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만 나오는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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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만 나오는 그림책
  • 최종규
  • 승인 2011.07.27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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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좋다] 고미 타로, 《엄마 맘은 그래도…난 이런 게 좋아》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으며 즐기는 그림책이라고 하지만, 이 그림책에 아버지가 나오는 일은 퍽 드뭅니다. 곁다리로라도 아버지가 이야기를 풀거나 맺는 일은 참 드뭅니다. 언제나 어머니가 나오고, 으레 어머니가 이야기를 맺거나 풀며, 한결같이 어머니가 아이를 따스한 사랑으로 꼬옥 안습니다.

 그림책을 읽히는 어버이 가운데 아버지는 좀 드물다 할 만합니다. 어버이 가운데 아버지 쪽은 아이가 갓 태어난 때이건, 한창 자랄 때이건, 어린이가 되어 학교에 들 때이건, 푸름이가 되어 꿈나라를 누빌 때이건, 집에서 가까이 어울리거나 부대끼는 일이 드뭅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집밖에서 집밖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는 사람으로 여기곤 합니다. 아무래도 ‘여느 아버지’라 하는 분은 집안에 머물며 집안일을 하거나 즐기거나 누리거나 나누는 겨를이 드무니까, 그림책에 아버지가 나오기는 힘들 만합니다.

 그림책을 읽는 아이는 딸과 아들이 반반입니다. 태어나기를 딸과 아들이 반반씩이니까요. 딸이라서 집에서 놀기를 더 좋아하지 않고, 아들이기에 밖에서 놀기를 더 좋아하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딸이든 아들이든 제 어버이한테서 따순 사랑을 넉넉히 받으려 한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히다 보면, ‘아버지 자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한 집에 어머니만 있을 수 없고, 집안일을 어머니만 맡을 수 없으며, 집살림을 어머니만 일굴 수 없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어머니와 아버지요, 함께 일을 맡는 어머니와 아버지예요. 아버지가 집밖에서 돈벌이를 하느라 바쁘더라도 집살림은 함께 일구어야 합니다. 아이사랑은 어머니사랑이 아닌 어버이사랑이고, 어버이 두 사람이 고루 나누는 사랑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 있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건 예를 들면 이렇게 먹는 거예요 ..  (2쪽)


 이제 막 어머니가 된 사람이라 해서 그림책을 더 잘 알거나 느끼거나 깨닫거나 받아들이거나 즐기거나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오늘날 수많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를 낳을 때까지도 그림책을 눈여겨보지 않기 일쑤입니다. 낱권책을 장만하든 묶음책을 마련하든, 어차피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힐 때에는 ‘한 권씩’ 집어서 펼쳐 읽지, 두어 권이나 열 권을 한꺼번에 펼쳐서 읽히지 못합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되기 앞서, 가시버시로 살아가기 앞서, 어른이라는 이름표를 스스로한테 붙이기 앞서, 두 사람은 그림책이 어떠한 책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좋아하거나 즐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로 살’고 ‘아버지로 살’ 사람이거든요.

 병원에서 아기를 쏙 뽑아냈대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되지 않아요. 낳은 아이하고 여러 해를 살았기에 어머니나 아버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았다고 할 수 없어요. 사람다운 삶을 사랑하면서 어머니답고 아버지답게 하루하루 북돋울 수 있어야 합니다.


.. 내가 좋아하는 건 이렇게 그리는 건데 ..  (6쪽)


 그림책 《엄마 맘은 그래도…난 이런 게 좋아》(베틀북,2001)를 읽고 읽히며 생각합니다. 《엄마 맘은 그래도…난 이런 게 좋아》에 나오는 어머니는 참말 어머니로서 이와 같은 삶을 좋아할까 헤아립니다. 어머니가 되기 앞서도 이러한 삶을 좋아했는지, 어머니가 되고 난 뒤부터 이렇게 살아가려 했는지 곱씹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가 아이였을 적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가 어린이에서 푸름이를 거치던 지난날에는 어떤 삶이었을까요.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니던 예전에도 ‘오늘 보여주는 어머니 모습이나 삶’이었을까요. 어머니는 ‘어머니가 되었기에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로 살아내’는지, 어머니가 되지 않았으면 다르게 살아가려는지 궁금합니다.

 어머니가 더없이 좋아하는 삶은 어떤 모양새일까요. 어머니가 되고 보니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처럼’ 살 때에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걸맞다고 느꼈을까요. 어머니가 되고 나서 비로소 어떻게 살림을 꾸리거나 돌보며 살아야 좋은가를 알아챘을까요.

 아버지는? 아버지 자리에 서는 사람은 아버지가 되기 앞서와 아버지가 되고 난 뒤 어떤 모습일는지요. 아버지는 아버지가 되고부터 아버지 삶을 얼마나 추스르거나 다독이거나 보듬으면서 아이하고 부대낄는지요. 아버지가 되었기에 한결 슬기롭게 살아가려고 애쓰는지요. 아이 앞에서 착하고 참다이 살아가는 매무새를 보여주려고 힘쓰는지요. 집밖에서 보내는 겨를을 줄일 줄 알면서, 집안에서 아이와 옆지기하고 보내는 겨를을 조금씩 늘릴 줄 아는지요.


.. 좋아하는 건 이것저것 아무거나 다 이렇게 ..  (16쪽)


 아이가 있는 집에는 아이만 집에 있을 수 없습니다. 아이와 함께 어버이가 집에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돌보는 시설이 생기는 까닭은 어버이가 아이와 함께 집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인데, 아이하고 살아가는 데에 드는 돈을 벌어야 하거나 어버이로서 무언가 다른 일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를 사랑하는 삶보다 다른 삶이 먼저이기 때문에, 아이하고 함께 집에 머물지 않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삶이 아니기에 집밖일을 줄이지 못합니다.

 〈말괄량이 삐삐〉에 나오는 아버지를 보면, 당신 딸하고 작은 집에서 작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삐삐가 이제 열 살을 맞이하기에 ‘열 살이면 다 컸으니’까 서로 다른 삶길을 걷는다 할는지 모르지만, 삐삐네 아버지는 삐삐가 아홉 살에도 여덟 살에도 삐삐가 혼자 살도록 했습니다. 삐삐는 아홉 살에 집일을 거뜬히 해낼 뿐 아니라 착하고 맑게 살아갑니다. 어린 나날부터 혼자 살았으니 집일을 훌륭히 해낼 수 있는지 모릅니다. 곁에서 가르치거나 보여주는 사람이 없지만, 혼자서 씩씩하고 예쁘게 살아갈 수 있는지 몰라요.

 그러나 삐삐한테 가장 소담스럽거나 대수로운 일이란, 살가우며 어여쁜 동무랑 함께 놀고 함께 살아가는 일입니다. 마음이 맞는 착한 사람들과 어여삐 삶을 일구는 일이에요. 어떤 모험이라도 살가우며 어여쁜 동무만 하지 않습니다. 어떤 큰돈이라도 마음이 맞는 착한 사람들만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아이가 집안을 어지르든, 어머니가 집안을 정갈히 갈무리하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가 어머니 아버지와 사랑스레 살아갈 수 있는 집안이면 넉넉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아이랑 믿음직하게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살림살이라면 따스해요.


.. 음, 내가 좋아하는 건 예를 들면 바로 이런 기분인데 말예요 ..  (30쪽)


 서로 마음을 읽을 한식구입니다. 서로 사랑을 나눌 한식구입니다. 밥만 함께 먹는 한식구가 아닙니다. 잠만 함께 자는 한식구가 아니에요.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내 얘기나 생각만 펼치지 않고 네 얘기와 생각을 가만히 귀기울여 들을 줄 아는 한식구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왜 얼마나 좋아하는가를 헤아리고, 아직 좋아해 주지 않으나 앞으로 좋아해 줄 만한 아름답고 착하며 참다운 삶빛이나 삶무늬가 무엇인가를 넌지시 들려주거나 보여줄 어버이입니다. 아이를 불러 함께 손을 잡고 멧길을 걸어 보셔요. 서로 손을 맞잡고 숲속에서 드러누워 보셔요. 둘이 나란히 쪼그려앉아 텃밭에서 김매기를 해 보셔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고운 흙을 느끼다 보면 시나브로 삶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엄마 맘은 그래도…난 이런 게 좋아 (고미 타로 그림·글,이정선 옮김,베틀북 펴냄,2001.8.25./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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