거라고 믿는 만큼, 자신의 자긍심을 자녀의 학교 점수와 동일시하지 않는 현명함을 지녔다. 학과 공부를 잘해서 겉보기 성공한 판사나 교수도 조직의 노예가 될 수 있고, 평범한 기술자도 주인의식을 갖고 살 수 있다는 점을 이이들에게 인식시키며, 열정이 저절로 솟도록 용기를 꺾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 아이들의 진정한 힘을 기르는 교육이라 여긴다. 존재의 기쁨을 경쟁력으로 평가해 소중한 인격체를 부품으로 전락하게 할 수는 없으므로.

"진정한 언어 실력은 맞춤법이 아니라 정확한 사고에 있으니 부디 선생님께서 아이가 지금의 받아쓰기 점수가 자신의 언어 능력이라고 착각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아 달라"고 부탁하는 엄마, 임혜지. 그런 부모 마음을 헤아리는 교사. 그런 독일도 "공부 못하는 자녀들을 사립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실업학교에 보내는 부모의 슬픔"을 가난으로 해석하는 갑부 집안 학생이 있다는 걸 독자에게 귀띔하는 임혜지는 "너에 관해서 너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어!"라고 다독거리며 난독증을 스스로 극복한 자신의 아이들이 영재라고 믿는다. 개성을 가진 다른 집 아이도 물론 그리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수입의 상당 부분을 아이 학원비와 교재비에 털어놓는 내 처지에서 그이가 부럽다. 기술자는 물론이고 단순 사무직도 대학을 나와야 대접받는 우리나라 처지에서 독일이 무척 부럽다.

고집스런 두 자유인이 만나 고집스런 자유인이 네 명으로 늘어난 이야기만이 《고등어를 금하노라》의 매력은 아니다. 사춘기에 이민을 가 35년을 살아온 독일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며 때로 고민하고 때로 깨달은 공존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 책임을 진솔하게 정리하며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내놓는 대목도 의미가 깊다. 독일군과 게슈타포라는 나치의 메타포는 독일인 뇌리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의 환영으로 남았다. 독일인은 과연 나치의 만행을 몰랐을까. 이유야 어떻든, 히틀러는 투표로 당선되었다. 나치라는 단어가 여태 금기시되는 독일에서 수치스럽던 역사를 청산하는 방법은 철저한 진상규명에 이은 반성, 그리고 행동이다. 일본은 없었던 일로 감추려들어 이웃 나라 사이 갈등을 좀처럼 풀지 못한다. 이쪽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역사를 저쪽은 전혀 몰라서 서로 오해하는 일이 생긴다. 공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우리는 어떤가.

역사에서 교훈을 구한 인류는 파시즘의 공포를 내내 물리칠 수 있을까. 독일은 귀찮을 법한데 지겹도록 민중의 의견을 먼저 물으려 한다. 그래야 단단한 정책이 만들어지지 않던가. 타산지석이라는 조상의 교훈을 잊는 우리가 걱정이다. 뮌헨 동계올림픽 유치를 반대하는 시민운동을 공공연히 펼칠 수 있는 독일과 달리 우리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거리에서 반대하기 몹시 어려웠다. 국민요정 김연아가 감기몸살에 걸리면서까지 애를 써서 삼수 끝에 유치한 올림픽이 아니던가. 동남권 신공항 유치를 밀양역에서 반대하던 밀양시민은 대낮 도시 한 복판에서 시장의 주먹세례를 감내해야 했다. 일방적 열광이 빚는 집단체면에 이은 광기는 예견되는 문제점을 사전에 검토하기 어렵게 만든다. 98퍼센트의 열렬한 지지를 받던 황우석 전 교수의 사기행각과 같은 사건은 재발되지 않을까. 확신하기 어렵다. 이민자를 지지하는 사회에 무참하게 총질한 최근 테러 사건은 가장 평화스럽던 노르웨이에서 발생했다.

사회에는 주류가 있고 그 주류를 움직이게 하는 활동가와 지성인이 있다. 주류의 방향을 잡아주는 적은 수 지성인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고, 구호를 외치는 일군의 민중도 더 없이 소중하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건 언제나 주류다. 천둥 번개보다 무수한 빗방울이 산사태를 일으킨다고 이야기하는 임혜지는 경쟁보다 협력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걸 굳이 보여준다. 하향평준화를 걱정했던 이를 머쓱하게 만든 경우였다. 애초 열등생은 없었다. 그룹이 협동하자 학력이 고르게 향상하는 게 아닌가. 기다려주면 될 일이었다. 되바라진 능력을 배타적으로 키우기보다 만나면 반가운 이웃으로 성숙하게 만드는 교육 현장이었다. 학습능력이 높은 아이를 경쟁으로 선발하면 기업이나 국가는 반사 이익을 챙기겠지만, 어디까지나 잠시다. 매사에 경쟁적인 사회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 사이에 틈을 만들어 벌린다.

독일인이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살면 국적을 당연히 바꾸던가. 독일 남성과 결혼했으니 당연히 국적을 독일인으로 취득했을 거라 확신했던 주류 독일인의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뜨린 임혜지는 건축사는 독일어로 연구해야 편하고, 감성을 담은 에세이는 한국어로 써야 편하다고 한다. 일부러 배운 언어와 저절로 익힌 모국어의 차이일 텐데, 그는 건축학도라기보다 차라리 문필가다. 열대야에서 곤한 잠에 빠지려면 적당히 피곤해야 좋기에 책을 펼치곤 하는데, 잠자리에 들기 전에 펼친 《고등어를 금하노라》의 첫 장은 선선한 바람이 부는 새벽까지 재미와 감동으로 이어지더니 어느새 마지막 장을 덮게 만들었다. 출판 2년이 지났으니 막내인 딸도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을 테지. 청소년기 자녀가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해 사회로 나가기 바라는 이 땅의 가족을 위해 《고등어를 금하노라》서평을 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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