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따라 읽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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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따라 읽는 책
  • 최종규
  • 승인 2011.08.01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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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자랑하려고 읽는 책

ㄱ. 자랑하려고 읽는 책

 아무리 바빠도 밥을 먹어야 합니다. 바쁘기 때문에 끼니를 걸러도 되지 않습니다. 바쁘니까 하루에 한두 끼니만 먹는다든지, 밥때에 반 그릇만 먹어도 되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쁘기 때문에 잠을 안 자도 된다든지 반만 자도 되지 않습니다. 내 몸을 살찌울 밥을 먹고, 내 몸을 쉴 잠을 자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책을 읽어야 합니다. 바쁘기 때문에 책읽기를 걸러도 되지 않습니다. 바쁘니까 한 해에 한 권을 사서 읽는다든지, 한 달에 한 권 가까스로 사서 읽는다든지, 아예 책이라고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든지 해도 되지 않아요. 바쁘다 해서 내 마음과 넋을 살찌우는 책하고 등돌릴 수 없어요. 바쁘니까 책을 읽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밥을 굶어도 되거나 적게 먹어도 되지 않습니다. 돈이 많건 적건 배고프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가난하기에 잠을 적게 자야 하지 않습니다. 가난하대서 밤잠을 줄이거나 건너뛰어도 되지 않아요. 가난하니까 책 따위를 장만하는 데에 돈을 못 써도 되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마음밥을 안 먹어도 되지 않아요.

 가난하기에 더 맛나게 밥을 먹어야 합니다. 가난하니까 더 달콤하게 밤잠을 즐겨야 합니다. 가난한 만큼 더 알차게 마음밥을 맞아들여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마음과 넋을 살찌우는 책을 장만하는 데에 품과 돈과 땀을 들여야 합니다.

 1923년에 태어나 인천 화평동에서 수채그림을 그리며 마지막 삶을 빛내는 박정희 할머님 이야기가 담긴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걷는책,2011)가 새로 나왔습니다. 2001년에 처음 나왔으나 제대로 빛을 못 보고 스러졌는데, 새옷을 입고 한결 어여삐 태어났습니다. 새로 나온 책 머리말에 박정희 할머님은 “좋은 동화책을 찾아다니다가 구할 수가 없어 직접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 넣은 〈육아일기〉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주었다.”고 적습니다. 네 딸과 한 아들이 태어나 자란 자취를 곰곰이 되돌아보며 적바림한 육아일기는 아이들이 한글을 깨우치는 길잡이가 되기도 했고,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다섯 아이가 저희 어린 삶뿐 아니라 저희 새 아이들한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좋은 길동무가 되기도 합니다. 박정희 할머님은 당신 다섯 아이를 돌보며“유명한 사람,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스스로의 삶을 즐기는 행복한 어른으로 크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덧붙입니다.

 참 그렇습니다. 누구나 이름난 사람이 되거나 돈 잘 버는 사람이 되거나 힘센 사람이 될 까닭이 없어요. ‘어버이한테 효도하는 사람’이 될 까닭이나 ‘나라에 충성하는 사람’이나 ‘회사에 몸바치는 사람’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제 삶을 사랑하며 아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동무와 이웃과 살붙이를 믿으며 어깨동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살아야 할 아이들이에요. ‘효도’하거나 ‘충성’하거나 ‘근면’한 삶은 자랑하는 책읽기입니다. ‘사랑’하고 ‘믿’으며 ‘나누’는 삶이 될 때에 비로소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책읽기예요. 착한 어버이가 착한 아이를 낳아 착한 책을 읽습니다.


ㄴ. 내 삶에 따라 읽는 책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한림출판사,2000)이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이 그림책을 안다면, 아이 어버이라든지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 교사라든지 어린이책을 좋아하는 어른이라든지 책마을 일꾼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지 않는 어른이나 둘레에 아이가 없는 어른이라면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교사가 아닌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사라면, 또 대학교 교수라면 어린이책을 애써 읽으려 하지 않아요. 책마을 일꾼이라 하더라도 어린이책을 만들거나 다루지 않는다든지, 책마을 이야기를 글로 쓴달지라도 어른책 이야기만 쓰는 사람은 이러한 그림책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저마다 알거나 읽거나 즐기거나 아로새기는 책이 다릅니다. 스스로 어떠한 길을 사랑하면서 뚜벅뚜벅 걸어가느냐에 따라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려는 책이 다릅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가장 많이 읽는 책입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읽는 책입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도 즐거이 읽도록 마련한 책입니다.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이라는 말이나 ‘어른이 읽는 동화’라는 말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읽도록 만들지 않으니까요. 동화책이나 그림책이나 모두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도록 만듭니다.

 설마,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어떠한 어린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읽을 책을 스스로 돈을 벌어 장만할 수 없습니다. 모든 어린이가 읽는 모든 어린이책은 ‘어른이 일을 해서 돈을 번 다음, 이 돈으로 책방에 마실을 가든 누리집을 뒤적여 집에서 소포로 받든’ 해야 합니다. 어린이책을 책방에서 사들이거나 도서관에서 빌릴 때에 ‘늘 어른이 먼저 읽거나 살피’기 마련이에요.

 그림책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은 참 예쁘며 시원한 그림에다가 참말 어여쁘며 시원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림으로 빚어 나누는 문화나 예술이라면 현대회화나 정통회화에 앞서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즐기는 그림책’만큼 돋보이거나 아름다울 문화나 예술은 둘도 없지 않겠느냐 싶도록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을 장만해서 읽는다더라도, 이 그림책이 어떻게 즐겁고 얼마나 고운가를 못 느낄 어른과 어린이가 꽤 있습니다. 제아무리 빛나는 그림책이라지만, 빛나는 속살을 읽을 빛나는 내 삶이 못 된다면 빛나는 책 하나를 가슴으로 품지 못해요. 돈을 더 벌기를 바라며 사는 책, 영어시험 점수를 높이려고 사는 책, 진급이나 승진을 바라며 처세를 잘하려고 사는 책, 재미난 이야기만 좇으며 사는 책, 베스트셀러라는 유행에 휘둘려 사는 책, …… 이런저런 책은 모두 내 삶이 어떠한가를 보여줍니다.

 고운 넋으로 고운 삶을 일굴 때에 고운 글을 쓰면서 고운 책을 빚습니다. 고운 얼로 고운 말을 나누며 고운 사랑을 어깨동무할 때에 고운 책을 알아보며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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